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신간 저자와의 만남] “먹는것이 두렵다? 섭식장애란 무엇이며 해결책은?”

입력 2014-05-20 10:32


‘왜 나는 늘 먹는 것이 두려운 걸까’ 저자인 바디위시한의원 허미숙 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섭식장애(섭식증)에 대해 들어보자.

문=’왜 나는 늘 먹는 것이 두려운 걸까’를 소개해주시고,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답=이 책에는 섭식장애 관련 사례, 전문 치료법 소개, 섭식장애에 대한 철학적 측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섭식장애 환자를 진료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이 병의 치료법이 잘 알려지지 않고, 온갖 편견과 잘못된 정보가 난무한다는 점입니다. 거식증에 걸린 사람들은 단순히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취급받거나 폭식증에 걸린 사람은 먹는 것 하나 조절 못하는 의지박약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잘못된 정보가 환자로 하여금 더욱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숨어버리게 만드는 것이지요. 저는 그 현실이 안타까워 이렇게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바늘로 찔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섭식장애가 심리 ? 호르몬 ? 충동 ? 쾌락 등 다양한 것들이 원인이 된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할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이라도 섭식장애에 대항하려는 마음이 든다면, 조금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직시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섭식장애를 이겨내는 여정의 첫 출발을 내딛은 것입니다.

문=섭식장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습니다. 섭식장애란 무엇인가요?

답=섭식장애는 보통 3가지로 나눕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신경성 폭식증’, 그리고 제일 많이 차지하는 ‘달리 분류되지 않는 섭식장애’입니다. 폭식 횟수를 떠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중?체형에 대한 강박이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몸무게를 자주 재거나 아예 두려워서 재기를 무서워하는 것, 하루 종일 거울에 몸을 비추어보는 것, 자신의 가치 중에서 체중?체형이 50% 이상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것 등으로 체중?체형에 대한 강박 정도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여자들의 몸매를 계속 힐끔 보면서 자신과 끊임없이 비교하거나 연예인 사진을 보면서 자신과 계속 비교하는 것, 몸무게가 조금만 늘어도 절망하고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것 등이 체중?체형에 대한 강박에 해당됩니다.

문=섭식장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답=섭식장애 환자 수는 체중?체형에 대한 강박에 비례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체중?체형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매력적인 여자’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잘 팔리는 상품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예전에는 신분이 나를 나타내주었다면 지금은 스스로가 자신을 나타내야 합니다. 나 자신이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내가 상대방의 구매욕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괜찮은 상대방에게 선택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체중과 체형 외에도 외모, 학벌, 직업 등도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직업을 얻거나 새로 대학에 들어가거나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는 것은 당장 이루기에는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걸리는 시간도 길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가 상대적으로 체중?체형을 바꾸는 것이 쉽게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한 번 정도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경험이 있고 그때 관심을 받았던 기억을 쉽게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환상은 계속 지속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체중과 체형에 집착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매력적인 여자가 되고자 합니다.

문=많은 사람들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야 하나요?

답=섭식장애 환자들은 먹는 것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어느 정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적게 먹으면 다른 사람들이 왜 이렇게 적게 먹느냐고 뭐라고 할 것 같고 많이 먹으면 식탐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비난받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먹기 전부터 어느 정도 먹고, 어느 정도 자제 자제해야 하는지를 생각합니다. 여러 명과 식사를 하면 의식적으로 서로를 감시하며 눈치를 보기 시작합니다. 거기서 자제의 정도를 정하게 되지요. 그러고서는 상대방에게 음식을 더 먹으라고 부추깁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잡고자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끊임없이 욕망과 자제 속에서 줄타기를 하기 때문에 상대방보다 적게 먹어야 안심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만의 식사규칙으로, 때로는 남이 먹는 정도로 기준을 잡고 거기서 안도하거나 분노하거나 자기비하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문=어떤 사람들이 주로 섭식장애에 걸리나요? 특히 취약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나요? 구체적인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섭식장애는 단순히 먹고 토하는 것으로 치부되거나 어떠한 정신적 결함이 있어서 걸리는 병처럼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섭식장애는 단순한 식습관의 문제 혹은 정신적 결함 때문에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체중?체형의 강박으로 인해서 생긴 인지적 오류에 의한 병입니다. 혹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음식으로 해소하는 습관이 굳어지고 그 양과 빈도가 많아지면서 살이 찌기 싫은 마음에 제거행동을 했을 때도 생겨납니다. 사실 체중?체형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또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음식만큼 단시간에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이 어디 있을까요? 사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우리는 언제든지 섭식장애의 거미줄에 걸릴 수 있습니다.

문=섭식장애로 회복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회복된 사람들의 공통되는 특징은 무엇인가요?

답=1~2년 된 환자부터 20년 가까이 된 환자, 섭식장애만 있는 환자부터 섭식장애, 도벽, 알코올남용, 우울증, 약물남용 등 질병이 복합적으로 변해버린 환자까지, 수많은 섭식장애 환자를 지켜봐왔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섭식장애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국 2가지였습니다. 나와 외부환경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것과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를 위로받고 공감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섭식장애 환자들은 나 자신과 직면하는 것을 끝까지 회피하려 합니다. 그리고 치료자에게조차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내 탓, 남 탓을 하며 점점 우울함과 무력감에 빠져듭니다. 이런 고통의 악순환은 환자를 점점 잠식해버리고 아무것도 못한 채 섭식장애라는 괴물의 명령대로 행동하고 생각해버리게 만듭니다.

