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3년 10월 7일 <해인사>의 <보경당>에서...
<송광사>가 주장했던 <점수론>과 <해인사>의 <돈수론>이 2박 3일간의 열띤 토론을 벌였다.
<돈오돈수>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을 얻는 순간 부처의 성품이 완전히 발휘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돈오점수>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을 얻는다고 해도 계속 자신을 닦아야 한다는 이론이다.
한마디로...<깨달음>에는 “끝이 있다.”와 “끝이 없다.”의 대결이었지...
이런 논쟁이 시작된 동기는...지난 81년 <대한조계종>의 종정이셨던 성철 스님의 발언 이후였다.
성철 스님은 그의 저서 <선문정로>에서 “돈오점수 사상을 신봉하는 자는 전부 지해종도(극단적인 원리주의자)이며 이단사설(사이비종교)에 빠진 사람들이다.”라고 주장하면서부터였다. 그러니까...성철 스님이 주장하셨던 깨달음은 어느 순간 한 번에 오는 것이고 그 깨달음 뒤에는 더 이상 깨달음이 없다는 의미다.
만약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뭔가 배워야 할 것이 남아 있다면 먼저 스스로 깨달음이었다고 믿었던 것은 짝퉁이라는 것이지...
물론, 여기에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어디까지 깨달음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아무튼...조계종이라면 <보조국사 지눌>이 종조 격인데...그의 정설을 부정하는 주장이었기 때문에 조계종은 물론 전체 불교계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었다.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사상 논쟁을 성철스님이 불을 붙였다지만 사실...오래전부터 논쟁의 대상이었는다.
아직도 어떤 설이 정설인지에 대한 결론이 나지 못했다.
인도와 같은 나라는 <점수>...중국은 <돈수> 쪽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나름 발전해왔는데....그래서인지 인도의 <요기>들은 아직도 고난의 수행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아무리 깨달음을 얻는다고 해도 워낙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평생 닦아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지...
어떤 이론이 맞을까?
어떤 이론이 맞고 그름을 떠나서...네가 독서량이 많다면 모를까...아마도 아직은 깨달음이 뭔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석가모니>의 예를 들어보자.
석가는 왕족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성자의 운명을 타고난 것을 알고 그의 주변을 주지육림으로 만들고 방탕한 생활을 하게 했었다.
방탕한 생활을 하다보면...성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는 결국 왕궁을 떠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석가모니는 그렇게도 노력했지만 그가 아는 방법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나중에 어느 선생의 권고로 굶어도 보았지만 인간의 잘 알려진 고통들마저도 그에게 깨달음을 줄 수 없었지...
결국 나는 안 되는구나...하고 체념하면서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있었는데...피골이 상접한 그의 몰골을 보고 나무 신으로 착각을 했던 <수자타>라는 여인이 그에게 우유죽을 봉양했고...그 죽을 먹은 이후 석가는 새벽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 이후 그는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위대한 성자 중에 한 분이 되었지...
깨달음이 뭔지 대충 이해가 가니?
뭔지는 모르겠지만...인간으로서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석가가 정각을 이루고 나서...그 이후에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고 써있는 것을 어느 문헌에서도 나는 본적이 없다.
즉 그 깨달음 이후에 다시 깨달음은 없었고...이는 결국 돈오돈수가 맞다는 말이 된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끝은 있는 법인데...깨달음이라고 어디 끝이 없겠는가?
다만...일부 종파에서 주장하고 있는 돈오점수는..그 깨달음의 크기가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결국...이 논쟁의 본질은 <오>라는 깨달음에 있다.
어디까지 깨달음으로 볼 것인가를 먼저 정의해야할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돈수 쪽에 더 가까운데...이유가 있다.
이상하게도...깨달음을 얻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산속으로 들어갔다.
깨달음과 동시에 속세와는 결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이유는 속세의 인간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깨달음을 얻고도 산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분이 곧 예수와 석가 정도일 뿐...나머지는 대부분 속세를 등졌다.
성철 스님도...거의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살았던 것처럼...
금융인이 된다고 해서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모든 스님들이 깨달음을 얻는 것도 아닐 것이고 깨달음이라는 것에 도달하지 못한 스님이라면...돈오돈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보지 못한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또한 깨달음이라는 것을 말로 설명한 서적이나 기록도 없다.
성철 스님이나 석가는 깨달음을 얻었던 사람들이고 이들의 말을 감히 틀렸다고 논쟁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라.
돈오돈수는 성자들의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지...지극히 인간적인 세상에서는 돈오돈수란 없다.
우리들에게 <오>...즉 깨달음은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할 뿐이다.
좀 더 쉽게 설명을 하기 위해서 다른 예를 들어보자.
아버지는 금융시장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어여쁜 착각을 한 적이 대략 몇 번 있었다.
물론 나중에는 그것이 깨달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당시에는 무척 진중했었다.
너 역시 장차 사회에 나가서 무언가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다...혹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착각을 하는 순간이 많을 것이다.
주로 네가 가진 돈을 모두 잃었을 때...이런 착각에 많이 빠지게 된다.
이 때 너는 네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볼 수 있게 되고 “그 때 딱 그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하고 생각하게 된다.
실패한 주식투자자들에게서 자주 보는 현상인데...대개 지금이라도 돈이 생기게 되면 네가 생각하는 유일한 결점을 보강할 경우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데...이런 식으로 느끼는 깨달음은...거의 짝퉁이다.
종교이야기는 좀 딱딱하지?
잘 납득이 안가면...10년 후에 다시 열어 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