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녀' 대자보 등장...여성 인권 안녕 묻는 내용보니 [전문 포함]

입력 2014-01-16 18:28
수정 2014-01-17 09:01


고려대학교에 여성 인권에 대한 대자보가 연이어 붙고 있다.

지난 15일 고려대에 '김치녀로 호명되는 당신, 정말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여성 인권에 관한 대자보가 붙자 이에 답하는 대자보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김치녀'는 흔히 한국 여성을 비하하거나 왜곡할 때 쓰이는 말이다.

첫 번째 대자보 작성자는 "고려대에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움직임이 다양한 이슈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 시대의 여성들은 안녕한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작성자는 "과거부터 있었던 여성 혐오는 나날이 악화돼 현재 '김치녀', '된장녀'라는 노골적이고 일상적인 형태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또 "'개념 없음'의 잣대는 남성에게 적용되는 것과는 다를 뿐 더러 몹시 자의적이고 폭력적"이라면서 "공중파 TV 프로그램은 못생기고 뚱뚱한 여성을 웃음거리로 삼고 비하하지만, 키 180cm 이하의 남자가 루저라고 말한 여성은 일자리에서도 쫓겨난 채 사회에서 매장당했다"며 예를 들었다.

작성자는 "김치녀라는 이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검열하는 건 아닌지 모든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 대자보를 시작으로 이에 화답하는 또 다른 대자보들도 붙었다.

"개념녀가 되기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해서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대자보에서는 "좁디 좁은 '개념녀'의 자리에 저를 놓는 불가능한 일을 그만 두고 제가 살고 싶은 대로, 느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사는 데 붙여지는 이름이 '김치녀'라면 그 이름을 기쁘게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자보에서는 "여자는 외국인 남자를 만나선 안된다, 남자의 외모를 봐서는 안된다, 파트너의 경제적 조건을 따져서는 안된다 등 조건을 달고 이에 해당하는 여성은 혐오한다"면서 "혐오 대신 '취향 존중'을 요구한다"고도 밝혔다.

"김치녀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건 이 각박한 세상"이라는 대자보는 "그저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온전히, 왜곡 없이 지니고 싶다"고 적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은 페이스북에 '댁의 김치는 안녕들하십니까' 페이지를 열어 여성으로서 '안녕하지 못한' 사연을 받아 SNS로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치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전문]

김치녀로 호명되는 당신, 정말로 안녕들 하십니까?

고려대에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움직임은 다양한 이슈에 대한 물을음 던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슈들 가운데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 시대의 여성들은 안녕한가요?

김치녀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과거부터 있었던 여성혐오는 나날이 악회되어 현재 '김치녀', '된장녀' 라는 노골적이고 일상적인 형태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자신이 '김치녀'나 '된장녀'가 아님을 계속해서 증명해야만 합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김치녀'는 일부 개념없는 여성들일 뿐이며, 모든 여성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개념없음'의 잣대는 남성에게 적용되는 것과는 다를 뿐더러 몹시 자의적이고 폭력적입니다.

공중파 TV 프로그램은 못생기고 뚱뚱한 여성을 웃음거리로 삼고 비하하지만, 키 180cm 이하의 남자가 루저라고 말한 여성은 일자리에서도 쫓겨난 채 사회에서 매장당했습니다.

외모를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발화자의 성별에 따라 외모를 평가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이 이중적인 잣대로 받아들여 지는 것입니다.

옆 자보의 '김치녀의 기준'은 실제로 온라인의 다양한 사이트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적은 것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한국 여성들 중 누구도 '김치녀'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김치녀'라는 프레임 자체가 보편적인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성형을 했다고 해서, 못생겼다고 해서, 연애 상대에 대한 취향을 갖고 있다고 해서, 처녀가 아니라고 해서, 섹스를 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여성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안녕하지 못한 김치녀들이 모든 한국의 여성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김치녀' 라는 이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검열 하는 것은 아닌지, 안녕하지 못함이 너무 힘들어 마음 속 답답함을 묻어두고 안녕하다고 믿고 계신 것은 아닌지, 여성혐오가 보편적인 사회에서 '정말로' 안녕하신 건지 말입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