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가수 폴 포츠(44)라는 말보다 옆집 아저씨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풍채가 좋지만 인상은 그 누구보다 선한 그. 그래서인지 한 걸음 다가가는 것도 제법 편했다. 13일 개봉된 영화 ‘원챈스’(데이빗 프랭클 감독)로 한국을 방문한 폴 포츠. 한국 방문이 열한 번째라는 그는 한국어 인사도 제법 능숙했다.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미소를 짓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그 힘이 아주 컸다.
이 작품은 폴 포츠의 인생 이야기.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폴 포츠의 주문이 있었다. 그래서 약간의 픽션이 귀엽게 스며들었다. 어릴 적부터 세계적인 오페라 스타가 되고 싶었던 폴 포츠(제임스 코든)는 우연히 베니스 음악학교에 합격하게 됐고, 우상이자 전설의 테너인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만나며 새로운 인생을 열어간다. 그리고 '브리튼즈 갓 탤런트'라는 오디션 1위까지. 어릴 적 왕따, 영국의 평범한 휴대전화 판매원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낸 폴 포츠는 모두의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 “결혼식 장면에 아내가 눈물 쏟아”
폴 포츠는 ‘원챈스’를 여섯 번이나 봤다. 자신의 이야기라 더욱 재미있었나보다. 매번 볼 때 마다 느낌이 다르다며 환하게 웃었다. “대체적으로 웃을 때 같이 웃고 놀랄 때 놀라는 거 보면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며 은근한 영화 홍보도 잊지 않았다. 막힘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던 폴 포츠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묻는 질문에 조금 뜸을 들였다. 어렵단다. 그리고 이내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나온 대답은 바로 결혼식 신이었다.
“결혼식 장면을 촬영할 때 아내와 같이 현장에 있었어요. 그런데 그 장면을 보는데 뭔가 묘하더라고요. 데이빗 프랭클 감독과 옆에서 보는데 아내가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감독이 살짝 ‘아내가 감동을 받아서 우는 것 같다’고 하기에 제가 그랬죠. 웃겨서 울고 있는 거라고. 하하.” 이 결혼식 신은 영화에서도 아름다운 장면으로 손꼽힌다. 그 보다 폴 포츠와 줄스(알렉산드라 로치)의 러브스토리가 압권.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아내가 더 박장대소 하겠다”고 말하던 폴 포츠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영화 속 명장면을 꼽아보자면 바로 폴 포츠가 '브리튼즈 갓 탤런트'라는 프로그램에서 1등을 거머쥐는 장면이다. 폴 포츠 인생의 원챈스는 준비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루아침에 오디션에 출연해 스타덤에 오른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오디션이 가져다 준 영향력은 컸으리라. 그래서 폴 포츠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조금 특별했다. 우리나라에도 현재 SBS ‘일요일이 좋다-K팝스타’ Mnet ‘슈퍼스타K’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진행중이지 않나. 폴 포츠는 이 부분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제공되지 않나 싶어요. 그런 점에서는 굉장히 긍정적이죠. 그런 반면, 오디션 프로그램을 단지 스타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그 사람의 삶을 발견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발전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좋죠. 오디션에 출연하는 이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많이 공감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 “한국 음식 중 개불 가장 놀라워”
한국 방문 열한 번째에 빛나는 폴 포츠. 이번 일정은 유독 빡빡해 자유 시간을 제대로 못 썼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곧 내한 공연을 통해 다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며 싱글벙글. 사실, 폴 포츠는 한국 사람보다 더 많은 도시를 다녔을지도 모른다. 어떤 곳에 가봤냐고 물었더니 부산 대전 대구 광주 속초 제주 인천 강릉 등 수 많은 도시의 이름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음식이 기억에 남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쏟아져 나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거의 한국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한국에 오면 다양한 전경들을 많이 봐요. 산과 해안가가 아름다워 매번 감탄을 하죠. 서방 사람들은 한국을 산업, 공업 국가로만 생각을 해요. 아마 이걸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참 따뜻해서 좋아요. 이런 걸 세계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어요. (웃음) 매번 지방에 가면 특색 음식을 먹는데 개불을 먹어봤다고 하니까 기절하더라고요. 살아있고 꿈틀거리는 건 서양 사람들이 기절초풍할 이야기인데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포장마차도 자주 가죠. 삼합도 먹어봤는데 문어는 못 먹겠더라고요. 하하.” 먹는 이야기에 목소리가 더 커졌다. 또 한 번 그렇게 호탕하게 웃었다.
영화 제목은 ‘원챈스’지만 한국에는 그런 말이 있다. 인생에 기회는 3번 온다고. 하지만 그 3번의 기회를 모두 놓칠 수도, 모두 얻을 수도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훌쩍 지나가 버리는 기회, 과연 폴 포츠는 그 기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3번의 기회를 만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게 운명이라면 노력이 필요 없지 않겠나. 준비된 자가 그 기회를 잡지 잡을 수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다르다. 노력을 하다보면 각자 주어진 곳에서 기회를 잡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폴 포츠에게 3번의 기회는 언제쯤 찾아왔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세 번의 기회라고는 하지만 기회는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결정적 기회인지는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도 여러 번 기회가 왔었다고 생각하지만 세 번 중 몇 번을 썼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꿈꾸던 오페라 가수를 달성했음에도 아직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폴 포츠. 그를 보며 무한한 노력이 더욱 절실해졌다. 이쯤이면 됐다며 안주할 때, 그 때 다시 폴 포츠의 말을 떠올려보자.(사진=호호호비치)
한국경제TV 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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