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칼럼] ‘미생’ ‘삼시세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주류가 놓친 것들

입력 2014-12-10 10:13
수정 2014-12-11 00:45
▲ 주류가 미처 따라잡지 못한 시대정신을 변방에서 잡아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잇는 드라마 ‘미생’과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 그리고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사진 = tvN, CGV 아트하우스, 대명문화공장)

의외의 곳에서 연이어 사태가 터지고 있다. 독립다큐멘터리로서는 폭발적인 흥행 양상을 보이며 한국영화 전체 흥행 1위에까지 오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그런 사례라고 하겠다.

연로한 노부부의 이야기에 이렇게 큰 호응이 터질 줄은 아무도 예측 못했던 일이다. 화려한 배경도 짜릿한 액션도 없이, 그저 시골 농촌에서 노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히 담아냈을 뿐인데 중장년 관객뿐만 아니라 젊은 관객들까지 극장에 몰려들고 있다.

‘삼세세끼’도 의외로 터진 경우다. 시골 농촌에서 남자 두 명을 기본으로 하는 출연자들이 하루 종일 세 번의 밥을 지어먹으며 사이사이에 집안일이나 밭일을 하는 것이 프로그램 내용의 전부다. 심지어 엠시 역할을 하는 예능인 한 명조차 없는 단조로운 진행이다. 그런 프로그램이 떴다.

‘미생’도 그렇다. 한국 드라마의 필승 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러브라인 하나 없이 그저 직장의 모습을 담아냈을 뿐인데 떴다. 삼각관계도, 재벌2세도, 잘 생긴 미혼의 30대 실장님도 없다. 보통의 한국 드라마들이 결사적(?)으로 화사한 화면 분위기를 지키는 데에 반해 이 작품은 조명마저 우중충하다. 그런데도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대박의 사례들이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모두 한국 대중문화산업의 주류가 아닌 변방에서 시도됐다는 점이다. ‘미생’과 ‘삼시세끼’는 케이블TV 작품이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독립영화다. 주류가 미처 따라잡지 못했던 시대정신을 변방에서 잡아낸 셈이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돌의 현란한 쇼나, 억지 러브라인이나, 화사한 재벌들의 이야기만을 원하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그런 포맷이 기본적인 사랑을 받긴 하지만 또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사들은 과거의 성공공식에 취해 스타 중심 스토리텔링과 화사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사이에 시대는 보다 리얼하고, 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고한 주류시스템보다 상대적으로 몸이 가벼운 변방에서 그런 변화를 먼저 간취한 셈이다.

요즘처럼 주류시스템이 둔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과거의 성공공식에서 빠져나올 엄두를 못내는 것 같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조차 마치 보험을 들어놓듯이 언제나 기존 성공공식의 코드들을 깔고 간다. 예컨대, 전문직 드라마를 시도할 때조차 ‘미남미녀의 사랑놀음’이 중요하게 배치되는 식이다. 이렇게 해야만 대중의 기호에 맞출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은, 시대는 주류시스템의 예상보다 더 빨리 변화했다. 변화한 대중과 시대는 주류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고만고만한 작품들에 신선함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바로 이런 상황이 변방에서의 성공사례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2014년은 과거의 성공에 발목 잡힌 주류시스템의 비대함이 노출된 한 해였다. 내년엔 시대변화에 맞춰 보다 가볍게 움직이지 않으면 주류의 위기가 더 심화될 것이다. 안정된 공식에서 벗어나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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