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어느 날, 가을 냄새 물씬 느껴지는 배우 이준기를 만났다.
이준기는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투윅스'(소현경 극본, 손형석 최정규 연출)에서 장태산 역으로 출연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투윅스'는 살인누명을 쓴 한 남자 장태산(이준기)이 자신에게 백혈병에 걸린 어린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2주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 울적한 이 느낌, 장태산과의 이별
이준기는 장태산을 연기하면서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와 부성애 넘치는 연기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 액션 잘하는 배우에서 한 발 나아가 새로운 매력을 뽐내며 '믿고 봐도 될' 배우로 한뼘 더 성장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역시도 아직은 장태산과의 이별이 힘들어 보였다. 이준기는 최근 외로움에 친구에 친척까지 동원해 술을 마시고 있다고 설명했다. 울적함에 집에 있기 싫을 정도란다.
"이번엔 여러모로 긴장하고 부담감도 컸던 것 같아요. 감정 소진도 많았고 롤러코스터 타는 감정이었어요. 가족에 대한 애틋한 정을 느끼면서 살다가 이준기로 혼자 동떨어지니까 공허함이 큰 것 같아요. 울적해요. 후유증이 정말 오래가는 느낌이예요. 좀 더 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원래는 작품이 끝나면 캐릭터와 저를 잘 중화시키는데 이번엔 더 몰입했던 것 같아요. 좁은 곳에서 사람들과 시끌벅적하게 숨 쉴틈없이 바쁘게 살다가 외로움이 큰 것 같아요."
그는 정말 쓸쓸해보였다. '투윅스'의 장태산과 딸 수진이 역의 이채미까지.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과 여운을 깊게 간직하고 있었다. 특히 극 중 딸로 출연한 이채미에 대한 감정은 장태산을 넘어 배우 이준기의 가슴에도 크게 자리했다.
"채미랑 이별한 것도 큰 것 같아요. 이번 작품 진짜 좋았어요. 결혼할 때가 됐구나 싶기도 하고 딸을 갖고 싶어요. 채미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드라마의 일등공신은 채미가 아닐까 싶어요. 정말 채미 덕에 많이 몰입됐어요. 찍는 내내 수진이에 대한 잔상이 남아서 채미 생각이 많이 나요. 채미가 날 더 사랑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조공도 많이 바쳤어요.(웃음)"
이준기는 엄마 역의 박하선과 채미를 사이에 두고 서로 더 사랑받고자 경쟁하기도 했다. 또한 앞으로 딸바보가 될 것 같은 이준기는 "저는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박하선 씨가 채미가 자기를 더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를 좀 더 좋아할 수밖에 없겠지라는 생각은 들어요. 가장 오래 붙어있고 그러다보니까 좋아하지 않을까 싶지만 아빠로의 애틋함도 있지 않을까요?"라며 "채미가 얼마 전에 음성메시지를 보냈어요. 제 이름을 먼저 이야기했어요. 이준기 아빠랑 박하선 엄마 보고싶고요. 분명 제가 선두에 있었어요. 이건 아빠를 먼저 생각하는 거예요"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 '아빠라는 이름으로' 장태산, 그리고 이준기
이준기는 극중에서 딸이 있는지도 몰랐다가 갑작스럽게 그 존재를 알게된다. 그리고 강한 이끌림, 즉 부성애를 느끼고 백혈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건다. 그는 장태산이 부성애를 느끼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태산이가 딸 아이를 보자마자 부성애가 생기는 것이 어찌보면 이해가 되기 힘들 수도 있어요. 저희도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드라마는 미니시리즈고 압축해야 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래서 작가님이 '배우가 중요한거다'라면서 저에게 요구하셨고 태산이에 대해 섬세한 표현들을 연구해보자고 하셨어요. 극도의 불안감, 초조함과 걱정을 갖고 있었어요. 표현을 못 할까봐. 그런데 촬영하면서 결과적으로 혈육에 대한 이끌림이었던 것 같아요. 감정적으로 반응이 되지 않았을까? 정말 내 딸을 가져보지 않았지만 이 나이에 그런 감정들을 모르니까 이미지화 시켜서 봐야하잖아요. 혈육의 정인것 같아요. 보지 않았더라도 어떤 이끌림이 순간적으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태산이는 수진이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갖고 있으니까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분명 있었을 것 같아요."
팬들에겐 아쉬운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준기는 이번 배역을 통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것에 앞서 연애의 필요성에 대해 절실하게 느꼈다.
"술은 외로움을 잠깐 달래 줄 수 있는 도구일 뿐, 치료제는 아닌 것 같아요. 요즘엔 울적해서 술 마셔도 눈물 나요. 감정 기복이 커져서 어떻게 이준기로 회복시키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주변에서 '연애할 때가 된 것 같다'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감당을 못할까봐 걱정돼요. 사귀면 잘 챙길 수 있을까 싶고 내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만남이면 안되잖아요. 만남에 대해서 책임감도 가져야되니까...사실 주변에서는 '걱정덩어리'라고 해요. 하지만 사귄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을 아침부터 밤까지 내 사람이라고 챙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내 일에만 몰두할까 걱정돼요. 심사숙고해야 될 것 같아요. 연애가 필요한 건 확실한 것 같아요."
◆ '투윅스' 액션신, 이준기 생명의 위협을 느끼다?
