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역배우 사고로 논란의 중심에 선 영화 ‘기술자들’(사진 = ‘기술자들’ 스틸컷)
2012년 4월 경남 합천으로 아동하던 드라마 ‘각시탈’ 촬영버스가 길옆으로 뒤집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이 버스에는 30여명이 타고 있었다. 버스가 전복됐으니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이 온전할 리 없었다. 그러나 다친 사람들은 산재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중에는 2년 전 드라마 ‘대물’을 촬영하고 돌아오는 길에 담양에서 빗길 사고로 전복돼 인대파열 사고를 입은 단역연기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에도 산재신청을 하지 않았다.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드라마 ‘각시탈’ 사고에서는 오로지 그 사고에서 사망한 박희석씨만이 산재신청을 했다. 그는 차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로 인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산재신청이 가능한지 모를 일이었다. 산재신청 이후의 후폭풍에 대한 공포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희석씨의 부인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 6개월 동안 1인 시위를 벌여야 했다. 하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책임을 요구당한 측에게서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행위’로 고소하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례에 대해서 단역연기자 최초로 산재인정 결정을 내렸다. 이때 부상을 당했던 단역연기자들은 일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사회적 이슈화에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또한 사과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다. 수목드라마로 가장 인기 있었던 이 작품은 마지막 회에 박희석씨에 대한 애도 자막을 내보냈지만 다른 부상자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렇게 책임회피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재하청구조 때문이었다.
단역배우들의 사고에서 주체들의 책임 회피는 여러 유형이 있다. 그 하나가 구상권이다. 2013년 1월, 드라마 ‘야왕’ 촬영장에서 교도관 역할을 맡았던 단역배우가 주인공의 팔에 턱을 맞아서 부상을 입었다. 그 부상으로 상당히 고통을 받아야 했던 그는 기획, 제작사, 방송사, 인력공급회사 등에 이에 대한 책임을 요구했지만, 결과는 무응답이었다. 결국 부상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주인공 배우가 준 200만원에 만족해야 했다. 이 돈으로 치아 4개를 뽑고, 임플란트를 해야 했다.
문제는 200만원이 아니었다. 치료비와 보상금 등을 배우에게 받으라는 조치였다. 즉 구상권 발동이다. 이렇게 배우에게 청구되는 것은 근본적인 책임의 주체가 배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기획, 제작사, 방송사 등의 책임이 회피되는 것이었다.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장면을 찍는 것은 배우 스스로가 아니라 기획, 제작사, 방송사의 주의조치가 사전에 필요한 대목인데 말이다.
개봉 영화 ‘기술자들’이 단역배우 사고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단역배우가 촬영 도중 입은 사고로 전치 24주의 상처를 입은 것을 두고 서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고를 당한 단역배우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인정을 받았지만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았다며,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소했고, 제작사 측에서는 황당한 주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당시 24주에 이르는 심각한 부상이 아니었고, 충분한 보상을 해줬다는 입장인 것이다.
상호 입장과 관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여전히 단역배우의 안전사고가 뜨거운 화두가 되는 것은 그만큼 불공정한 노동고용행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따져봐야 하겠지만, 여전히 단역배우의 현실이 그렇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아직도 위험한 상황 속에서 방송프로그램과 영화 등이 촬영되고 있고, 언제든 대형사고의 위험이 상존하는 것이 대한민국 문화콘텐츠의 제작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을에 해당하는 이들은 고통과 위험에 대해서 문제 제기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단역배우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검찰에 고소까지 한 상황이다. 한국 현실에서 배우로 살아가려 한다면 이같은 일은 무모한 일로 비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점 때문에 진실성이 의심을 받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이 진실규명을 통해 단역배우들의 처우가 나아지는 계기가 돼야 하는 것이 분명한 과제이다. 다른 사고 사례들이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이런 점들을 적극 공론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재하청관행에 대한 일제 점검도 필요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