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W 인터뷰] 정지민, "배우는 대접 받기 위한 직업 아니다"

입력 2014-12-18 10:00
수정 2014-12-18 10:45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 청춘들은 아파도 너무 아프다. 대학생은 입시라는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하자마자 취업이라는 전장으로 내몰린다. 청춘에게 사회란 냉혹한 곳이다. 사회는 각종 어학성적, 봉사활동, 유학경험까지 수많은 스펙을 요구하며 청춘의 어깨를 짓누른다. 청춘이 꿈꾸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괴성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그들은 오직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어느 사회에나 예외가 존재하듯 청춘에도 예외는 있다. 배우지망생들은 ‘꿈’을 꾸는 청춘들이다. 대부분이 배우하면 화려한 연예인을 떠올린다. 배우 중에는 엄청난 부를 얻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은 대부분 생활고에 시달린다. 일반 회사원 월급에 안 되는 출연료로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배우를 꿈꾸는 정지민은 연예인이 아닌 배우를 꿈꾼다. 자본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돈’ 대신 ‘꿈’을 쫓기란 쉽지 않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있는 정지민과 함께 배우지망생의 고충에 대해 들어봤다.

- 연기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있나?

어릴 적부터 연기에 관심이 많았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연기를 배우고 싶어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다. 우연히 어머니가 내 꿈이 배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중학교 3학년 크리스마스 때 어머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연기학원을 등록해줬다. 연기학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열심히 연기를 배우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있나?

영화 ‘올드보이’를 가장 좋아한다. 특히 최민식 배우가 맡은 ‘오대수’라는 배역이 매력적이었다. ‘오대수’는 연기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다. 어려운 캐릭터를 소화하는 것 자체가 존경스럽다. 영화 ‘올드보이’ 중에 ‘오대수’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오열하는 장면이 있다. ‘오대수’가 하려는 말은 ‘말하지 말아 달라’였다. 최민식 배우는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을 전달하더라. 그 장면을 보고 최민식 배우가 왜 최고의 배우인지 알 수 있었다.

-배우로서 욕심나는 작품이 있었을 것 같다. 어떤 역할을 꼭 연기하고 싶나?

아직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배역은 없다. 주어진 역할을 모두 완벽히 소화하고 싶다. 대신 연기하고 싶은 장면은 있다. 취객 연기를 꼭 해보고 싶다. 지난번에 동기 중 한 명이 술에 취한 인물을 맡았었다. 그때 진짜 술을 마시고 무대에 올랐다고 하더라. 술을 마시고 무대에 올라가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 키스신도 욕심나는 장면이다. 얼마 전 친구의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 중 친구가 상대 배우와 키스하는 장면이 있었다. 대사도 없이 키스만 하는데도 관객들이 작품에 몰입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극 밖에서는 그저 친구였던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 신기했다.

-배우가 되려면 끼가 중요하다. 어린 시절 춤, 연기, 노래를 잘하는 아이였나?

고등학생 시절 연극부로 활동했다. 한번은 연극부원들끼리 연극대회에 참가했었다. 무작정 준비하다 보니 지원금이라고는 14만 9천 원이 전부였다. 당시에는 적은 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지원금으로 무대를 만들고 의상을 준비하려니 돈이 모자라더라. 나름대로 방법을 고민하다 무대는 박스로 채우고 의상은 교복으로 대체했다. 그때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연습했다. 노력이 통했는지 대회에서 단체상과 연기상을 받았었다. 그 뿌듯함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처음은 가장 중요한 경험이다. 배우로서 첫 무대는 어땠나?

중학교 3학년 때 참여했던 뮤지컬 ‘풋루스’가 첫 작품이다. 거창한 공연은 아니고 연기학원에서 올리는 정기공연이었다. 중학교 3학년 말에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임하지 못했다. 그저 친구들이 좋아서 즐겁게 연습했다. 나는 작품에서 여자주인공 친구를 연기했다. 공연 전만 해도 어려서 책임감도 부족했고 끈기도 없었다. 배우라는 타이틀로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부담에 책임감이 생겼다. 작품이 뮤지컬이라 노래를 연습해야 했다. 노래 자체의 음역이 높아 소화하느라 힘들었다. 원래 같았으면 금방 포기했을 텐데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했다.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목에서 피가 나오더라. 피를 보면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꼈다.



-졸업을 앞두고 있다. 오디션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무조건 연기를 연습하는 것이 다였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연기도 중요하지만, 개성이나 이미지도 중요한 조건이다. 연기에 대한 진정성 역시 합격의 필수 요건이다. 연기 연습은 당연하고 앞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을 연구하려고 한다.

- 배우는 쉽지 않은 직업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없나?

졸업이 다가오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요즘에는 부모님이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신다. 최대한 고민하지 않으려고 한다. 불안한 생각을 하면 더 불안하기 마련이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나중에 연기를 못하게 될 수도 있고 갑자기 결혼할 수도 있다. 무조건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보다 포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지금 당장은 연기가 하고 싶다. 그렇다고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없기에 나름대로 대비를 하려고 한다.

- 많은 배우가 소위 말하는 ‘연예인병’을 겪는다. 자신은 그런 경험이 있나? 어떤 배우 관을 가지고 있나?

처음에는 연예인이 되고 싶어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사람이 관심을 받기 원하고 사랑받길 원하니까. 지금은 연예인보다 연기자가 되고 싶다. 무엇보다 겸손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지 대접받기 위해 하려는 일이 아니다. 자만하기보다는 겸손함을 유지하고 싶다.

-연기를 시작하면서 주변인과 갈등은 없었나?

어머니가 젊은 시절 캐스팅을 당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접었다고 한다. 그때 자신의 자식만큼은 예체능을 했으면 좋겠다고 결심했다고 하더라. 그 결심이 첫째인 나에게 고스란히 넘어왔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과 피아노, 댄스스포츠를 배웠다.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금방 포기했었다. 연기학원도 예체능으로 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보내줬다. 내가 열심히 연기를 배우는 모습에 어머니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연예인 자살사건이 많았다.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가 연기를 반대했다. 나는 연기를 꼭 배우고 싶은 마음에 반항을 했었다. 당시에는 섭섭한 마음이 컸다. 지금은 연기자의 길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신다.

-학교에서의 연기와 진짜 무대는 다르다

학교에서 배우는 연기와 현장이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직은 겪어보지 못해서 자세히는 모르겠다. 친척 오빠가 현재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오빠는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무대에 오른 케이스다. 오빠는 생각의 틀부터 나와 다르다. 나는 학생으로 연기를 배우다 보니 틀에 많이 갇혀있다. 오빠는 틀 밖을 많이 보는 스타일이다.

-어떤 작품으로 첫 무대에 오르고 싶나?

요즘 대학로에는 정극보다는 상업연극이 더 많다. 단순히 관객을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에 치중되어있더라. 처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상업연극보다는 정극으로 시작하고 싶다. 정극을 먼저 배워야 무대에 대한 진정성이 생길 것 같다. 무대가 아니더라도 단편영화에도 출연하고 싶다. 어떤 장르든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