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은 역시 버핏이다’. 금융위기 이후 모두가 ‘어렵다’고 했을 때 무려 1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0조원(1달러=1000원 가정) 이상 번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버핏의 포트폴리오에 어떤 업종을 담아 그렇게 큰 돈을 벌었을까’에 월가를 중심으로 전 세계인의 이목이 다시 한번 쏠리고 있다.
버핏과 같은 슈퍼 리치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같은 위기때 돈을 버는 투자기법으로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을 즐겨 쓴다. 마켓팅 용어인 체리 피킹은 최근에는 금융권에서 더 많이 사용하는 용어로, 경제여건이나 기업 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떨어진 국가에 속한 주식만을 골라 투자하는 행위를 말한다.
금융위기 이후 버핏이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월가에서는 이렇게 비유한다. 체리(과도하게 떨어진 주식)나무로 가득한 과수원(증시)에 빈 봉투(포트폴리오)를 갖고 들어간다. 가까운 체리 나무에서 탐스럽게 잘 익은 체리를 딴다. 그 다음에 옆의 나무로 이동해서 또 좋아 보이는 체리를 따서 담는다. 이렇게 하다 보면 빈 주머니에는 가장 좋은 체리만을 가득 채울 수 있게 되고 만약 체리 가격이 조금만 오르더라도 큰 돈을 벌게 된다.
체리 피킹은 그 특성상 버핏과 같은 시장 주도력이 있을수록 더 큰 효과가 난다. 버핏이 체리 피킹으로 주식을 산다면 먼저 그 주식의 저평가된 가치가 부각된다. 또 매스컴을 통해 이 사실이 공개되면 될수록 다른 투자자들의 주식매입을 촉진시켜 주가의 상승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버핏이 체리 피킹을 한다 하더라도 주식을 사들일 때에는 철저하게 ‘피라미딩’ 원칙을 지킨다는 점이다. 피라미딩(pyramiding)은 주식을 살 때마다 투자금액을 동일하게 유지해 주가가 올라갈수록 피라미드처럼 매입 주식수를 적게 가져가는 방법을 말한다.
앞으로 다가올 트렌드를 읽는 데 중점을 둔 전략도 주효했다. 크게 두 가지다. 무엇보다 정책 트렌드를 중시했다. 금융위기와 함께 출범했던 오바마 정부는 경제정책의 목표를 고용, 그 중에서 청년층 일자리 창출에 뒀다. 산업정책의 우선순위도 정보기술(IT)에 비해 고용창출계수가 높은 제조업으로 이전됐다. 제조업 ‘리프레쉬’와 ‘리쇼오링’ 정책이 그것이다.
IT산업은 네트워크만 깔면 깔수록 생산성이 증가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이 산업이 주도가 돼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일자리, 특히 청년층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이른바 '고용창출 없는 경기회복'으로 지표와 체감경기 간의 괴리가 발생하고 양극화도 심해진다.
하지만 전통적인 제조업은 생산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IT산업이 주도할 때와 같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더 투입해야 한다. 과거 제조업이 주도가 돼 경기가 회복할 때에는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 지표와 체감경기 간의 괴리가 발생되지 않고 양극화도 심해지지 않는다.
또 하나는 ‘S자형 투자원칙’에 따라 앞으로 다가올 산업 트렌드로 잘 읽었다. 그 중에서 버핏이 가장 관심을 보였던 것은 ‘알파 라이징 업종’이다. ‘알파 라이징 업종’이란 현존하는 기업이외라는 점에서 ‘알파’가, 위기 이후 적용될 새로운 평가잣대에 따라 부각된다는 의미에서 ‘라이징’이 붙은 용어다.
또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즉 BOP(base of pyramid)관련 업종도 주목했다. BOP계층은 세계 인구의 72%인 40억명에 이르며 그 규모도 5조 달러에 달하는 거대시장으로 성장됐다. BOP계층은 중간소득 계층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 '넥스트 볼륨 존', '넥스트 마켓'으로 불리고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도 이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체리 피킹과 트렌드에 의한 선정된 종목과 함께 그때 그때 경기와 증시전망에 따른 인기주, 주도주와 관계없이 안정된 수익을 낼 수 있는 시겔형 업종을 일정비중 이상 고수한 점도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시겔형 업종이란 석유와 천연자원이나 제약과 필수 소비재와 같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주식을 말한다.
투자실행 단계에서 종목이 선정되면 ‘파레토 전략’과 ‘루비콘 기질’을 발휘하는 점도 국내 투자자가 새겨둬야 한다. 우량대상만을 골라 투자하는 파레토 전략처럼 돈을 벌 수 있는 확실한 투자수단을 선택하되, 일단 선택하면 루비콘 강을 건너면 되돌아 올 수 없듯이 어떤 위험이 닥친다 하더라도 초지일관 밀어붙인다. 이 원칙은 금융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금융위기 과정에서 큰 돈을 또 다시 벌자 버핏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오마현의 달인’이라는 칭송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나 거부반응이 없은 버핏은 부모로부터 돈에 관한 모든 것을 어릴 적부터 배웠다. 상속으로 돈을 선천적으로 많이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돈 버는 지식을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체화(embodied)된 부자’라는 뜻이다.
부자들이 추구하는 돈에 대한 관념도 독특하다. 버핏은 부모 세대로부터 돈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하나의 도구로 생각해 왔다. 다시 말해 돈을 벌거나 쓰는데 있어서 여유가 있다. 이 때문에 돈에 대한 개념은 일상생활이나 투자방법, 부자가 된 이후 돈을 어떻게 쓰는가도 남달랐다.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워런 버핏은 고루하게 느껴질 정도의 오래된 뿔테 안경과 20년 이상된 캠리 자동차, 오마현의 작은 집이 그 모든 것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검소하다는 그 말 자체다. 돈을 버는 데에도 조급해 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비정상적이고 이기적인 방법을 가능한 피한다. 이 때문에 단기적인 투기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가 가능해 진다. 그 때 그 때 시장흐름보다는 큰 추세만을 중시하기 때문에 투자에 따른 비용과 피로도도 함께 적어진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량 종목은 언젠가는 시장에서 평가받는다는 소위 가치투자가 가능해진다. 지금은 낮게 평가되고 있지만 이를 사서 오랫동안 보유할 경우 나중에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가치투자의 원칙은 국내 증시 뿐만 아니라 세계증시의 가장 큰 축이 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 원칙을 지킬 경우 시장을 교란하지 않으면서 시장을 예상할 수 있고 투명성이 확보되는 투자문화와 기업들에게는 정도경영(正道經營)을 촉진시키는 장점도 따른다.
부자가 된 이후에도 버핏이 가는 길은 훌륭했다. 2006년에 버핏은 평생 동안 번 돈의 ‘4분의 3’을 사회에 환원해 '오마현의 달인‘과 함께 ’박애주의자'라는 칭송을 함께 받고 있다. 그것도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자신이 운영하는 재단보다는 빌 게이츠가 운용하는 재단에 기부했다. 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번 돈도 같은 뜻을 내비치고 있다.
또 자기 자신의 자녀들에 대한 상속도 인색하다. 자녀들이 사회적으로 활동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규모 이외에는 상속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상속은 자녀들이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망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오히려 2007년 11월에 열렸던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는 상속세 등은 반드시 존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또 한번 미국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똑같은 부자라 하더라도 다른 평가를 받는 이유다. 나이가 들수록 버핏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그의 말 한마디와 보유종목 등은 세계인의 관심을 끈다. 한때 앨런 그린스펀 전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세계경제 대통령’이라고 부른 적이 있지만 버핏은 ‘투자 대통령’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