살인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가 된 이준기는 산을 타고, 빨대 하나로 숨을 쉬며 흙 속에 묻혀도 보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기도 하는 등 정말 고군분투 탈주기를 계속했다. 액션도 잘하는 이준기였지만 이번 '투윅스'는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것만 빼면 다 해본 것 같단다.
"산 타는 것도 죽을 맛이었지만 죽을 뻔한 건 급류신이었어요. 안전장치나 대비책이 없었어요. 어마어마한 유속에 떠내려 가는 거니까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표정은 리얼이예요. 실신까지 갔던 것 같아요. 촬영하다가 죽는 경우도 있잖아요. 정말 큰일날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몸을 사린다고 하는 분들도 이해가 갔어요. 물도 먹고 고꾸라지고 이러다가 '죽겠구나'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또 배우가 액션에 대해 욕심내는 게 멋있지만 무모한 욕심은 노력의 결과물을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게 만들겠다라는 생각도 했어요. 주연배우가 죽어버리면 소용없으니까 몸사리는 것도 프로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준기는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투윅스'의 소현경 작가에게 액션신을 더 요구했다. 그래서 스태프들 사이에 이준기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고. "작가님에게 더 써달라고 했어요. 스태프들이 욕 했어요. 제발 더 말하지 말라고. 정말 8회까지가 정점이었던 것 같아요. 소양강댐에서 마지막에 보트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그랬어요. 수심이 약 200m였는데 스태프들도 그걸 화면에 잡으려면 와야하니까 스태프들 원성이 자자했어요. 저 보고 '드라마를 감정으로 가야지, 몸으로 때울거냐'고 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감정이 충분하니까 볼거리도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시청률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볼거리' 잖아요."
주연 배우들이 지치지 않고 하니까 좋았던 같다고 설명한 이준기는 "다행히 하늘이 도운 것 같아요. 타박상은 달고 살았는데 액션하면서 크게 다치거나 한 건 없어요"라고 말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급류신에서 수장 되는 건 아닌가라는 위협을 느끼면서 스스로를 무모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준기는 희열을 느꼈다. "'해보자'라고 해서 뭐든지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무모하게 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보면서 희열이 느껴지긴 했어요. 액션을 추구하면서 나만큼 할 수 있는 배우는 없을 거라는 자부심도 들었어요. 하지만 감독님은 '멍청하고 무식한거지'라고 하셨어요.(웃음)"
"배우가 현장에서 생각이 많으면 안 돼요. 작가님과 감독님과 조율한 상태에서 현장에 가면 영화처럼 여유롭게 생각하고 할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찍고 가야해요. 내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하고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해야 해요. 이제보니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것만 빼고 거의 다 해본 것 같아요. 김선생이랑 옥상신도 CG처럼 나와서 아쉬워요. 다들 조마조마하게 찍은 거예요. 다음에는 더 제대로 해야겠다 생각도 들고 빌딩에서 매달리는 것도 해보고 싶어요. 김 선생역의 송재림도 고생하고, 바들바들 떨면서 희열도 느끼고 감정으로 보여줄 수 없는 걸 신체 연기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이 하나 하나 있어주면 숨 막히게 따라갈 수 있으니까 그걸 감정으로 연기하는 것도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 8년, 3류 양아치 장태산의 스위치가 꺼져 있던 시간들
이준기는 드라마에서 1~2회가 가장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예상외의 대답이다. 위험천만한 액션들도 멋지게 소화한 이준기였지만 이야기의 밑그림. 즉 장태산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을 시청자들이 놓치지 않고 따라오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울기도 했단다.
"1~2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고, 편집실 가서 확인하고 재촬영도 하고 가장 고민했던 회인 것 같아요. 또 가장 어려웠어요. 중요한 부분이고 놓치고 가면 안 되는 부분들도 많고 작가님이랑 감독님도 그러니까 '배우가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시청자가 이해할 수 있게 해줘야 하고 속일 수도 있어야 하고 따라오게 만들어줘야 하니까요. 매일 감독님과 작가님에게 하소연하고 울었던 것 같아요. '살려달라'고 했어요. 하지만 작가님도 그렇고 다들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해주셨어요. 그렇게 칭찬해주시다가도 끝나고 나면 주문하시고 조금 더 조금 더 걱정됐던 것 같아요."
이준기는 소현경 작가가 배우들을 위해 비하인드 스토리를 정리해 준 덕분에 장태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장태산이 삶의 목적 없이 3류 양아치로 살던 8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장태산이 자기 자신을 버렸다기보다는 인생의 목표나 희망이 없었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자신의 길을 잃고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했고 그리움도 컸을거고 분노도 크고 사람들이 싫고 사람에 대한 결핍이 컸던 친구예요. 여러가지 사건들로 어쩔수 없이 인혜를 버려야했고 정말 큰 상처도 받았을거고 인생의 노선을 잃을 수 밖에 없었어요. 8년이나 그렇게 살았어요. 그래서 이용도 당하고 특별히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는 참담하고 암담한 시간을 보냈어요. 허탈감과 함께 장태산이 장태산에게 느끼는 미움도 있었을 거고 처음으로 삶의 욕구를 느낀 게 가족이 나타났을 때인 것 같아요. 장태산은 대기모드로 8년을 살았어요. 인생에 이끌려 갈 수 밖에 없었던 장태산이 가족의 존재를 만났을 때 살아났고 목적도 찾고 욕구, 욕망도 생겼고 스위치 온 상태가 된 것 같아요."
-②편에서 계속
한국경제TV 양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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