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포커스] '청야' 끝나지 않은 이야기, 거창사건을 말하다

입력 2013-12-18 10:15
"잊혀진 역사는 반복된다. 이런 일들이 다시 반복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담은 작품이다."(김재수 감독)



17일 오후 4시 30분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청야'(김재수 감독, 꿈꿀권리 제작)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김재수 감독을 비롯해 배우 안미나 김기방 김현아 백승현 장두이 이대연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청야'는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9일부터 2월 11일까지 당시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거창군 신원면 일대 주민 719명을 공비와 내통한 '통비분자'로 몰아 학살했던 사건을 다뤘다. 사건 당시 작전명 '견벽청야(堅壁淸野 벽을 튼튼히 하고 들을 깨끗이 한다)'에서 제목을 딴 이 영화는 거창사건 가해자와 피해자의 후손이 우연히 거창에서 만나 진실을 알게 되면서 화해와 용서를 하는 과정을 담았다.

2009년도에 귀농한 김재수 감독은 거창사건이 있었던 마을의 이장이 됐다. 그는 "귀농을 한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신원면이다. 거창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전혀 몰랐다. 추모공원에서 다큐를 보게 됐고 예전에 '겨울 골짜기'란 책을 봤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거창사건을 다룬 최초의 소설이다. 그 책에 나오는 지점을 보면서 운명처럼 받아들여졌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곳에 살고있는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도 전혀 모르고 있더라. 듣기는 들었는데 대강 알고 있고 주변사람들도 애써 외면하려는 모습들을 보게 됐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영화는 조금이나마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을 접목했다. 참혹한 사건의 모습을 어린 친구들도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표현했고, 살아있는 분들의 인터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 사실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감독은 영화가 12세 관람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감독은 "영화가 부족한 점이 있지만, 애써 외면하려고 하고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들에 대한 반응을 보고 싶었다. 피해보상을 받지 못 하는 유족분들이, 이승만 정부 때 판결에 의해서 정부의 잘못을 시인했음에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나 광주는 보상을 받았지만 거창사건은 아직까지 못 받고 있다. 영화로 어떻게 치유가 될 수 있을까 싶어서 접근한 영화다"라고 설명했다.

영화의 모든 촬영은 거창에서 이루어졌다. 15박 16일의 강행군 속에 마무리됐으며, 거창사건 추모공원, 위천면 황산마을 고가, 요양병원 실제 사건 현장인 신원면 등지에서 올해 3월말부터 4월 중순 사이에 진행됐다. 감독의 제안으로 기획된 영화는 열악한 제작비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출향기업과 지역 기관·단체가 지원에 나서면서 겨우 제작을 마쳤다.

영화에 출연한 이대연은 "영화에서 준비하고 계획하고 연기된 것들이 다큐화면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아픈 그 분들을 표현하는 데는 '부족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최정호 감독님이 영화 완성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나셨다. 최 감독님 영전에 이 영화를 바치고 싶다"라고 전했다.

홍노인 역을 맡은 장두이는 "이 시나리오를 받고 흔쾌히 참여해야겠다 싶었다"며 "거창 현장에서 촬영할 때 그런 어떤 당시의 분위기라기보다 우리 농촌도 근대화된 가운데 살아가는 유족의 한 사람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다른 것보다도 지금 살아계신 분들의 인터뷰가 나왔는데 그 이상의 것보다는 연기가 안 나오는가 싶다"라고 말했다.

또한 "연기는 삶이다. 그 삶을 어떻게 표현할까 싶고 그런 것들이 저의 숙제일 것 같다. 오늘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 두 번 세 번 보면서도 울 것 같다. 감독님이 리얼리티를 잘 묘사하고 연출해주신 것 같다"라고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김기방은 "뜻깊고 의미있게 찍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조금이나마 아픈 역사를 기억해달라"고 밝혔다. 안미나 역시 "이 영화를 찍으면서 다른 것보다 제가 화해나 회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뜻깊고 기뻤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백승현은 "작은 영화지만 큰 의미가 담긴 영화"라고 말했고, 김현아는 "특별한 의미의 영화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몰랐던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됐으면 좋겠다"라고 설명했다. 이대연은 "모든 영화가 사회에 대한 발언이어야 한다면, 저희는 어떤 발언을 담고 있다. 쓴 내용을 쓰지 않게 포장하려고 노력했다. 열심히 찍었다. 잘 봐달라"고 설명했다. 장두이는 "이 영화를 보시고 거창 근처에 가셔서 이 영화에 나오는 로케이션을 들러보면 뭔가 남을 거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관계자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아픔, 권리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라며 "상처받은 분들이 치유되길 바라는 영화다"라고 밝혔다. 과연, 이들의 바람처럼 제2의 '지슬'이 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경제TV 양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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