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름만 들어도 뭉클한 존재다. ‘국제시장’은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개 살아온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았고, 아버지의 웃음과 눈물을 고스란히 그려냈다.
‘국민배우’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배우 황정민은 ‘국제시장’에서 20대부터 70대 노인 연기까지 펼치며 험난한 세상을 살아온 아버지 덕수로 출연한다. 서민들의 소박한 꿈이 공존하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배우 황정민이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덕수, 나만의 아버지가 아닌 우리의 아버지”
‘국제시장’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덕수는 이 시대의 아버지를 대표한 듯 현실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공감 갔고, 덕수의 행동 하나하나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황정민 역시 “덕수가 나만의 아버지가 아닌 너의 아버지가 될 수 있고, 우리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겪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않죠. 우리 아버지가 겼었던 부분도 있고, 각자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평범하게 보일까 노력을 했고, 대중들이 보기에 황정민은 연예인, 그리고 배우잖아요. 하지만 전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에요. 덕수 역시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길 바랐고, 도드라지지 않게 하려 노력했죠”
황정민이 연기한 ‘국제시장’ 덕수는 6.25 전쟁으로 아버지와 동생 막순이를 잃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광산에서 일한다. 헤어진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기 위해 훗날 이산가족 찾기 방송 프로그램에 나간다. 그야말로 우리 역사를 고스란히 전한 것.
“이산가족 촬영, 가장 기억에 남죠”
“‘국제시장’은 우리의 역사잖아요. 삶이었고요. 이미 지나왔던 우리의 추억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뗄 수 없는 거고요. 먼 시절 같다고 말하는데 사실 한 세대밖에 차이 안나요. 그 짧은 시간이 조선시대처럼 멀게 느껴지고, 그만큼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가장 기억에 나는 건 이산가족 장면이에요. 새로운 경험이었죠. 일반 엑스트라 분들이 나이가 좀 많았는데 한마음 한 뜻으로 우시더라고요. 카메라 앵글에 안 나오는데도 겪어 보셨으니까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눈물바다였어요. 그러면서도 굉장히 행복하고 재미있었죠.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보일 수 있을까 노력도 했고, 사실 촬영 전에 잃어버린 동생 막순이도 안 봤어요. 촬영 다 하고 인사드렸죠. 김빠질 거 같아서, 모니터로 처음 봤어요”
“20대부터 70대 연기. 걸음걸이까지 놓치지 않았죠”
황정민은 ‘국제시장’에서 20대부터 70대 노인 연기까지 펼친다. 한 번의 분장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황정민은 70대 중반 노인을 표현하기 위해 걸음걸이, 속옷, 손까지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그는 “70대가 가장 어려웠어요. 노인 흉내를 내는 거 보다 사상이나 생각을 이해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국제시장이란 공간에서 70평생을 살면서 수십 년을 그 자리에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 가족의 눈치를 견디면서 버티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 힘이 ‘전쟁에서 잃어버린 아버지와의 약속’이 될 수 있는건데 무너지면 안 되잖아요. 그렇게 끝까지 고집스럽게 국제시장 이란 공간을 지고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촬영을 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되더라고요. 편안하게 이해가 되니까 오히려 쉬웠어요. 자연스럽게 묻어났던 거 같고, 실제 70대가 아니니까 할아버지의 행동이나 디테일함, 걸음걸이, 눈빛 이런 것들이 중요했거든요. 종로에 위치한 공원에 가서 캠으로 찍어놓은 자료가 있었어요. 그걸 다시 보고 도움을 받아죠. 진짜로 할아버지가 장기를 두는 손, 담배 피는 모습, 이야기하는 모습 등. 하루에 옷은 몇 벌 갈아입고 속옷, 양말, 신발 등 다. 하루에 몇 끼를 드시고 드시는 음식까지 도요”
“그래도 어려운 존재, ‘아버지’”
“‘국제시장’ VIP 시사회에 아들, 그리고 부모님이 오셨어요. 가족들이랑 봤는데 아들 녀석이 언제 끝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9살이 뭘 알겠어요(웃음). 실제 아버지는 그 당시의 삶을 살았잖아요. 사실 큰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엄마는 친숙한 느낌이라면 아버지는 멀게만 느껴지잖아요. 남자들은 아버지를 큰 산 같이 느끼는 거 같아요. 저 역시도 그렇고요. VIP 시사회가 끝나고 아버지한테 영화 어떻게 보셨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엄마한테 대신 ‘아버지 영화 어떻게 보셨대’라고 물었더니 아무 말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늘 그러세요(웃음). 그래도 저도 아버지가 되보니까, 조금씩 아버지를 바라보는 이해관계가 풀리는 거 같아요. 여자들이 아이를 낳고 엄마를 이해하듯, 남자도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9살 아들, 말 정말 안 듣지만 귀여워 죽을 거 같아요”
무뚝뚝한 아버지와 큰 대화는 오가지 않지만 ‘국제시장’ 덕수를 연기한 후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된다는 황정민도 실제 9살 아들을 둔 아버지다.
황정민은 “5개월 동안 가정주부로 살았는데 힘들더라고요. 근데 또 재미있어요. 워낙 아침형 인간이라 아이 밥 해 먹이고 학교 보내고 오후에 좀 놀다가 학원 끝나면 데리고 오고 저녁먹이고 둘이 목욕하다가 재우면 하루가 금방 가요. 아들이랑 있으면 정말 귀엽죠. 9살인데 말 정말 안 들어요. 근데 귀여워 죽을 거 같아요. 정말 친한데 혼날 땐 따끔하게 혼내요. 잠도 같이 자요. 전 사실 아버지랑 그러지 못해서 반대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둘이 만날 키득거려서 아내가 힘들어해요”
9살 아들 이야기에 황정민은 연신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무뚝뚝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살갑게 지내지 못 해 9살 난 아들에게 친하게 다가가고 싶다는 황정민. ‘국제시장’에서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였지만 배우 황정민이 아닌 인간 황정민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자 평범한 아버지였다.
“‘국제시장’ 돈 안 아깝다는 말 들으면 좋죠”
그는 ‘국민배우’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연기파 배우다. 그동안 굵직한 작품에 출연하며 흥행배우가 됐지만, 이상하게 천만 배우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황정민은 “180억 대작 영화는 처음이에요. 늘 이야기하지만 극장문을 나설 때 ‘영화 재미있다, 돈 안 아깝다’는 말일 듣고 싶어요. 우리도 영화 보러 갔는데 재미없으면 그런 말 쉽게 하잖아요. 이제 제 몫은 다 했으니 관객의 몫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네요. ‘국제시장’ 1년을 기다렸고 시사회날 처음 봤어요. 오롯이 관객 눈으로 보지 못 했죠. 긴장이 됐고 힘이 잔뜩 들어갔어요. 내용을 다 아는데도 눈물이 나기 시작했죠”라며 자신 역시 ‘국제시장’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여러 작품에서 흥행의 기쁨을 맛봤지만 여전히 긴장된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영화 주 관객층이 20대 친구들이잖아요. 그 친구들이 어떻게 볼까 참 기대돼요. 이 영화를 보고 같이 울고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사진=최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