배우 하정우가 감독으로 한 발짝 더 대중들에게 다가섰다. 2013년 ‘롤러코스터’로 감독 신고식을 치렀던 하정우는 ‘허삼관’으로 두 번째 메가폰을 잡아 관객들 앞에 섰다.
‘허삼관’ 개봉 당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하정우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많은 영화에 출연했고, ‘롤러코스터’로 영화감독 데뷔까지 했지만 새 영화를 개봉할 때마다 늘 새롭다고. 특히 첫 상업영화 타이틀을 단 ‘허삼관’ 개봉일은 더욱 긴장했을 터다.
“배우로 개봉 날을 맞이하는 것보다 100배 정도 더 떨려요. 새로운 작품이기 때문에. 배우로서도 그런 것 같아요.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게 똑같은 역할로 서게 되면 할 말도 있을 테고 익숙해지겠지만 매번 다른 캐릭터, 다른 사람들과 작업하기에 매번 개봉 날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허삼관’은 감독으로 두 번째 작품이라 더더욱 떨리고 낯설어요. 감독이라는 말 자체도 낯설고요”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각색한 영화 ‘허삼관’은 돈 없고, 대책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뒤끝만은 넘치는 최고의 명물 ‘허삼관’이 절세미녀 아내와 세 아들을 둘러싸고 일생일대 위기를 맞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믹 휴먼 드라마다.
‘허삼관’은 시나리오 각색부터 캐스팅, 편집, 음악 까지 하정우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는 영화다.
“부담돼요. 단순히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한 배우들이 상업영화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한거고 ‘롤러코스터’는 그와 반대였죠. 그렇기에 평가받는 기준이 달라졌어요. 상업영화의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거죠. 사실 ‘롤러코스터’는 변명의 여지가 많아요(웃음). ‘저예산 영화다, 연극배우들과 작업했기에 상업영화로 판단하기 어렵다’ 소재 이야기 자체도 그렇고요. 그렇기에 ‘허삼관’은 책임감이 더 드는 것 같아요. 제작비도 참여 인원도 14배 차이가 나요. 그 크기가 커진 만큼 책임과 부담감도 커진 것 같아요. 기대감도 그만큼 커지게 된 거고요”
‘허삼관’은 하정우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이 없는 작품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정우의 색깔을 덜어내려 애쓴 작품이다.
“제 취향을 의심했어요. 제 취향이 1순위는 아니죠. ‘내 취향이 맞는건가’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전 신인감독이에요. 좋은 감독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거죠. 세 번째 작품은 보다 더 밀도 있는 작품이 나올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롤러코스터’나 ‘허삼관’만을 가지고 이야기하기엔 아직 이른 것 같아요. 경험을 쌓고 공부하고 나아가는 과정이기에 보다 성장을 이루었다면, 색깔을 드러낼 수 있을 만큼의 무언가가 생겼다면, 제 취향과 상업성 둘 다 끌어낼 수 있을 때가 올 거라 생각해요. 그게 세 번째가 될지 네 번째가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캐릭터와 소소한 드라마, 일락과 허삼관의 갈등을 극복하고 성장하며 아버지가 되어가는 이야기에 중점을 뒀어요. 보편적인 소재가 잔잔하고 소소할 수 있는데 그것이 가장 큰 공감대를 형성하는 힘이 아닌가 싶어요. 셰익스피어 이야기도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다루잖아요. ‘허삼관 매혈기’도 같은 지점에 있다고 생각해요. 보편성이 가지고 있는 힘이죠. 클래식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소소하고 수수하더라도 이것이 어쩌면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샷, 구성, 음악, 미술 이런 것도 클래식하게 담아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지점이 ‘롤러코스터’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죠. ‘롤러코스터’는 작가주의라고 할까? 제 입맛대로 만들었어요”
2002년 영화 ‘마들렌’의 단역으로 데뷔한 하정우는 어느 덧 데뷔 13년 차 배우가 됐다. ‘추격자’, ‘국가대표’, ‘황해’, ‘범죄와의 전쟁’ 등 숱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고, 논란 없는 연기력으로 ‘믿고 보는 흥행 배우’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허삼관’을 연출하며 초심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처음 배우를 시작한 뒤로 10년 동안 승승장구하며 성장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교만에 빠진 적도 있고, 연기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타협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면서 나름 위기의식을 느꼈어요. 세상이 모르는 나 혼자만의 위기죠. 배우로서 신념들이 무뎌지는 걸 보고 감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롤러코스터’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허삼관’ 준비하며 10년 전 처음 배우로 데뷔했을 때 마음을 가지고 참여했어요. 보다 더 솔직하게 스태프들에게 이야기하고 내 자신을 드러내고 알려 달라 요청해 이 작품이 완성된 거죠. 내일 모레 40인데 그 40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초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된 것 같아서 그 자체로도 성공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하정우는 ‘허삼관’에서 감독뿐만 아니라 11년 간 남의 아들을 키웠다는 위기를 맞게 된 아버지 허삼관 역으로 주연배우까지 맡아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감독과 주연배우 1인 2역을 통해 하정우는 더욱 성장했다.
“두 가지를 다 한다는 게 남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게 느껴졌어요. 촬영장에선 연기에 집중할 수 있게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해 크랭크인 전에 영화를 끝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프리프러덕션을 했죠. 그리고 하루하루 촬영장가서 재미있게만 보내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 기도들이 쌓여서인지 촬영장이 재미있더라고요. 나의 일상도 ‘허삼관’ 촬영 준비할 때처럼 절실함과 재미로 하루를 보낸다면 삶이 보다 더 좋아지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깨달음이라고 생각해요”
“감독하면서 영화 만들기는 재능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작품 선택, 캐스팅, 스태프, 후반작업, 홍보, 개봉까지 모든 일을 한 사람의 재능만으로 소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예측할 수 없는 대중들을 상대로 만들어야 하는 영화에서 재능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마음을 움직이는 건 정성과 노력이 아닐까요?”
이제 감독으로 두 번째 작품을 선보인 하정우는 아직 하고 싶은 것도 할 일도 많다. 최종 목표는 영화인이 되는 거라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사람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우디 앨런이나.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활동하는 배우들이 그때 되면 6,70대가 되겠죠? 그 때 다 같이 영화 찍는 실버타운을 만들고 싶어요. 할아버지들도 건강하게 일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죠. 할아버지들끼리 만드는 거 보면서 즐거워하고 그런 거요. 그때도 변함없이 활동하며 동시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요”
“코믹드라마 좋아해요. 다른 건 잘 찍으시는 분이 너무 많거든요. 이런 장르를 끝까지 파보려고요. 하정우만의 코미디. 되지 않을까요?(웃음)”
(사진 = 최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