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인터뷰] '인간중독' 조여정 "계속되는 짝사랑, 연기"

입력 2014-06-03 09:21
동그란 눈, 작은 체구, 똑 부러진 말투,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상큼함. 사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나는 배우 조여정(33)을 만났다.



'인간중독'(김대우 감독)은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1969년 엄격한 위계질서와 상하관계로 맺어진 군 관사 안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비밀스럽고 파격적인 사랑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조여정은 부담스럽지만 밉지 않은 김진평(송승헌)의 아내 숙진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발휘했다.

◆ “안경만 쓰면 그 분이 왔어요?”

영화가 공개된 후 숙진을 연기한 조여정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조여정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좋은 이야기를 들어서 좋았죠. 힘든 건 없었어요. 숙진이가 돼서 평소 뱉지 않는 말투를 사용하니까 재밌었어요. 어떤 사람을 만들어가면서 영혼을 탐구해가고 이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 것 같은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도 재밌었죠.” 송승헌의 부담스러운 아내 숙진 역을 연기해서 즐거웠단다.

“송승헌의 '부담스러운 와이프'라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숙진은 쾌활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여자죠. 하지만 부담스러운 와이프였어요. 숙진은 그 위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 여자예요. 장군이 될 남자의 와이프가 해야 될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걸 하죠. 숙진은 사실 더 크게 보고 있는 사람이니까. 위치에 맞는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해요. 어마어마한 여자죠.(웃음) 나이팅게일회 사람들이 가흔(임지연)에 대해서 말할 때도 표정은 안 불쌍해하면서 말만 불쌍하다고 하잖아요. 그게 장군이 될 사람의 와이프로, 나이팅게일회를 이끄는 사람이 해야 하는 행동이었던 거죠.”

영화 ‘방자전’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김대우 감독과의 호흡은 무척 좋았다. 군인 서열도 잘 몰랐던 조여정은 숙진을 잘 이해하기 위해 김대우 감독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군사에서 자란 김대우 감독은 열심히 대답해줬다고. 조여정은 ‘김대우 감독을 피곤하게 했던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특히 안경만 쓰면 숙진이가 된 것 같았다고.

“의상, 헤어, 안경에도 신경을 썼어요. 안경을 쓰고 연기하는 건 불편하지 않았어요. 안경을 써야 의상을 다 갖춰 입은 기분이었고 숙진이가 된 기분이었죠. 안경만 쓰면 숙진이가 왔어요. 마스크 같았죠.(웃음) 안경은 제일 중요한 의상이었어요.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될 것 같았어요. ‘방자전’의 춘향이하고 다른 뭔가를 해보고 싶었고 감독님도 그런 생각으로 절 캐스팅 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 “쉬는 시간에도 송승헌을 괴롭혔던 이유?”

조여정은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숙진으로 사는 게 즐거웠다. “숙진은 목욕탕에 있건 어디에 있건 하루 종일 떠드는 여자죠. 끊임없이 진급에 대해 혼자 신나서 떠드는 여자예요. 솔직히 매일 그러는 건 피곤하잖아요. 관객은 잠깐 보지만 진평은 매일 보는 거예요. 그래서 진평이가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진평은 진급에 관심 없는 남자인데 와이프는 그게 행복이고 완벽한 삶이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숙진이 나쁜 여자는 아니죠.” 조여정은 피곤한 여자 숙진으로 완벽하게 변신하기 위해 쉬는 시간에도 송승헌을 괴롭혔다고.

“숙진은 저랑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어요. 그래서 재밌었죠. 숙진은 ‘그죠. 당신?’이라고 물어보며 끊임없이 동조를 구해요. 자신의 생각일 뿐인데 이 사람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단정지어요. 영화는 두 시간이지만 진평은 일생을 겪어야 되잖아요. 그런 식이니까 괴롭히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승헌 오빠에게 장난 반, 의도 반 카메라 밖에서도 뭐만 하면 ‘그죠. 당신?’이라고 물어봤어요. 오빠가 나중엔 듣기만 해도 힘들어하더라고요.(웃음) 그래야 서로 연기할 때도 호흡이 잘 맞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절 조여정으로 보면 안 되니까요.”

