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칼럼] 우리의 결핍을 드러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흥행

입력 2014-12-16 13:51
수정 2014-12-17 14:24
▲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사진 = 스틸컷)

‘우리 결혼했어요’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연예인들의 가상결혼이라는 점이 흥미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임신과 출산, 시월드가 없는 말 그대로 달달한 연예 같은 결혼생활만이 다채롭게 펼쳐져 재미를 더했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비현실적인 내용이 많고, 연예인들의 가짜 결혼까지 팔아먹는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삼포세대처럼 결혼과 연애를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사회적 상황을 보면, 차라리 연애 같은 결혼을 콘텐츠로 소비하려는 욕구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결국 달달한 결혼이든 그렇지 않든 희소성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희소성은 대리만족을 대중문화콘텐츠에 요구하는 법이다.

‘아빠어디가’가 처음에 선을 보였을 때 똑같은 비판이 가해졌다. 이제 애까지 팔아먹는 것이냐는 목소리가 날카로웠지만, 다른 방송사에서도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인기 이유는 역시 귀여운 아이들의 예측 불가능한 언행이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다양한 상황들은 소소한 재미를 안겨줬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이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것은 바로 현실적인 결핍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중심의 사회로 이동하는 것은 바로 아이가 귀한 사회가 됐고 귀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가했기 때문이다. 해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어느새 많은 아이들은 자랑거리가 됐다. 이혼이 많을수록 거꾸로 다복하게 가정을 유지하는 이들은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된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대한 인기와 관심도 이런 면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새삼 이런 영화가 큰 인기를 끌다니 놀라울 수도 있다.

그러나 곧 인식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 어떤 결핍이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잘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결핍감 속에 가치를 갖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노년을 같이 보내는 부부의 이야기는 흔한 것이었지만, 갈수록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기 힘든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간 단기간에 끝나는 부부가 매우 많았고, 노년기에는 더 이상 사랑이 남아 있지 않은 부부에 관한 이야기가 범람하던 대한민국이었다. 황혼기에 뒤늦게 이혼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사진 = 스틸컷)

그러나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는 무려 76년 동안 같이 부부로 산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의 금슬이 가상 결혼의 달달한 로맨스가 아니라 실제 결혼의 리얼리티를 담고 있다. 아마도 말로만 들으면 현실에 그런 부부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은 현실에 엄연히 존재했고 영화는 다큐로 생생하게 두 사람의 일상을 담았다.

평생 두 사람처럼 연인 같은 부부로 지낼 수 있다면 지극한 행복이라는 것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노년기임에도 연인 같은 부부의 모습이 젊은 세대에게 통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노부부의 이야기로 가능성을 배태하게 했다.

즉, 결핍을 채워주는 측면이 영화에 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기를 얻게 됐다. 노부부는 현실에서 결핍된 부부의 사랑을 어떤 픽션이나 금언, 철학에 기대지 않고 76년간의 세월 속에서 온몸으로 보여줬다. 어떤 창작 콘텐츠도 대체할 수 없는 불멸의 콘텐츠였다.

물론 이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핵심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장면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픽션 콘텐츠에 등장하는 죽음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엄함이 엄존하고 있었다. 이 영화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은 바로 엄존성을 바탕으로 최고의 리얼 멜로의 관점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멜로에서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이별하기 때문에 비극미가 발생하게 한다.

이 작품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갑작스런 젊은 연인의 죽음이 불치병이라고 상정되지도 않는다. 희한한 질병 이름이 있을 필요도 없다. 다만 나이가 많이 들어 약이 들지 않을 뿐이라고 한다. 98세의 나이는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토록 한다. 인간이 의학으로도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할 수밖에 없지만, 어떤 가상의 설정보다도 비극적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인간은 스스로 엄존하는 죽음 앞에 다만 목 놓아 울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나이와 세대 그리고 성별과 계층을 넘어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다만 두 사람이 행복한 삶을 구가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우리 사회와 시대에서 쉽게 일궈낼 수 없는 노부부의 일평생 유지한 사랑은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그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위대하다.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 이뤄낸 사랑은 돈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학력과 교양수준, 세속적 성공이 높은 것과 관계가 없었다. 소박한 삶속에서 이제는 아무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우리가 무엇을 잃고 살아왔는지 성찰하게 만든다. 다만, 누구나 그런 부부의 삶을 희망하지만 쉽게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울고만 있는 것은 성취에 대한 무기력감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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