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칼럼] ‘유혹’, 박하선을 바보로 만든 황당한 드라마

입력 2014-09-18 11:53
수정 2014-09-19 12:15
▲ 배우 박하선은 드라마 ‘유혹’에서 비호감캐릭터로 그려져 실제 이미지에서도 악영향을 감수해야 했다.(사진 = SBS)

‘유혹’이 핵심커플인 권상우와 최지우를 연결시키며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이들을 행복하게 맺어주기 위해 박하선의 캐릭터는 비호감으로 흘러갔고, 그 비호감이 너무나 커서 극중 캐릭터뿐만 아니라 배우 박하선의 실제 이미지에까지 악영향을 미쳤다.

박하선은 권상우가 최지우에게 돈을 받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비정상적으로 짜증만 내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권상우는 바람을 피지도 않았고 박하선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시종일관 짜증만 내며 권상우를 밀어냈다. 그 와중에 자신은 다른 재벌 남자의 별장으로 출퇴근하는 기이한 행적을 보였다.

자기 자신이 권상우를 밀어내 이혼까지 하더니 갑자기 자신이 피해자라며 복수를 다짐하고 나섰다. 그러더니 사랑하지도 않는 재벌 남자와 결혼해 복수를 요구했다. 사랑하지 않는다더니 재벌 남자의 사생활을 가지고 다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결혼하면서 아이를 못 가진다는 사실을 숨기는 황당함까지 보여줬다.

시종 짜증으로 일관하고, 상대를 과도하게 의심하고, 정작 본인의 석연치 않은 행실은 무시하고, 이유 없이 복수심을 불태우는 캐릭터였던 것이다. 그래서 박하선이 재벌 남자인 이정진과 결혼한 후 다시 불행해지자 시청자 반응은 동정론보단 ‘니 무덤 니가 팠다’는 지적이 주류였다.

박하선 캐릭터를 이렇게 황당하게 만든 건 바로 작가다. 작가는 권상우를 최대한 로맨틱하게, 그리고 권상우와 최지우의 사랑을 최대한 순수하게 그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권상우와 최지우는 유사 불륜으로 결혼을 파탄 낸 당사자다. 그런 커플을 로맨스로 포장하려니 결국 본처인 박하선 캐릭터를 희생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권상우는 로맨틱한, 이상적인 남자이기 때문에 비록 여자 재벌의 돈을 받고 며칠 밤을 같이 지내지만 부인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부인이 혼자 오버해서 의심하고 짜증내면서 결혼 파탄의 원인제공자가 된다는 설정이다.

사실 남편이 다른 여자하고 같이 지내면서 연락도 안 한다면 부인 입장에선 의심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 당연한 의심을 하는 박하선을 작가는 유난을 떠는 까다로운 여자로 묘사했다. 권상우를 멋지게 그리기 위해서.

박하선이 재벌 남자에게 시집간 이후에도,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밤을 지새우고 다니는 상황이라면 부인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도 작가는 박하선이 남편을 과도하게 의심하고 몰아세우는 것처럼 묘사했다. 이런 식으로 본처를 지나치게 예민한 비호감으로 몰아간 결과 권상우 캐릭터가 불륜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로맨틱한 순정남으로 부각되는 마법이 이뤄졌다.

이렇게 해서 ‘유혹’은 결국, ‘주부들이여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도 꼬치꼬치 따지지 말고 꾹 참으라. 너무 따지면 자기 무덤을 파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 됐다. 극중 두 번 결혼해서 두 번 따진 박하선을 최악의 비호감 캐릭터로 그린 결과다. 아무리 권상우, 최지우 불륜 커플을 로맨틱하게 포장하고 싶었어도 본처 캐릭터를 굳이 이렇게 비호감으로 몰아가야 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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