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유쾌하고 솔직한 배우가 또 있을까 싶다. 1시간가량 진행된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주지훈(33) 시종일관 밝은 모습이었다. 형식을 갖춘 인터뷰보다는 수다에 가까웠다. 이는 주지훈의 내면에서 발현되는 여유로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으로부터 비롯된 당당함이기도 했다.
주지훈은 ‘좋은 친구들’에서 적당한 속물근성을 가진 인철 역을 맡아 언론과 관객들의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주지훈이라는 배우에게 주어진 혹은 기대하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기 좋게 뛰어넘은 호연이었다. “영화에 대한 평이 좋지 않다면 이 자리도 불편했을 거다”라며 너스레를 떠는 주지훈에게는 여전히 생생한 숨을 머금은 활기가 돋았다.
◆ 주지훈 “아역에서 성인연기자로…좋다고 뛰어놀았다”
주지훈은 ‘좋은 친구들’을 통해 관객들이 본인의 삶을 반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주지훈은 “평범치 않은 사건을 끌어 썼지만 어린 친구들이 성인이 됐을 때 구축한 가치, 신념, 인간관계 등은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다. 아마 소주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주지훈에게 ‘좋은 친구들’ 출연을 고사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작품에 대한 열망이 컸기 때문에 주지훈은 이도윤 감독과의 첫 만남에서 큰 도박을 걸었다. “중간 관계를 생략했다. 척하지 않고 남자대남자로 대했다. 도박이었는데 다행히 잘 맞았다. 친해질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지훈에게 이도윤 감독은 ‘문을 열어 준’ 고마운 이였다. 주지훈은 “연기적인 측면에서 내게 문을 열어준 거다. 사실 문이 있어야 열지 없으면 못 열지 않나. 그 기회를 이도윤 감독이 준 거다. 나는 그저 좋다고 뛰어놀았다”고 말했다.
영화에 대한 주지훈의 애정은 그와의 대화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주지훈은 “외적과 내적인 비율은 1:1”이라며 외모와 내면의 비율을 맞춰 연기하려고 힘썼다고 전했다. “외적인 것은 체중을 불리는 것이었다. 내면으로는 인철의 양아치 같은 모습을 어떻게 조절할까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인철이 민수(이광수 분)을 꼬셔서 일을 벌이는 과정에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이 드러나지 않나. 이 명확하지 않은 감정 표현이 어려웠다. 내 스스로의 욕망, 친구를 향한 마음 등이 공존해야 했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도윤감독에게 자필 편지를 받았던 일화를 공개하며 주지훈은 “‘인철이 내 앞에 실제로 앉아있는 기분’이라고 하셨는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더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좋은 친구들은 주지훈에게 많은 것을 남겼겠다. 넌지시 묻자 주지훈은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한 기분이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 부산에서의 3개월, 환상케미는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세 친구간의 생생하고 내밀한 감정 교류가 주된 줄기이니만큼 ‘좋은 친구들’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라이브함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이는 이도윤 감독의 분위기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주지훈은 “스타일이 굉장히 잘 맞은 거다. 만약 이도윤 감독이 생각하는 100에 다 맞춰 달라 강요했다면 힘들었을 텐데, 주제의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는 내게 관용을 베풀었다. 우리가 여러 번 힘들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것이 그것 때문이다”고 말했다.
촬영 현장은 리얼리티를 넘어선 실제 상황을 원했다고. 계획엔 없었지만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장면들이 많았다. 서로를 의지하고 배려하면서 이루어지는 촬영 현장 속에서 연기합이 맞아들어갈 때의 희열은 주지훈을 더욱 춤추게 했다. 주지훈은 “감독님이 ‘지훈아. 일단 그냥 할게’라고 할 정도다. 워낙 글을 잘 쓰시니까 현장에서 그런 것도 가능했던 거다. (이)광수도 고생이 많았다. 술을 마시는 신에서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싶어 했고 감독님도 용인해주셨다. 우리들 모두 본능적으로 느끼고 연기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연출부와 배우들뿐만 아니라, 배우들 사이에서의 시너지도 상당했다. 특히 오랜 시간 희노애락을 겪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다 보니 지성-주지훈-이광수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할 터. 영화가 촬영되는 부산에서 이들은 3개월간을 거의 동고동락했다. 주지훈은 “강제적인 집중이 있었다. 다들 서울 올라갈 생각이 없으니 친해질 수밖에 없더라. 물론 우리끼리 좋은 이야기만 오간 것은 아니었다. 섭섭한 얘기도 분명 오갔다. 그런 것들이 영화 속에 묻어난 것 같다. 남자들끼리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도 있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주지훈 “배우는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것”
주지훈은 ‘궁’, ‘결혼전야’ 등에서 로맨틱한 모습을, ‘왕이로소이다’에서 코믹한 모습을, ‘마왕’에서 묵직한 모습을 보이며 꽤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배우였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그의 대표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주지훈은 그런 대중들의 반응을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수용했다.
“대중문화에서 대중적으로 잘 된 게 기억에 남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만약 ‘궁’이 싫다고 해도 대중들은 주지훈을 떠올리면서 ‘궁’을 생각할 것이다. 배우는 작품으로 말하는 거다. 그래서 결과가 중요한 거다. 대중들의 평가를 달리 바꿔야겠다는 강박은 없다” 이어 주지훈은 작품 선정에 대해 1차적으로 본인과의 공감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나는 일상을 충실하게 살고 있다. 그 안에서의 나의 고민이나 생각 등 흡사한 것이 작품에 묻어나면 좋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주지훈을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그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나도 여러 가지 일을 겪을 때 음악이나 책, 영화 등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 위로라는 게 힘든 것을 안아주는 것 이외에도 기쁨을 주기도 하지 않나. 나 또한 그것을 전달해주고 싶고 누군가에게 위로나 위안이 되고 싶다.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연기에 정진해나가고 있다” 고 전했다.
[사진= 최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