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상회담’의 에네스 카야와 ‘마녀사냥’의 곽정은(사진 = JTBC, MBC에브리원)
“앉아있을 때는 묵묵부답인 모습인데 노래만 시작하면 폭발하는 에너지가 있다. 그래서 이 남자는 침대에서 어떨까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SBS ‘매직아이’에 출연했던 칼럼니스트 곽정은의 이 말은 발화자가 남성이라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남성이 여성의 침대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듯이 여성이 남성에게 가하는 발언도 타당하지 않다.
곽정은이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JTBC ‘마녀사냥’ 때문이었다. ‘마녀사냥’은 좀 더 자유롭게 직설적인 성담론이 가능했던 프로그램이었고, 이런 분위기에 젖어있던 곽정은이 ‘매직아이’에서 성희롱 차원의 말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발언을 한 당사자도 그렇지만 그대로 제작진이 방송분량으로 내보낸 점도 잘못이다.
그런데 곽정은이 문제가 되는 것은 비단 그 해당 발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볼 점은 ‘왜 곽정은이 주목을 받아왔는가’다. 남녀 성담론에 대해 솔직히 말했기 때문일까.
사실 중요한 것은 솔직한 담론이 아니라 그녀가 여성이었다는 점이었다. 여성이 이렇게 솔직하게 방송 프로그램에서 ‘돌직구 성적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희귀한 일이었고 이 때문에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전문예능인이 아니었음에도 주목을 끌만한 발언을 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른바 상품성의 탄생이었다. 주목받는 발언을 하는 이유는 진실된 자기주장을 넘어 자신의 상품화를 위한 포지셔닝이었다. 포지셔닝은 자신의 상품적 가치를 위해 지속적인 언행을 보여야 한다. 물론 그것은 도발적인 발언이어야 한다.
‘비정상회담’의 딜레마도 여기에 있었다. 애초에 이 프로그램은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 가운데 자신의 개성과 세계관이 뚜렷한 사람들을 선발했다. 이 때문에 각자의 색깔이 드러났기 때문에 더욱 더 생동감 있고,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비정상회담’의 성격과 이에 따른 모순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기미가요였다. ‘비정상회담’은 다케야 히로미츠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기미가요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어떻게 이런 노래를 사용할 수 있을까 비난이 가해졌지만, ‘비정상회담’의 궤적을 생각하면 곽정은의 경로의존성과 같은 패턴을 보인 사례였다. 각 나라는 물론 그 나라를 대표하는 출연자들의 정체성을 살려줘야 한다는 ‘비정상회담’의 기조가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에네스 카야를 보자. 그의 경우, ‘유생’이라는 닉네임을 가질 정도로 한국인보다 더 보수적인 정체성을 지닌 인물로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이미 결혼을 한 사람임에도 한국에서 미혼자임을 내세워 다른 여성과 교제를 해왔다는 루머에 휩싸이고 말았다. ‘비정상회담’에서 보인 유생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이는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더욱 공분을 샀다.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에네스 카야는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방송출연을 자주 했고, 이미 총각과 기혼자임을 번갈아 내세우는 등 일관성 없는 언행을 계속 해왔다. 결국 그는 ‘비정상회담’의 방송을 위해 캐릭터 포지셔닝을 해왔던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점을 쉽게 잊고는 한다. 일단 방송활동을 하는 외국인이라면 그 스스로 본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입지를 위해서 연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이는 ‘비정상회담’의 출연자도 예외는 아니다.
샘 해밍턴도 연기자이자, 개그맨이라는 점을 잊고 우리는 단지 일반 외국인이라고 생각하기 쉬웠다. 그들은 분명 로버트 할리나 이다도시와 같은 일반인들은 아니다. ‘비정상회담’만이 아니라 최근 외국인출연프로그램이 많아졌고 이에 대한 반응들도 좋은 편이라 대단히 화제가 됐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들이 정말 일반적인 외국인으로 볼 수 있을 지 숙고가 필요하다. 그 프로그램들에서 시청자의 반응을 위해 특정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것을 강화할수록 현실의 그들 모습과 다른 면모를 더욱 부각할 것이다. 그것이 개성이나 주체성 높은 행태일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또한 한국인 일반인이 생각하는 인식과 다른 언행들을 내보일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다만, 인위적인 개성의 조장과 일반 인식 사이의 괴리를 최대한 줄이면서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는 노력이 계속돼야 할 뿐이다.
달콤한 맛이 강할수록 인공적인 맛이다. 미디어에서 재밌는 캐릭터일수록 실제와 다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재미를 우연히 선사했어도 그것을 지속강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한 자신을 속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불쾌하게 생각하는 시청자도 많아지고, 대중정서와 유리되는 언행이 등장하는 것은 쉽게 예측되는 일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