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가만히 멈춰 서서 그것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힘과 용기,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 엘레노어 루스벨트
2007년 가을, 수단
2007년 여름, 수단공화국 서부의 다르푸르 지역에서 끔찍하기 짝이 없는 재난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는 그보다 4년 전인 2004년에 발발했다. 수단의 아랍 중심 정권이 기독교인과 정령주의자 등 소수 종교인을 차별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반군이 들고일어나 정부 권력과 맞선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급기야 중앙정부가 동원한 아랍계 민병조직이 아프리카계 흑인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에 나서면서 대규모 유혈 사태로 번졌다. 살인과 방화가 이어지고 마을이 파괴되면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난민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다르푸르 사태에 대해 매우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2006년 무렵에는 다르푸르 사태로 인한 희생자가 400만 명으로 늘었고 그중 절반이 어린아이들이었다. 언젠가 어릴 때, 엄마에게 물었다. 나치가 유대인들, 특히 어린아이들을 끔찍하게 죽이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나서지 않았느냐고.
누구도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어렸을 적 나의 질문에 행동으로 답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다르푸르의 어린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 자신과 가족에게 떳떳해지도록 그리고 유대인으로서 당당해지도록 직접 다르푸르로 달려가야만 한다.
유니세프 지사는 수단의 수도 하르툼 한가운데 가시철망이 둘러진 장벽 뒤쪽에 있었다. 현지 직원에 따르면 다르푸르의 상황은 많이 호전되었지만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했다. 일단 자동차를 타고 내국 난민 수용소 쪽으로 가겠지만, 아직 내부로 진입하기에는 위험한 상태라는 얘기였다.
현재 다르푸르의 보안 등급은 3단계, 이는 반드시 상주해야 하는 유니세프 직원을 제외하고 가족은 현지를 떠나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다(4단계가 되면 최소 상주 직원까지 모두 그 나라를 떠나야 한다). 최대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고 다리나 정부 건물처럼 전략적 구조물이 될 수 있는 장소를 함부로 카메라에 담지 말라는 경고도 받았다.
이전에 다르푸르를 찾은 서구인들을 보안요원들이 위협적인 대상으로 오인하고 납치하거나 공격한 적이 있는데, 그런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브리핑은 길지 않았으나 우리 일행을 긴장 속으로 몰아넣기에는 충분했다.
우리는 바짝 말라버린 숲을 지나서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오두막들이 늘어선 마을도 지나쳤다. 아랍 특유의 밝은색 가운과 아바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여자들이 몇 명 보였다. 그러고 나서는 말 그대로 허허벌판의 광대한 사막이 눈앞에 펼쳐졌다.
달리는 지프 안에서는 때때로 무전기를 통해 “속도를 줄이세요”라는 말이 흘러나왔고, 혹시 예기치 못한 습격을 받을 경우에 앞차를 피해서 도망칠 수 있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주의사항이 반복됐다. 차창 너머로 위장복을 입고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이 간간이 보였다. 도로는 온통 울퉁불퉁했고, 갑자기 불룩 솟은 곳들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흐르고 사막 한가운데에 접어들자 도로 한쪽에 시멘트로 지은 작은 집 하나가 나왔다. 검문소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지프 안의 일행은 바짝 긴장했다.
“괜찮습니다, 다들 카메라를 감추고 선글라스는 벗으세요.” 보안요원이 이렇게 지시하면서 얼른 한마디를 덧붙였다. “절대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됩니다.”
검문소 앞에 도착하자 군인들이 운전기사를 향해 걸어오더니 웃음기 하나 없이 딱딱한 말투로 뭐라고 말을 걸었다. 어깨에는 커다란 총을 멘 채였다. 일전에 검문소에서 총격을 받은 민간인들이 있다는 보고서를 읽은 터라, 더럭 겁이 났다.
그런데 곁눈으로 군인들을 힐끔 본 순간, 가슴을 쿡 찌르고 지나가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어깨에 커다란 기관총을 메고 있는 그들이 겨우 소년티를 벗은 앳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대한 차분하게 대처하려고 애썼으며, 다행히 몇 분 후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두 시간쯤 지나서 드디어 난민 수용소 근처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