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총선에 이어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유럽의회 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지난 5월 22일 영국과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같은 달 25일까지 28개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치러졌다. 유권자 기준으로 이번 선거는 3억 8200만명에 달해, ‘지상 최대의 투표’라 불리우는 인도 총선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선거였다.
유럽의회는 집행위원회와 함께 EU내 여러 기구 중에서도 회원국 유권자가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일한 기구다. 매 5년마다 총 751명의 유럽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치러지며, 의원수는 각 회원국별 인구비율에 따라 정해진다. 선출된 유럽의회 위원들은 소속 회원국의 의원직을 겸직할 수 없으며, 소속 정당이 아니라 유럽 전체 차원에서 활동하게 된다.
선거결과를 보면 극우와 反EU 정당들이 대거 약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1979년 첫 유럽의회 선거가 치러진 이후 35년 만에 처음으로 극우 원내 교섭단체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각 정당이 유럽의회에서 원내 교섭단체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28개 회원국 중 최소 7개국 이상에서 25명 이상의 의원을 확보해야 가능하다.
유럽의회는 EU와 관련된 모든 법안에 대한 심의, 수정, 동의 또는 부결권, EU기구 감독권 및 예산 심의권을 갖는다1. 특히 2009년 12월 1일부터 발효된 리스본 조약 이후 유럽의회는 집행위원장 승인권과 집행위원 후보권에 대한 승인 또는 거부권도 갖게 됐다. 이 때문에 유럽의회는 의회의 고유권한이라 할 수 있는 법안 발의권은 없지만 집행위가 제안한 법안을 거부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이른바 ‘공동결정권’이 대폭 확대됐다.
유럽의회가 가장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부문이 바로 예산안 심의권으로, 이 권한을 통해 EU내 모든 기구를 직?간접적으로 통제가 가능하다. 또 집행위가 편성한 예산안을 심의하고 이사회에 대한 예산안 수정을 제안하는 한편 예산안 전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농업 분야 예산에 대한 유럽의회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 이후 약진한 극우와 反EU 정당 간에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 경우 20세기 초 자유사상가들의 ‘하나의 유럽’ 구상 이후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은 유럽통합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3년 전에 발생했던 유럽재정위기를 계기로 유럽통합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돼 왔기 때문에 이번 선거결과로 유럽통합이 의외로 큰 난관을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이 문제는 비단 EU 회원국을 넘어서 세계경제질서와 국제금융시장, 그리고 한국 등 각국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제 유럽재정위기는 실물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등 외형상으로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진전되고 있다. 올들어 2월 PIGS(포루투갈?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국가 중 구제금융을 받지 않은 스페인을 제외하고 포르투갈이 가장 먼저 국채를 발행했고 3월에는 아일랜드, 4월에는 그리스가 잇달아 국채발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물가는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어 가장 큰 관심사인 실물경기 회복의 지속 여부에 있어서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해 3분기 이후 유럽경기는 완만하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대에 머물고 있어서 유럽중앙은행(ECB)의 인플레 타깃팅선인 2%를 크게 하회했다.
앞으로 물가가 상승할 가능성을 구조적 벡터자귀회귀(SVAR?Structural Vector Autoregression) 모형을 이용해 낮은 수준이 지속될 것으로 추정된다2. 이 때문에 ECB는 빠르면 올해 6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내리거나 시중은행의 ‘마이너스 예금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와 反EU 정당들이 약진한 가장 큰 요인은 경기회복에도 고용사정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U 회원국들의 실업률은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이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각종 선거에 영향력이 높은 청년층 실업률은 스페인의 경우 무려 50%가 넘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회 내 극우와 反EU 정당이 약진함에 따라 앞으로 원내 교섭단체가 구성될 경우 유럽통합이 어떻게 될 것인가의 관건은 회원국 처리문제다. 특히 영국을 비롯한 유로 랜드에 참여하지 않은 역외국이 문제다. 금융위기를 막는다 하더라도 회원국 처리문제는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크게 두 가지 방안으로 하나는 그리스 등 취약국을 유럽통합에서 탈퇴시키는 ‘그렉시트(Grexit?Greece+Exit)'와, 다른 하나는 그대로 잔존시키는 ’G-유로(Greece+Euro)' 방안이다3. 특히 ‘G-유로’는 외형상으로 그리스를 유럽통합(구체적으르로 유로 존)에 잔존시키면서 독자적인 경제운용권을 주는 방식이다. 이때 취약국들은 수렴조건에 얽메이지 않으면서 위기를 풀어갈 수 있고, 독일과 프랑스 등은 구제금융 부담을 덜 수 있는 '윈-윈 방식‘으로 ’그렉시트‘보다 현실적이다.
특히 극우와 反EU 정당들이 약진함에 따라 취약국들이 ‘G유로’ 방식을 고집해 유럽통합을 깨지 않으면서 핵심국에 비해 취약국들이 갖고 있는 내부적인 문제를 이 방식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앞으로 유럽통합 앞날에는 커다란 변화가 예상돼, 핵심국과 취약국 간의 ‘이원적 운영체계(Two way Band System)'가 공식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적한 내부적인 문제점을 풀어가는 모습에 따라 향후 유럽통합은 ① 현 체제 유지 ② 유럽통합 및 유로화 강화 ③ 유럽통합과 유로화 동시 붕괴 ④ 유럽통합 질서회복 등의 네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현 체제 유지(muddling through)'는 유럽통합에 대한 회의론 확산에도 불구, 근본적인 변화없이 지금 상황이 지속되는 시나리오다.
네 가지 시나리오 중 유럽의회 내 극우와 反EU 정당이 득세해 유럽위기를 계기로 노출된 내부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회원국 간에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이익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경우 국제금융시장은 또한차례 홍역이 예상된다. 이 경우 세계경제는 진흙탕 속에 헤매는 과정에서 ‘불황이 장기화(muddling through)'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유럽재정위기와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와 反EU 정당이 득세한 것을 계기로 유럽통합이 안고 있는 내부적인 문제를 신속히 해결해 나가는 경우다. 이때에는 유럽재정위기와 이번 선거결과가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돼 ‘하나의 유럽통합’ 구상이 보다 빠르게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