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칼럼] ‘아이돌대첩’과 ‘기생 콘셉트’의 대학축제

입력 2014-10-16 10:19
수정 2014-10-17 00:48
▲ 인터넷 상에서 선정성 논란을 빚은 모 대학축제 사진(사진 = 한경DB)

아이돌이 대학축제의 주인공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돌 공연이 대학축제의 하이라이트로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올 9월 하반기 2주 동안에만 걸스데이는 9개 대학축제에서, 에이핑크는 7개 대학축제에서 공연했다. 걸스데이는 서울과 지방의 세 대학 무대를 하루에 소화하기도 했다. 아이돌은 어느 학교에서나 저녁 시간대 무대에 서기 때문에 세 대학 무대를 하루에 돌기 위해선 ‘죽음의 질주’를 펼쳐야 했을 것이다.

아이돌이 그렇게 무리해가며 대학축제에 서는 것은 수익이 크기 때문이다. 씨스타, 시크릿, 포미닛 정도 그룹이 2000~3000만원, 비스트, 2PM, 인피니트 등이 4000만원 이상, 그리고 소녀시대 등 슈퍼스타급은 더 많은 액수까지도 받는다고 한다. 학생들이 그만큼 큰돈을 지불한다는 이야기다.

아이돌을 비롯한 유명 연예인이 무대에 서지 않으면 학생들의 관심이 시들해지고, 마치 실패한 축제처럼 인식됨에 따라 각 대학 학생회 사이에 연예인 섭외 경쟁에 불이 붙었다. 얼마나 유명한 스타를 섭외하느냐가 학생회의 능력을 결정짓는 것 같은 분위기까지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아이돌을 비롯한 기성 연예인 섭외에 예산과 에너지가 집중되다보니 학생들 스스로의 문화적 활력은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엔 한 국립대에서 가수 섭외 비용으로 1억1200만원을 써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80년대까지는 이런 일들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생들 사이엔 기성 상업문화와는 다른 독자적인 청년문화를 일궈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다. 그래서 캠퍼스 안에선 그룹사운드, 포크, 민요, 탈춤, 농악, 민중가요 등이 울려 퍼졌고 대학생들은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어 문화활동의 주체가 됐었다. 연예인과 대중가요에 열광하는 대학축제 풍경은 당시엔 정말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랬던 청년문화의 결기가 90년대 신세대, 오렌지족의 시대와 함께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해 2000년대에 이르러선 독자적인 청년문화의 존재 자체가 아예 사라져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아이돌의 대학축제 점령과 대학가요제 폐지라는 사건이다.

▲ 인터넷 상에서 선정성 논란을 빚은 모 대학축제 사진(사진 = 한경DB)

2008년 정도에 원더걸스나 소녀시대 등의 대학축제 공연 영상이 ‘**대첩’이라는 이름으로 나돌았었다. 대첩이라고 할 정도로 대학생들이 아이돌에게 열광했다는 뜻이다. 2009년엔 소녀시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이 대학축제에 초대하고픈 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학생이 스스로 문화를 일구려 하지 않고 대중문화산업이 제공해주는 상품에만 열광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올 대학축제에선 학생주점의 선정성도 논란이 됐다. 학생들이 ‘오빠... 여기서 자고 갈래?’, ‘오빠 우리집 비어’, ‘오빠 우리 주점 빨개요’ 등 자극적인 간판과 함께 메뉴판에 성행위를 암시하기도 하고, 기생콘셉트, 승무원 콘셉트 등으로 선정적인 의상을 맞추기도 하고, 붉은 등으로 마치 홍등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의상 규제로 논란의 시발점이 됐던 숙명여대에선 속옷을 드러내고 엉덩이를 내미는 하녀의 포스터가 문제로 떠올랐다. 이외에도 속옷에 가까운 옷을 입고 호객행위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한 대학에선 짧은 옷을 입고 서빙하는 여대생에서 술을 따라보라는 손님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여성을 성적 상품으로 내세워 영업하는 기성세대의 퇴폐적인 상업문화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대학생이 기성세대의 문화를 추종하는 사이에 대학생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했다. 80년대에 대학생은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주요 세력 중 하나였고, 대학생들의 발언과 문화적 선택이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고등학생의 연장처럼 느껴질 뿐이다. 대학생이 기성문화와 냉정히 선을 긋고 다시금 대안적인 청년문화의 주체가 되려 할 때, 그때 대학생이 다시 사회의 존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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