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인터뷰]'톱스타' 박중훈 "아쉬움 있지만, 후회는 없다"

입력 2013-11-15 18:47
수정 2013-12-10 13:32
영화 '톱스타'를 내놓은 신인 감독 박중훈. 풋풋한 20대 시절부터 장년이 된 지금까지, 다사다난한 우리 곁을 지켜 온 배우 박중훈이 감독이 됐다. 그를 만나자 묘한 느낌이 있었다. 불과 1~2년 전 배우로 만났을 때보다는 훨씬 둥글둥글해졌다. 그는 시종일관 "엄청 떨린다"며 눈치를 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시작하자 역시 '큰 형님 포스'가 가득한 감독 박중훈을 볼 수 있었다. 그와의 대화는 딱히 영화를 위한 인터뷰라기보다, 한참 인생 후배인 기자에게는 달인과의 선문답 같은 느낌을 줬다. 지금부터 그와의 문답을 최대한 느낌 살려 중계한다.

★아쉬움 있지만, 후회는 없는 이유

한국영화 하면 박중훈, 박중훈 하면 한국영화다. 좀 과장된 감도 있지만 사실이 그렇다. 박중훈 감독은 "28년 동안 30~40편 정도 영화를 했다"고 밝혔다. '톱스타'는 그런 박중훈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영화다. "아쉬운 점은 없나"라고 묻자 그는 "28년 동안 배우로 출연한 영화들을 들여다보면,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다시 잘할 자신은 있어요. 하지만 더 열심히 할 자신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만큼 매 순간 열심히 했다는 얘기다.

"나는 내 인생에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그런 훈련이 많이 돼서, 이번에 감독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톱스타'를 다시 찍으라고 하면 더 잘 찍을 것 같긴 한데, 내 능력으로선 최대한 노력해서 찍은 거여서 후회는 없어요." 참 납득이 가는 이야기다.

그래도 하나 꼽으라면 나이트클럽 내 룸을 다룬 장면이 약간 아쉽다고. "정말 아방궁처럼 꾸미고 싶었는데, 돈의 문제라서 기존 유흥주점 룸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나머지는 정말 후회 없어요."



★단언컨대, 한 번도 화내지 않았다

박중훈은 "배우 생활을 아주 오래 하다 보니 감독을 해도 놀랄 일이 많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최측근에서 감독을 많이 봐 왔거든요. 그런데 이제와서 고백하지만 '이 감독은 정말 소통 능력 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한 적은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랬을까? 그는 '단언컨대' 영화를 찍으면서 한 번도 배우나 스태프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고.

"감독은 그 영화의 리더예요. 그런데 리더가 팀하고 소통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화내는 것이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화내는 건 가장 쉽지만 가장 효과가 없어요. 그냥 다들 통하는 척 하는 거죠."

오랫동안 연기를 해 왔기 때문에 박중훈 감독은 누구보다 배우를 잘 안다.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보여주는 사람인데, 그걸 보듬어 주지 않으면 주의가 분산돼요. 그래서 배우들의 정서상태를 최고로 유지하는 데 늘 신경을 썼어요."

박중훈은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소감을 '신임 판사'에 비유했다. "연기자나 스태프는 다 감독을 쳐다보거든요. 그런데 감독은 연기자와 스태프를 내려다봐요. 그 뷰(view)가 낯설었어요. 신임 판사는 재판에는 익숙하지만 판사석엔 처음 서잖아요. 꼭 검사나 변호사를 20여년 하고, 처음 판사석에 선 그런 느낌이었어요."



★세월이 깨닫게 해 준 것들

그가 화를 참은 것은 왜일까. 설명에 따르면 '세월' 때문이다. "제가 20, 30대 때는 거의 인내했던 기억이 없어요(웃음). 톱스타라는 권력도 있었고, 성격도 자기 성찰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어요. 뭘 별로 참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나 때문에 많이 불편했을 것 같아요."

그는 영화를 시작하면서 단순히 '화내지 말자'가 아니라 "화 내는 느낌조차 주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화내는 모습을 안 보여도 태도나 눈빛에서 알 수가 있거든요. 그래도 스태프 한 두 명은 미울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조차 많이 삭히려고 했지요."

스스로도 '참아 본 적이 없다'는 박중훈이 겸손해진 계기는 무엇일까. "한 마흔 살쯤 됐을까요? 내가 바닥으로 떨어진 순간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더 이상 핫(Hot)하지는 않았고요. 결혼한 지도 십수년 되고. 애들도 크니까 뭔가 자각 같은 게 오더군요. 20대와 30대는 그저 성취하기 위해 살아왔는데, 성취를 어느 정도 이루고 나니 이제 앞이 아니라 옆이 보인다고 할까요. 성취 자체가 행복을 주는 건 아니더군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주는 것 뿐이지."

★현명하게 나이 드는 법

그는 현명하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해서도 특유의 입담으로 조언했다. "사람한테는 지성과 야성의 매력이 있어요. 지성은 생각하고 개발하는 것이고, 야성은 주어지는 것이죠. 20대 때는 남녀를 불문하고 야성의 매력이 더 돋보여요. 멋진 지성을 가진 20대 남자가 있어도, 잘 생긴 야성의 매력이 있는 20대 남자한테 밀리죠. 그렇지만 30대 때부터는 야성의 매력이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하고, 그 공간을 다른 매력으로 메우지 않으면 점점...더 매력이 떨어져요."

30대 중반쯤 되니 참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는 멈추지 않고 설명했다. "특정 인물을 거론하면 안 되니까 말을 안 하겠지만, 20대 30대 때는 굉장히 매력 있다가 현저히 매력이 떨어진 배우들이 있잖아요. 전형적으로 타고난 야성 외에 지성을 키우려는 노력을 덜 한 거죠. 반면 늦게 빛을 보는 배우는 지성에 대한 성찰을 많이 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박중훈 본인은 어떨까. "저는 20대 때 마치 뾰족한 화강암 같았어요. 그런 뾰족한 화강암은 쥐었을 때 손에 상처를 주죠. 하지만 그걸로 뭔가를 격파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끼 낀 차돌멩이처럼 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잡으면 둥글둥글한데 뭔가를 치면 격파할 수 있어요. 제가 그렇다고는 못하겠지만 나이 들어서도 이끼 낀 돌처럼 부드러움이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뭉실뭉실한 돌멩이가 뾰족한 것보다 약한 게 결코 아니거든요."

초반에 말했다. 감독 박중훈이 둥글어졌다고. 그는 이미 1~2년보다도 훨씬 더 둥글둥글해져 있었다. 그런 그가 원하는 대로 나이들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저절로 동의하게 되었다.

한국경제TV 이예은 기자

yeeuney@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