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0년차 배우 정경호, 살인마 연기에 도전한 이유

입력 2014-10-15 15:49


선한 눈빛을 가진 배우에서 살기 가득한 살인마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SBS 주말 드라마 ‘끝없는 사랑’에서 애틋한 눈빛을 보이는 반면, 최근 개봉한 영화 ‘맨홀’에선 섬뜩하기 짝이 없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 ‘자명고’, ‘무정도시’부터 코믹 영화 ‘롤러코스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꾸준한 연기한 정경호. 그가 데뷔 10년 만에 살인마 연기에 도전했다. 20대 초반 데뷔해 어느덧 30대가 된 정경호의 연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첫 번째 살인마 연기, 무조건 감독님과 만나”

‘맨홀’은 길을 가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재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늘 보는 맨홀이지만, 딱히 관심이 안 가는 것이 사실. 그런 곳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살인이다. 정경호는 왜 데뷔 10년 만에 첫 번째 살인마 연기에 도전하게 됐을까.

“‘맨홀’ 촬영 들어가기 세 달 전부터 감독님을 만났어요. 주변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인 건 맞아요. 그런 살인마를 처음으로 연기했네요. 납치를 하고 살인을 하고, 가족사진을 만드는 게 수철이의 일이죠. 생일날 아버지가 온 몸에 기름을 부었고, 화상을 입었고, 가족을 잃었죠. 수철이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했지만 결국 혼자 맨홀에 갇힌 거예요. 외로움에 사람들을 죽여서 자신만의 가족사진을 만들고. 그걸 계획하는 데 그 과정이 제일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더라고요”

“보통 드라마, 영화에서 센 악역. 살인마라기보다는 내 할 일을 하는 남자로 연기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감독님도 많이 불안하셨는지 휴대폰으로 찍어서 보고, 테스트도 정말 많이 했죠. 수철은 살인마지만 눈에 힘이 없어요. 외로운 사람. 그래서 나만의 가족사진을 만드는 외톨이니까요. 고민도 물론 많았죠. 절대 악을 보여주느냐, 아니면 수철이 살인을 하는 이유를 관객에게 설득시켜야 하나. 근데 연기 자체를 수철이에게 사연이 있게끔 표현하려 했어요. 참 어렵더라고요. 악은 악인데, 너무 악도 아니고 연민을 느껴야 하니까. 고민을 참 많이 했던 거 같아요”



“30대 배우, 어떤 연기를 해야 되는지 고민했죠”

정경호는 연기, 그리고 배우라는 직업 앞에 사뭇 진지했다. 하정우 감독이 연출한 ‘롤러코스터’에서 코믹 연기를 펼친 그가 1년 뒤 ‘맨홀’로 살인마 연기까지 도전하면서 현재 드라마 촬영까지 임하고 있던 것.

“군대를 다녀와서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 배우로서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 어떤 작품을 해야 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내 나이에 한국 배우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외국 배우들은 어떤 경우인지. 정말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결단을 내렸죠. ‘내 나이 아니면 못 하는 연기를 해보자’. 그래서 전역 후 ‘롤러코스터’, ‘무정도시’, ‘맨홀’에 출연하게 된 거에요. 평범하진 않은 캐릭터를 선택하게 된 거죠”

“비슷한 캐릭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참고 기다리고, 자숙의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었죠. (웃음) 드라마, 영화 둘 다 참 중요한데 드라마는 순발력과 집중력을 갖게 해줘요. 저처럼 배워가는 배우들에겐 참 좋은 거죠. 영화는 3-4달 감정을 놓지 않고 한 작품을 끌고 나가는 진중함, 짧고 긴 호흡이 중요해요. 둘 다 정말 배울 게 많아서 포기할 수가 없네요”



“실제 ‘맨홀’. 정말 무섭더라고요”

영화 ‘맨홀’은 세트장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어두운 곳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사람을 납치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맨홀을 정경호는 어떻게 느꼈을까.

“아마 지금까지 촬영했던 작품 중 고생했던 걸로 세 손가락 안에 들어요. 처음 해보는 경험도 많았고요. ‘맨홀’에서 아가씨를 욕조에 가두고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아무리 촬영이지만 기분이 정말 싫더라고요. 결국 술의 힘을 조금 빌렸어요.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죠”

“무서운 영화, 살인이 이뤄지는 공포의 공간 ‘맨홀’이지만 우리 영화는 그게 포인트가 아니에요. 두 자매의 코 끝 찡한 이야기가 담겨 있잖아요. 아버지로 인해 가족을 잃고, 또 말 못 하는 동생을 혼자 먹여 살리는 언니. 찡한 부분도 분명 있어요. 그게 우리 영화만의 포인트인 거 같아요”



정경호는 정말 꾸준히 연기 변신을 시도했고, 뚜렷한 목표를 가진 배우였다. 코믹, 멜로, 스릴러.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또 다른 꿈을 향해 나아갈 줄 아는 욕심 많은 배우였다.

“안 해본 역할을 하면 신이 나요. 평범한 역보다 성향 자체도 확연하게 다른 역할을 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없는 인물이 좋지 편안한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몸이 힘들어서 차기작은 편안한 걸 해야지 싶다가도, 그게 안 돼요”

“‘맨홀’로 확실히 느꼈어요. 이번 연기를 하면서 소모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비슷한 연기보다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참고 기다릴 줄 아는 배우가 돼야 겠죠”

<사진=최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