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률이 3년 만에 내놓은 정규 6집 ‘동행’(사진 = 한경DB)
가수 김동률이 3년 만에 내놓은 정규 6집 ‘동행’은 미국 빌보드 월드앨범 차트(18일자)에서도 3위에 올랐다. 아이돌 가수들이 이런 기록을 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20년차 싱어송 라이터 솔로가수가 이런 기록을 낸 적은 없었다.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 일간 1위를 차지하는 일도 흔하지만, 김동률의 ‘그게 나야’는 주간 음원 차트에서 2주 동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음원차트에서 주간 1위를 차지하는 것은 흔하지만,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오랜만에 발표한 앨범의 1위는 아무래도 많은 홍보가 이뤄져야 가능하다. 특히 방송활동을 통한 인지도의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대가 김동률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그런데 12일 SBS ‘인기가요’에서 김동률은 태티서, 소유X어반자카파를 물리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2001년 3집 앨범 타이틀곡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로 2002년 1월 SBS ‘인기가요’에서 1위에 오른 지 12년만이었다. 아이돌 그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방송활동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지상파 방송사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됐다. 방송 활동뿐만 아니라 별다른 음악 활동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김동률의 1위는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단지 가을철에 맞는 노래이기 때문에 각종 차트를 섭렵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이돌 음악에 관한 피로증 때문일까. 복고음악의 귀환이나 90년대 세대들의 문화적 파워라고 할지도 모른다.
90년대 같은 음악 아이콘 서태지와 비교할 수 있다.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 팬들은 열정적이다 못해 격정적이었다. 하지만 김동률은 격정적인 팬보다는 은근한 팬들이 더 많았다. 그 은근한 팬들은 비록 앞으로 나서지 않는 은둔의 모습을 보였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격정적인 서태지의 팬들은 그 에너지 때문인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서태지 본인도 격정적이었다. 이 때문에 그의 음악은 파격에 초점을 맞췄다.
파격은 전제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파격을 시도하는 사람이 어떤 콘텐츠를 내놓아도 그를 따르는 팬들이 선호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자칫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서태지의 음악들은 서태지가 아티스트로 거듭나는 데는 도움이 됐을지 모르지만, 대중적인 선호 즉 뭇사람들이 원하는 음악을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서태지의 음악은 친숙보다는 낯설음이 우선이었다. 대중적 뮤지션보다는 예술 음악가의 반열에 오르려했기 때문이다.
20여년 동안 김동률의 음악은 일관성이 있었다. 그간의 작품들은 크게 낯설지도 않았다. 항상 그의 음악은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느낌이었다. 인기에 힘입어 예술가의 반열에 올라가려하기보다는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뮤지션으로 남았다. 전혀 변화가 없는 음악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이른바 감성적인 음악에 초점을 여전히 두고 있었다. 이 때문에 김동률하면 확고하게 떠오르는 음악 이미지가 있었다. 이런 점이 이번 김동률의 6집 앨범에 대해 이러한 연상 작용을 일으켰고, 각종 음원이나 순위 차트에 그대로 반영됐다.
만약 20년 후 엑소나 소녀시대, 카라, 씨스타, 크레용팝, 2NE1등은 존재할 수 있을지 그리고 팬들이 원하는 음악을 여전히 내놓고 있을까 의문인 상황이니 그 가치를 더한다.
물론 김동률의 다시금 폭발시킨 촉매제는 따로 있었다. 이 점은 ‘김광석신드롬’과 차이점이기도 하다.
▲ 김동률이 3년 만에 내놓은 정규 6집 ‘동행’(사진 = 한경DB)
2012년 개봉한 영화 ‘건축학 개론’은 한국 멜로영화의 최대 흥행기록인 410만 관객동원에 성공했고, 이 영화의 배경 음악으로 김동률 작사 작곡의 ‘기억의 습작’이 흘렀다. 영화의 내용과 음악은 거의 완벽하게 융합해 감동을 배가시켰다. 이 영화를 통해 대한민국 남성들의 국민적인 연인이 된 수지는 노래의 이름인 ‘기억의 습작’을 정확하게 제시한다.
이 영화 이후 새삼 김동률 음악은 폭발적인 주목을 낳았다. 때문에 그의 신곡에 대한 주목을 낳았다. 따라서 이번 앨범은 많은 이들이 기다렸는데, 그 앨범은 이전부터 김동률의 팬이었던 사람만이 아니라 영화적 감동을 통해 김동률 음악 세계에 편입된 이들도 고대했다.
중요한 포인트는 ‘기억의 습작’과 같은 맥락의 음악이 김동률의 6집에 흐르지 않았다면, 2014년 김동률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 만약, 스타 우월주의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을 통해 낯설음을 제시했다면,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출판가에는 드라마셀러나 시네마셀러라는 말이 이미 확고히 자리를 잡은 모양인데, 음악에도 드라마나 영화의 OST가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영상과 결합돼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영상 콘텐츠에 뮤지션들이 관심을 크게 갖거나 가져야할 이유다.
만약 서태지의 음악이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찾았던 대중영화에 등장했다면, 서태지의 앨범은 다른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더구나 오랜만에 예능 활동을 시작했음에도 결과는 김동율만 못했다. 이로써 격정보다는 은근의 미학이 격정적인 결과를 낳은 셈이 되었다.
두고두고 듣고 싶은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깊은 감동의 물결로 빠져들게 만든다. 오락 영화의 배경 음악 보다는 로맨스나 멜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될 때 더욱 깊은 감동에 빠져들게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확고히 자리 잡고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사로잡는 가수들이 그렇게 많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향은 아이돌 그룹 중심의 기형적 음악 시장이 팽창하는 한 여전할 것이며, 김동률 같은 가수의 가치는 더욱 힘을 발휘할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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