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현의 ‘펀드노트’] 47편. 선장(Captain)의 의무
영국의 사우샘프턴을 출발해서 뉴욕으로 향하던 타이타닉 호는 1912년 4월 15일 바다에 가라앉았다. 해상의 궁전이라 불렸던 타이타닉 호가 첫 항해를 시작한 지 닷새만의 일이다. 무려 1,515명의 인명이 바다로 사라진 이 사고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할까?
굳이 한사람만을 찾아야 한다면 타이타닉호의 선장인 ‘에드워드 스미스(Edward J.Smith)’다. 그는 가장 빠른 시간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선박에게 수여되는 청리본의 영광을 위해 승객들의 목숨을 소홀히 여겼기 때문이다. 스미스 선장의 과욕과 안일함이 타이타닉 호를 바다 속으로 가라앉혔다.
펀드의 선장(Captain)은 펀드매니저다. 선박을 안전하게 운항시키는 총지휘 책임자인 선장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자신을 믿고 승선한 승객의 안전이다. 펀드매니저 또한 자신을 믿고 돈을 맡긴 투자자들의 투심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그것이 펀드매니저의 기본이며 의무이고 자존심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펀드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펀드매니저가 자신이 운용하던 펀드를 떠나는 일이 잦아서 유감이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달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1년간 최소 2000개에 이르는 펀드의 펀드매니저가 바뀌었다.
펀드매니저의 실력과 명성을 믿고 투자했다가 펀드매니저가 떠나버리면 남아 있는 투자자는 마치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것처럼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펀드매니저가 펀드를 떠날 때는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일부 호사가(好事家)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잦은 펀드매니저 교체의 이유가 단기 실적 향상에 골몰한 자산운용사들의 운용 능력과 인지도를 올리기 위한 일환이라면 이는 펀드매니저와 운용사가 합작하여 투자자를 기만하는 것이다.
펀드는 꾸준한 수익률을 내는 것을 모토로 한 장기투자 상품이다. 따라서 애초에 정한 운용 철학과 전략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 정당한 이유 없이 운용전략을 바꾸거나 펀드매니저가 바뀌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펀드매니저 교체는 펀드매니저 스스로에게도 큰 짐이다.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운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잦은 포트폴리오 조정은 매매 회전율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발생되는 모든 비용은 결국 투자자의 수수료 부담으로 귀결된다.
바닷길을 헤쳐 나가는 선장처럼 펀드매니저는 시장 변동성 한 가운데 우뚝 서서 투자자를 대신해 투자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한다. 그것이 펀드선장으로서의 의무다. 펀드매니저는 시장 리더라는 자긍심을 갖고 가벼운 처신을 삼가해야한다. 이제 국내펀드시장도 뚝심운용의 결과물들을 내놓을 때가 되었다. 현명한 투자자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