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인터뷰] '열한시' 김현석 감독의 배우 방목이 통하는 이유

입력 2013-12-10 09:01
드라마에서만 쓰이던 타임 슬립 장르가 영화로까지 오게 됐다. 그것도 부드러운 멜로 영화 종결자 김현석(41) 감독을 통해서 말이다. 2010년 개봉된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이후 약 3년 만에 컴백한 김현석은 영화 ‘열한시’(김현석 감독, (주)파레토웍스 제작)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타임 스릴러에 그 만의 고유한 드라마까지 입혀지니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관객들이 ‘열한시’를 찾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24시간 후인 내일 오전 11시로의 시간 이동에 성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우석(정재영)과 영은(김옥빈)은 그 곳에서 폐허가 된 기지를 목격하게 된다. 우석과 영은은 유일한 단서인 CCTV를 확보해 현재로 돌아오고, 이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파일을 복구해 감춰진 24시간을 추적하게 된다. 미래를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김현석의 화법으로 그렇게 풀어졌다.

◆ “트로츠키 웜홀 통과 연출, 어려워”

타임머신 트로츠키가 웜홀을 통과하는 과정이 오프닝에서 소개된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마치 SF 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은 명장면 중 하나다. 트로츠키가 웜홀을 통과하는 모습은 24시간 이후로 가는 우석과 영은의 모습에서도 등장한다.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그 곳, 누구도 통과해 본 적이 없기에 웜홀 통과는 큰 숙제였다.

“애초에 과학적 자문을 받을 때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웜홀이라는 게 무한대의 중력이 있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걸 빨아들이는 건데 이걸 경험한 사람이 없으니까. 웜홀을 통과할 때 디렉션을 주는 것도 힘들었어요. 직접적인 진동을 주기도 하고, 트로츠키를 흔들어도 보고 여려가지 면에서 촬영을 했죠. 트로츠키 안에서 입는 옷도 구현이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낙하산 재질로 만들어왔는데 입어보고 다시 가죽으로 바꿨어요. 그래도 제법 괜찮게 나왔지 않나요? 하하.”

영화에서 절묘한 부분은 바로 잠언 구절이 등장하는 부분이다. 제일 처음 영상이 시작되기 전 나오는 이 잠언 구절은 ‘열한시’가 끝난 후에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라고 시작해서 차근차근 스토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보면 끝에서야 ‘아하’ 하고 넘어간다. 잠언 27장 1절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어느 날 27일 우연히 펼쳤더니 이야기가 진행됐다.

“잠언을 뒤에도 한 번 붙여봤어요. 문구 자체는 이해가 되는데 우석의 숭고한 희생 다음에 나오니 뭔가 깎아먹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시작으로 두었죠. 정말 우연이었어요. 크리스천이라 성경을 매일 읽는데 27일 어느 날, 그걸 딱 읽은 거죠. 시나리오 각색을 할 때였는데 ‘이거다’ 싶더라고요. 정말 우연이에요. 만약 그날 보지 않았더라도 한 달 뒤 27일에 보게 되지 않았을까요? 진짜 인연이었다면요. 하하.”



◆ “마지막 장면, 의도한대로 나와”

당초 김현석이 받은 시나리오는 15세이상 관람가(이하 15세이상) 아닌 19세미만 관람불가(이하 19금)였다. 15세이상이라고 하기에도 어딘가 잔인한 부분이 없진 않으나 19금 때는 그 잔인함이 말로 다 못할 정도였단다. “불필요한 잔인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표현 수위가 낮아졌다. 아이들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내 철학”이라는 김현석은 극 중 가장 잔인한 부분도 상대적으로 느낌이 덜 하게 뽑아냈다. 그렇게 이 영화에는 김현석다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마지막 장면 때문에 말이 많았어요. ‘스릴러에서 왜 또 그렇게 가냐’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제 드라마를 좋아해주는 분들도 계셨죠. 철저히 의도적인 장면이었어요. 제가 반응까지 의도할 수는 없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고요. 하하. 각색을 하면서 노래가 들어갔어요. 찍을 때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죠. 생각한대로 영화가 나왔어요. 이건 어떻게 보면 영은이의 성장담이에요. 마지막 부분을 보고 좋은 마음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네요.”

김현석에게 문득 “예산이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누구는 예산이 더 있다면 CG를 보강하겠다고 하겠지만 CG가 한두 푼으로 되는 게 아니지 않나. 이걸 김현석도 모를 리 없을 터. 김현석은 “아이디어를 달리 하지 않았을까 싶다. 웜홀을 더욱 제대로 묘사했을 거 같다”고 답했다. 자신의 생각에 확고한 김현석. 그래서 촬영장에서도 그의 연출력은 빛났다.

“배우들을 방목해요. 최대한 첫 번째 테이크는 디렉션이 없어요. 같은 시나리오를 보고. 현장에 온 것이기 때문에 배우 나름의 생각이 있잖아요. 그게 감독의 마음에 들면 가장 완벽한 테이크가 되는 거예요. 리허설도 없고 동선만 보고 가죠. 그리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가면 방향을 바꿔줘요. 이번에 한 가지는 배웠어요. ‘감독이 포기한 거 같다는 느낌을 주는 거 같으면 안 되는구나’ 하고요. 그런 느낌이 있었다니 깜짝 놀랐어요. 하하.”



한국경제TV 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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