촬영은 매일이 재미있었다. 모두 재밌는 사람들 덕분에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군인 아내들의 모임 나이팅게일회 멤버들과 찍는 신이 많았던 조여정은 더욱 즐거웠다고. “전혜진 언니 정말 웃기죠? 연기 하면서 진짜 재밌었어요. 제가 원래 팬이에요. 공연 보고 연기를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하게 되면서 너무 좋았어요. 혜진 언니가 잘 받아주니까 정말 좋았죠.” 앞서 종가흔 역의 임지연은 조여정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여정은 임지연의 이야기가 나오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따로 조언을 해준 건 아니에요. 솔직히 처음 시작하는데 부담감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래서 네가 종가흔이 처음인 것처럼 우리도 이 역할들이 처음이다. 스타트라인은 똑같다. 다들 어렵고 이런 곳에 선후배는 없다. 너무 부담감을 가지지 말라고 했죠. 그런 이야기가 고마웠나봐요. 같이 한 신도 거의 없지만 힘이 됐나 싶기도 하고... 제가 그런 이야기를 안했어도 잘 했어요. 감독님이 담대하다고 하는데 진짜 담대하고 프로예요. 제가 숙진이 하기도 바쁜데 어떻게 조언을 하겠어요. 감독님과 두 번째 작품이니까 더 잘하고 싶었고 집중했어요. 그 친구는 처음 봤을 때부터 잘 할 줄 알았어요.”



◆ “연기에 대한 고민은 기꺼이...”

조여정은 자신의 남편으로 나온 배우 송승헌이 연기한 진평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진평이 안쓰러웠기에 그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었단다. “진평 때문에 울게 돼요. 가흔(임지연)이 그만 만나자고 말하고 진평이 발버둥 치는 장면들이 나오잖아요. 갑자기 책상을 정리하거나 평소답지 않게, 그 사람답지 않게 하는 행동들. 그런 것들이 너무 가슴 아팠어요. 진평의 사랑을 응원하는 쪽이었어요. 진평이 안쓰러웠어요. 진평 때문에 울게 되더라고요. 영화보고 울었어요.” 조여정은 ‘인간중독’의 개봉날 배우 최여진과 함께 영화를 보기도 했다고.

“개봉날 같이 (최)여진이랑 둘이 봤어요. 그때도 울었죠. 근데 여진이가 영화를 보고 난 후 언니 너무 웃기다고 어쩜 저렇게 뻔뻔하게 잘하냐고 해주더라고요. 언니를 아는데도 신기하다고 했어요. 사실 저는 진지하게 연기했거든요. 숙진이는 아이를 가져야하니까. 진평과의 베드신에서도 ‘갈수록 좋아져~ 수고했어. 너무 좋았어~’라고 하잖아요. 제가 해놓고도 웃기더라고요. 처음엔 '저걸 어떻게 해'라고 생각하기도 했죠.(웃음)”

조여정은 결혼에 대해 판타지는 없다고 말했다. 결혼을 실제로 하게 되면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은 결혼에 대한 것보다는 일이 재미있단다. “연기를 짝사랑하고 있어요. 연기를 좋아해요. 어렵고 할수록 답도 안 나오고... 연기는 ‘밀당(밀고 당기기)쟁이’ 같아요. 해도 해도 어렵죠. 정답이 없어서 어려워요. 그래도 기회가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요. 최고라는 말을 들으면 좋지만 평가가 어떻게 나올까에 대해서는 각오가 되어 있어요. 혹평이든 호평이든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하지만 우선은 최선을 다하죠.”

어떤 작품을 선택할 때 계획적으로 선택하는 편은 아니다. “재밌을 것 같은 기회가 오면 해요. 의도하고서 지금쯤엔 이걸 해야 한다고 찍는 건 아니죠. 의도와 계획대로 작품이 오지 않아요. 오는 것 중에 선택하는 것뿐이에요. 의도할 수가 없어요. 마침 ‘표적’과 ‘인간중독’은 너무 다른 캐릭터가 비슷한 시기에 와서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 하게 됐어요.”

1997년 매거진 'Ceci'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조여정은 배우 생활을 돌아보면 ‘짧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로 고민이 있지만 그 고민조차 즐겁다고. ‘인간중독’ 숙진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사람들을 매료시킨 조여정이 또 어떤 모습을 보여 줄 지 무척 기대된다.

“돌아보면 짧고 순식간인 것 같아요. 정글 갔다 온 게 일 년 됐어요. ‘로맨스가 필요해’도 어제? 아니 그저께 정도인 것 같아요. 너무 신기하죠. 일하다보면 하루가 훅훅 가요.(웃음) 배우로 고민은 늘 있어요. 고민거리가 없지는 않아요. 수많은 선택이 기다리고 있고 메뉴 선택도 그렇고 모든 선택이 기다리고 있어요. 즐거운 고민과 하기 싫은 것에 대한 고민은 달라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에 대한 고민은 기꺼이 해야죠. 즐거운 고민이니까. 배우로서의 고민은 있지만 고민이라도 있어야 나아지지 않을까요?(웃음).”

한국경제TV 양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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