문=섭식장애로부터 회복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치료법과 관련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섭식장애는 낫지 않는 병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신경성 폭식증의 인지행동치료가 섭식장애 치료의 선두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지행동치료는 4단계로 나눕니다. 1단계에서는 잘못된 식이정보를 교정하고 식습관 교정으로 배부름 ? 배고픔 신호를 정상화하고 호르몬을 균형화시켜 폭식이 줄어들도록 합니다. 2단계에서는 체중?체형에 대한 집착과 섭식장애의 인지적 오류를 교정하고 스트레스성 폭식, 즉 계획해서 하는 폭식을 교정하기 위해 감정훈련, 이완훈련 등을 시행합니다. 3단계에서는 섭식장애를 일으키게 한 심리적 원인을 교정하기 위해 어렸을 때 잘못 형성된 가치관, 즉 스키마를 교정하는 치료를 하고 마지막 4단계에서는 종결치료와 재발방지 치료를 위해 장 ? 단기적 계획과 대처방안을 세웁니다.

문=섭식장애가 불러오는 잘못된 생각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것들이 잘못된 생각인가요?

답=폭식이란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감정이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그리고 행동은 다시 사고와 감정에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의미를 평가하기 시작하는데 한마디로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인지적 과정’이라고 합니다. 인지적 과정은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데 이런 감정은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고 배부름을 느꼈다면, 이것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섭식장애 환자들과 일반 사람들은 다른 평가를 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배부르니까 그만 먹어야겠다.’ 혹은 ‘ 배부르게 잘 먹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섭식장애 환자들은 ‘배부르니 많이 먹은 것이다.’ ‘배부르면 살찐다.’ ‘ 배부르니 배가 엄청 나오겠지.’ ‘배부르니 뱃속이 꽉 찬 것 같다.’ 등 다양한 판단을 내립니다. 이런 판단은 환자로 하여금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게 되는데 우울 ? 불안 ? 분노 ? 죄책감 등의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환자는 부정적인 감정을 잊기 위해서 구토나 절식을 하고 변비약이나 이뇨제를 먹거나 자포자기 심정으로 더 폭식을 합니다. 즉 비합리적인 인지과정이 폭식을 일으킨 것이지요. 또한 섭식장애 환자들은 지나가는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면 자신을 뚱뚱하다고 생각하고 비웃거나 욕했다고 각합니다. 인지행동치료는 이런 비합리적인 인지과정의 오류를 분류하고 합리적으로 교정해서 폭식을 치료합니다. 환자는 치료과정에서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깨닫고 교정하는 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문=섭식장애가 불러오는 많은 고통스런 감정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로 어떤 감정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나요?

답=가장 기본이 되는 감정 2가지는 무기력과 수치심입니다. 도저히 나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무기력과 먹는 것도 조절 못한다는 수치심이지요. 남들이 자신을 돼지처럼 볼 것이라는 외형적 수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감정은 환자들에 문제해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부정적 감정이 들면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감정을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기 보다는 폭식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섭식장애 치료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고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문=섭식장애 관련 카페와 커뮤니티가 독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답=카페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의 대부분은 ‘오늘 나 이만큼 먹었다.’ 아니면 ‘폭식해서 이만큼 쪘는데 어떻게 다시 돌아가나?’입니다. ‘오늘 나 이만큼 먹었다.’라는 식의 글을 쓴 사람들은 먹은 것을 마치 자랑하듯이 하나하나 늘어놓습니다. 그런 글에는 ‘나도 그렇다.’ 혹은 ‘나는 폭식하면 당신보다 더 먹는다.’라는 댓글이 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자기가 얼마나 폭식하는지 서로 경쟁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어떤 사람은 시간이나 기간으로 이야기합니다. ‘지금 5시간째 폭식하고 있다.’ ‘나는 폭식을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 글에는 마치 최악의 폭식 경험을 경쟁하는 듯한 댓글이 달리기 시작한다. 그런 글을 읽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폭식을 고치려고 하기 보다는 ‘나보다 더 심한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별로 안 심각하네.’라며 과소평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댓글 에 위로 받으면서 폭식을 합리화하다 보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그 글을 읽고 나면 폭식을 고칠 생각은 안하고 커뮤니티에 글이나 쓰고 있는 자신이 더 수치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커뮤니티에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는 사실 오해를 낳고 잘못된 문제해결 방법을 제시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환자로 하여금 오히려 더욱 폭식을 하게 만들고 환자에게 실패 경험만 쌓이게 만들어 무기력하게 만들 뿐입니다. 해결책을 묻더라도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실제로 극복한 사람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전문가와 얼굴을 맞대고 심층적인 검사와 평가를 한 뒤 상담을 해야 그 병의 실체와 뿌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