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감정이 나를 미치게 할 때] 2편.

입력 2014-10-31 09:30
나는 동료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전화기 쪽으로 몸을 굽히며 멍한 눈으로 건너편 고층 건물을 바라보았다. 시야가 좁아지고 주위의 소리가 잦아들었다.

섬너의 고함 소리만 점점 커져서 나의 뇌와 몸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머릿속에 솜이 꽉 찬 것처럼 멍했다. 평소에는 땀도 잘 안 나는 편인데 어느새 손바닥이 축축했다. 섬너는 사자이고 나는 먹잇감이었다. 나는 유체이탈한 것처럼 붕 떠올라 저 밑에 덜덜 떨면서 무력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섬너는 전략이나 전술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나를 ‘개인적으로’ 공격했다. 실제로 수화기에서 그의 침이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꼼짝 않고 서서 그의 호통을 들었다. 몇 달간의 노고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생각에 몹시 실망한 나머지, 당황스럽게도 동료들이 옆에 있는데 자꾸 눈물이 새어나오려 했다.

그런데 섬너는 왜 그렇게 분개했을까? 당시 섬너는 나뿐만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파라마운트커뮤니케이션스(Paramount Communications)를 적대적 매수할 계획을 세워두었고(그로부터 9개월 후 최종 서명했다), 인수용 통화라 할 수 있는 비아콤의 주가가 빠른 기간 안에 크게 오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소니와의 계약을 발표한 이후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에 호의적인 기사가 나기도 하고 언론에 충분히 노출됐는데도, 비아콤의 주가는 오르지 않았다.

섬너는 소니와의 홈비디오 계약 사실을 발표하면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나는 모회사의 한 부문에서도 겨우 한 부서를 책임질 뿐이었다.

혹시 내 윗선에서는 이런 중대한 사안을 예상했을지 몰라도 나는 까맣게 몰랐다. 설령 알았다 해도 주식시장의 반응을 대체 내가 어떻게, 왜 책임져야 하는가? 소니와의 계약이 니켈로디언에서 중요한 사업이긴 하지만, 비아콤의 막대한 연간 수익(1993년 당시 19억 달러) 규모에서 우리가 올린 2,500만 달러의 실적은 미미한 정도였다.

섬너는 계속 심한 말을 퍼부었다.

“자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그의 장황한 폭언에서 단지 이 말 한마디만 기억난다. 독설을 퍼붓던 그의 분노만이 내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그는 사리에 맞게 행동하기는 커녕 기본 예의도 차리지 않았다. 나는 내내 죄송하다고만 웅얼거렸다.

“정말 죄송해요, 회장님. 몰랐습니다.”

나는 큰 충격을 받고 화가 났다. 억울하게 나만 찍혀서 모욕을 당한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솔직한 심정을 내비친다면 직장인으로서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분명 그 자리에서 당장 해고당했을 것이다. 나는 겉으로는 설설 기는 척하면서 대신 속으로는 이렇게 퍼부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꺼져버려, 이런 엉터리 영감탱이야! 당신이 대체 뭘 안다고 난리야!’

하지만 그거 아는가? 이러한 혼잣말은 감정을 다스리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신바람이 나서 수화기를 든 지 채 90초도 지나지 않아 섬너는 들어가라는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악담을 퍼붓고는 마음대로 뚝 끊어버리자 숨이 턱 막혔다. 충격 받고 당황하고 놀라고 무서워서 나를 제대로 변호하지도 못했다.

통화하는 동안 차오른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어떻게 해서든 주어진 정보를 처리해보려고 했다. 내 책임인가?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섬너는 어쩌자고 이번 계약이 어떤 의미인지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을까? 내가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속에서 화가 끓어오르는데 안전하고 적절하게 터트리지 못해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 몸은 어떤 식으로든 화를 퍼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울었다. 후두둑! 갑자기 눈물이 떨어졌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올랐다가 순식간에 인간쓰레기로 전락한 기분이었다. 더욱이 인간쓰레기보다 더 한심한 ‘우는 여자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