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하늬, 비로소 붉게 핀 치명적인 매력

입력 2014-09-16 11:13


고매하지만 상스럽고 우아하지만 천박하다. 상극을 달리는 이미지를 양손에 붙들어 매고 조율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배우 이하늬(32)는 해냈다. 심지어 한 여자의 기구한 인생에 관객들로 하여금 연민마저 자아낸다. 이하늬는 ‘타짜-신의 손’을 통해서 배우로서의 인생을 활짝 꽃 피우며 영화 속 단연 히든카드로 떠올랐다.

최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하늬는 밝은 모습으로 취재진을 맞이했다. 환한 웃음과 털털한 말투는 금세 듣는 이들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을 단번에 사로잡는 능력만큼은 우사장과 버금가는 듯보였다. ‘타짜-신의 손’을 통해 그녀의 연기내공이 재조명 받고 있는 가운데, 이하늬는 영화와 우사장 캐릭터에 대한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 이하늬 “꾸준한 연기, 나도 모르게 내공이 쌓이더라”

이하늬에게 ‘타짜-신의 손’은 특별하다. 극과 극을 오가는 우사장 캐릭터를 맡아 이하늬는 연기의 폭을 넓히고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스스로 입증했다. 이재용 감독의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라는 영화를 통해서 강형철 감독을 알게 된 뒤 우사장 캐릭터에 이끌려 ‘타짜’에 출연하게 된 이하늬는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칭찬에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하늬는 “객관적으로 기대를 많이 내려놓은 상태다. 매일매일 연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대 연기도 하고 때에 맞지 않은 일일드라마도 했었다. 딴 짓일 수도 있겠지만 연기를 했던 시간들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구나, 싶었던 게 내공 아닌 내공이 많이 쌓였더라.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도 ‘나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믿게 된 것 같다. 스스로 깬 것들이 많기 때문에 그 부분까지 봐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게 평가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좋다”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 이하늬 “우사장 캐릭터,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느낌”

캐릭터에 대한 이끌림으로 작품에 임했지만 우사장은 결코 쉬운 캐릭터가 아니었다. 이에 이하늬는 “정신적인 소모가 엄청났다. 광대가 이래서 미쳐 죽는구나, 빨리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번 기회를 통해 배우가 온전하게 연기생활을 하려면 실제 생활이 정말 견고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이 방황하고 탈탈 털리는 기분까지 들더라”고 말했다.

좋게 말하면 팔색조, 나쁘게 말하면 다중인격의 우사장 캐릭터는 이하늬의 실제 고민을 토대로 구현됐다. 이하늬는 우사장이 이렇게 변하기까지의 전사를 끊임없이 되뇄다고. 이하늬는 “어떻게하면 내 얼굴이 일그러지고 못생겨 보일까, 삶에 너무 찌들어서 ‘나 건들지 마’ 하는 표정이 인에 박힌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도 고민했다. 예쁘게 나올까 하는 고민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하늬가 자율적으로 우사장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것은 강감독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 “정말 아무 말이나, 아무 행동이나 해도 되냐고 물었다. 강감독의 신뢰 때문에 내가 스스로 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전작이었던 ‘타짜’(2006)에서 섹시 코드를 강조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김혜수의 정마담과 묘하게 연장선상에서 비교되고 있는 우사장에 대해서도 밝혔다. 이하늬는 “촬영 때는 전혀 염두하지 못한 사실이다. 전혀 다른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비교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약간의 섹시코드가 있을 뿐 차원이 다른 육신을 갖고 계시지 않나. 오히려 영화 홍보를 하면서 두 캐릭터를 붙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정마담과 비교하지 않고 우사장에 집중했던 게 내 입장에서는 득이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 이하늬 “속옷차림? 나에게는 작업복이었다”

그럼에도 ‘타짜-신의 손’ 합류 전, 이하늬에게 한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고. 이하늬는 “여배우에게 몸매를 드러내는 부분이 부담이 아닐 수가 없다”고 노출신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스태프들이 너무 많이 도와줬다. 우사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팅이 돼 있어서 ‘노출신, 그냥 하지 뭐’하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팬티나 브래지어로도 충분히 끈적하게 바라볼 수 있는데 이를 유쾌하게 만들어주셔서 오히려 부담이 적었던 건 사실이다”

이어 이하늬는 강감독을 “경쾌하고 코믹하게 푸는 데에 달인”이라고 소개하며 “그만큼 배우를 소중하게 생각하신다는 거다. 끊임없는 대화와 신뢰 속에서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팬티를 타이트하게 잡는 신이 있었다. 틸업(서서히 화면이 올라감)을 요구하시기에 빼도 박도 못 하겠더라. 그런데도 그냥 한다고 했다. 우사장을 하기로 한 이상 창피해할 수 없지 않아. 기왕 하기로 한 거, 몸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이토록 대찬(?) 여배우가 둘씩이나 있는 바람에 오히려 민망함은 강감독의 몫이기도 했다. 이하늬는 속옷을 고르는 데에 신중을 기했다고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감독님에게 ‘속옷 픽스해 달라’고 하면 ‘우사장이 알아서 해’라고 머뭇거리시더라. 그런데 속옷이 우사장에게는 작업복이지 않나. 굉장히 중요했다”며 웃기도. 몸매 관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하늬는 “그야말로 남자를 홀릴 만한 몸이기 때문에 조각처럼 만들 필요는 없었다. 현장에서는 최대한 몸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아랫배에 힘을 주니 오히려 라인이 나오더라”고 말했다.



◆ 이하늬 “영화 촬영장,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 가야금으로 단련된 국악인이자, 흑인음악의 소울을 사랑하던 음악인이자, 무대 위에서 땀 흘리는 것에 희열을 느끼던 예술인이자, 그리고 또 새로운 이들의 인생을 입는 영화인으로, 이하늬는 그야말로 종합예술의 인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 수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이하늬는 스스로 많이 단련이 된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녀가 ‘타짜-신의 손’을 향한 다양한 평가에도 초연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하늬는 “좋든 나쁜든 평가에는 흔들리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실망하거나 또 너무 날아다니기엔 나도 나이가 많이 들지 않았나. 지금까지 풍비풍파를 겪었고 배우로서의 슬럼프도 겪었다. 영화는 내게 신뢰를 주는 감독과 나를 배우로 바라봐주는 배우들과 함께 놀이터와 같은 공간이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촬영장에서 도망가고 싶었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타짜-신의 손’ 촬영에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엄청 고되게 고민하고 치열하지만 그 자체가 좋은 거다. 항상 가고 싶고 어떻게 하면 즐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연기할까 하는 고민들을 했던 현장이었다”고 전했다. 이하늬는 ‘타짜-신의 손’을 통해 비로소 절정으로 붉게 피어났다. 배우로서의 이하늬 행보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 민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