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동건(42). 어린 나이에 데뷔해 어느덧 데뷔 20년. 그 시절부터 조각 미남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고, 지금도 역시 잘생긴 남자 배우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 배우로 자리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는 사랑도 했지만 거친 역할도 꽤 많았다. 옴므파탈도 많았지만 카리스마를 내뿜어야 할 때도 많았다는 말이다. 영화 ‘우는 남자’(이정범 감독, 다이스필름 제작)에서는 무려 킬러다.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새롭고 달랐다. 도대체 무엇이 장동건을 움직였을까.
장동건은 ‘우는 남자’에서 딜레마에 빠진 킬러 곤 역을 연기했다. 어릴 적 사막에 버려져 킬러로 길러진 곤. 곤은 타깃을 처리하던 중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그에게 마지막 미션이 내려지면서 더욱 곤경에 빠지고 만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사람이기보다 살인 병기에 가까운 킬러. 장동건은 단순히 멋있게만 보이는 캐릭터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깊은 부분까지 표현해낼 수 있는 곤에게 매료됐다. 그렇게 이정범 감독과 손을 잡았다.
◆ “매너리즘으로 인한 슬럼프, 벗어나고 있는 중”
장동건은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말하며 슬럼프를 언급했다. 영화제에서 상도 많이 받고, 데뷔 때부터 주목을 받아온 장동건에게 20년 만에 슬럼프가 찾아왔다니 이것도 아이러니. 하지만 슬럼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슬럼프인지도 모르게 살아왔을 뿐. 누구보다 완벽한 장동건에게 어려움의 시간은 있었다. 그 때 ‘우는 남자’를 만났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시기에 만난 작품. 내적인 요인을 조금 벗어버리고 싶었기에 그는 이 영화를 선택했다.
“배우에게 맞는 옷, 안 맞는 옷. 결국은 매너리즘으로 인한 문제였어요.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지나갈 때가 있었는데 다행인 건 지금에서라도 그걸 알게 된 거죠. 연기를 하면서도 예전 같지가 않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겨난 시기였어요. 제 안에 있는 문제이기도 한데 결국 그걸 벗기 위해 선택한 거예요. 사실, 그걸 다 벗었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벗어나려고 노력을 했던 작품이 바로 ‘우는 남자’죠. 지난해였나? 소지섭 씨가 시상식에서 슬럼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공감이 됐어요. 슬럼프는 개인의 흥망성쇠와 상관없이 찾아오더라고요. 그걸 인지하고 벗어나려고 많이 노력 했어요.”
틀에 박힌 행동이나 방식을 씻어내고 싶어 했지만 곤이라는 캐릭터는 지금껏 장동건이 보여줬던 캐릭터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 부분들이 있었다. 그랬다. 외모로만 봐서는 여성스럽고 부드러워 보이는 장동건이었지만 관심은 그와 반대되는 부분들에게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래서 자신이 했던 남성적이고 선이 굵은 캐릭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연장선상이었다. 새로운 것으로 변화를 꾀하려 하기 보다는 지금껏 보여줬던 모습들에서 한 걸음 나아간 부분들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이다. 장동건만의 방법이었다.
“작품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정범 감독의 인터뷰였어요. 아마 ‘아저씨’라는 영화가 끝날 때 즈음이었을 거예요. 이정범 감독과는 일면식도 없을 때였죠. 인터뷰에서 이정범 감독이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난 앞으로도 느와르만 하겠다’고. 그 때 제대로 봤어요. 감독들은 다양한 걸 시도해보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한 가지만 고집하겠다는 걸 보고 왠지 모를 신뢰가 가더라고요. 느와르의 장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저씨’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은데 ‘꼭 달라야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사람이 만드는 영화는 흐르는 정서 자체가 비슷하고, 분위기도 비슷하니까요. 그래도 분명히 다른 점은 존재하니까요.”
◆ “‘아저씨’ 원빈처럼 멋진 액션 없어”
영화 ‘우는 남자’의 포스터와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대중은 이정범 감독의 전작인 ‘아저씨’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뭔가 다르다. 장동건이 그런 말을 했다. “이정범 감독은 이번 작품을 ‘열혈남아’와 ‘아저씨’의 중간 지점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런 영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정말 많이 했다”고. 그래서일까? ‘아저씨’와 ‘우는 남자’의 액션 콘셉트도 많이 다르다. 멋진 액션도 없단다. 장동건은 이번 작품을 위해 4개월 정도 액션을 연습했는데, 두 달 동안 연습한 걸 모두 뒤집고 새롭게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이상하다. 왜 장동건의 액션이 기대되는 것일까. 그 때를 떠올리는 장동건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촬영 당시가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이번 영화는 멋진 액션이 없어요. 몸이 부딪히는 액션만 있다고 해야 될까? 스타일리시한 부분에 대해 기대를 하고 오는 관객들은 실망할 수도 있을 거예요. 액션을 본 이정범 감독이 ‘한 번 눈여겨 보고 마는 액션영화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어떤 감정이 남아 있는 그런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모든 게 새롭게 세팅이 되고 다시 연습을 하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바뀐 콘셉트가 체력적으로 확실히 부담이 많이 됐거든요. 그래도 확신이 있었기에 열심히 했죠. 아마 ‘아저씨’에서 처럼 상체를 탈의하고 멋있게 머리를 자르는 그런 모습은 없는 것 같네요. 하하.”
제 아무리 잘생기고 멋있는 배우라도 아내와 아이 앞에서는 영락없는 아빠일 뿐이었다. 심각하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도 가정 이야기에 얼굴이 해맑아지는 ‘아빠’ 장동건. 그 모습이 이렇게 새로울 줄이야. 장동건은 가정을 가지고 나서 생긴 변화를 하나 언급했다. 결혼 전에는 이런 영화를 찍고 와서 혼자 있으니까 그 감정을 가져가게 되는데, 지금은 집에 가면 아이가 환하게 맞으니 역할에서 훅 나오게 된다고 말이다. 따뜻한 보금자리가 갖는 영향. 그 영향은 작으면서도 큰 변화로 다가오고 있었다.
“영화 흥행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는데 사실, 이번 작품은 신경이 많이 쓰여요. 물론, 흥행은 잘됐으면 좋겠지만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흥행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영화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려면 어쩔 수 없는 필요조건이니까. 그래도 솔직한 심경은 평가가 좋은 영화에요. 흥행이 잘 돼도 ‘안 좋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좀 그럴 것 같아요. 많이 봐주세요. 하하.”(사진=CJ엔터테인먼트)
한국경제TV 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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