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년만의 재회다. 작년 컨셉코리아 참여와 관련해 처음으로 만났던 디자이너 김홍범. 올해도 컨셉코리아에 출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그를 만나러 갔다. 매년 심사를 통해 뽑히는 디자이너만 참여할 수 있는 컨셉코리아에 2년 연속 출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실력이 입증 받은 셈 아닌가. 그래서일까. 1년 만에 만난 그의 모습에서 첫 만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 그에겐 운도 실력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는 기자를 보자마자 유쾌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 탓도 있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여유롭고 한층 밝아진 모습이다. 외모도 한층 어려지고 스마트해졌다. 그동안 얼마나 좋은 일이 있었던 걸까.
“제가 그렇게 보이나요? 큰 변화 없었는데~(웃음). 열심히 디자인하고 쇼 준비하고 그렇게 지냈어요. 변화라고 한다면 그때보다 더 바빠진 것 정도?”라고 말하는 그의 활기찬 모습이 첫 만남 때와는 달리 더 많은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일단 두 번째 참가한 컨셉코리아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첫 번째 보다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좀 더 여유가 생겼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한 번 해봤기 때문에 한결 잘 준비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쇼를 안 해서 무척 아쉬웠다.”
이번 컨셉코리아는 런웨이 쇼 없이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진행됐단다. 힘들게 디자인한 옷을 가지고 가서 쇼를 못했다니 듣고 있던 기자가 힘이 빠지는 듯하다. 그래도 그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는데, 역시 그의 실력은 이런 데서도 증명되는 걸까. 쇼룸의 도움을 받아 모델 6명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서 2시간 동안 파티 형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이번에 뉴욕의 SHK라는 매거진이 있는데 그곳에서 내 옷을 보고 먼저 연락이 왔다. 직접 룩북을 찍고 싶다고. 그래서 미리 옷을 그쪽에 보냈다. 룩북 촬영도 자기들이 다 해주고 자기네 온라인 매거진에 미리 올려서 모델 섭외까지 다 해줬다. 때문에 비용절감뿐만 아니라 홍보에도 상당한 효과를 봤다. 정말 기분 좋았다.”
역시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맞다. 그의 옷이 좋다는 걸 알아보고 이렇게 행운이 따라와 주지 않았는가. 그 실력을 인정받은 이번 컬렉션의 옷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기억을 되돌려보니 그는 상당히 독특한 곳에서 디자인 영감을 받았던 것 같다. 이번에는 어땠을까.
▲ "이번 의상,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가려고 했어요"
그는 영국 아티스트 ‘Renee Verhoeven'이라는 젊은 아티스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이 아티스트가 상당히 생소해서 아주 짧게 설명을 하자면 글러브 같은 것을 만드는 아티스트인데, 3D 패턴과 레이저 커팅을 응용해 현대적이면서 모던아트적인 느낌이 있다고 한다.
“내가 응용하고 싶은 건 3D 패턴이었다. 사실 유럽 쪽에는 3D 프린팅을 옷에 접목시키는 전문 디자이너들이 많은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다. 그래서 3D 느낌이 나는 패턴이나 쉐이프를 활용해서 디자인했고, 다양한 프린트를 개발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옷 자체는 현 시대적인데 프린트는 약간 미래지향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절대 너무 아트웨어 같은 느낌은 아니다.”
그는 이번 의상은 전체적으로 힘을 많이 빼고 좀 더 이지(easy)한 느낌으로 디자인했다고 했다. 첫 번째 컬렉션이 다소 무거웠다면 이번에는 한결 쉽고 편해졌다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의상 콘셉트를 바꿔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방향을 바꾼 이유가 뭘까.
“나도 처음에는 디자인만 생각하면서 옷을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보기에는 멋있는데 입기에는 다소 난해한 옷들이 만들어지더라. 의상은 상업 예술이다. 나는 현실 속에 살고 있으니까 현실감각이 살아있어야 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대중성도 염두에 두면서 옷을 만들었다. 물론 그 안에 나만의 아이덴티티는 잃지 않는 선에서 전체적인 코디네이션에 신경 쓰면서 밸런스를 맞췄다. 이번 서울패션위크 컬렉션도 위트 있는 요소들을 많이 준비했다. 아마 상당히 재미있을 거다. 꼭 보러 오라.(웃음)”
한때 기자도 의상을 공부했던 전공자로써 디자이너의 답변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혹 어떤 이는 대중성을 따라가 결국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고 돈을 쫓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옷은 결코 예술이 아니다. 샤넬, 루이비통 등 명품이 왜 명품이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쉽다.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누군가 입고, 신고 멨을 때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다. 이 디자이너 꽤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 "아직 채워야 할 게 70%나 남았어요~"
생각이 바뀌었으니 행동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봤다.
“그동안은 거의 옷 디자인에만 집중을 했다. 이제는 외부 활동을 많이 해서 브랜드 홍보에도 신경을 쓰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방송에도 출연중이다. SBS에서 하는 ‘패션왕코리아’라는 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인데 11월에 첫 방송된다. 많이들 시청해줬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이 디자이너, 아까 서울패션위크부터 깨알 같은 홍보를 빼먹지 않는다. ‘오호라, 이거 방송을 해서 그렇게 말도 잘하고 홍보도 잘하고 자신감까지 업그레이드 된 건가’라고 기자는 잠시 생각했다. 비단 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세계적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갖게 된 식견이리라. 이런 기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글로벌한 계획도 늘어놓는다.
“유럽이나 미국도 좋지만 아시아 시장도 절대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은 요즘 다들 넘보는 시장이다. 그래서 나도 진출하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아직 상해는 트렌디 쇼의 활성화가 안 돼 있으니까 이번에 일본부터 먼저 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에게 ‘자신의 브랜드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것 같나’라고 묻자 ‘아직 멀었다’라고 말했다. 공이 골문을 향해 간다고 했을 때 30% 정도 온 것 같다고. 이 정도면 50%는 오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지만 그는 아직 참 젊다. 그래서 50%보다는 30%가 적당한 것도 같다. 저렇게 꿈도 많고 열정도 많으니 70% 정도는 남아줘야 그 모든 걸 다 담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한국경제TV 블루뉴스 최지영 기자
jiyoung@blu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