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부자(父子)를 다 죽일까 했어요."
이게 무슨 소린가. 최근 '뽀로로'와 '번개맨'을 누르며 차세대 '유통령'으로 등극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영화 '히어로'의 감독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생각했다.
'히어로'는 병상에 누운 어린 아들을 위해 시청률 부진으로 종영한 어린이 드라마 '썬더맨'의 주인공으로 직접 변신하는 허당 아빠 주연(오정세)의 고군분투를 그린 가슴 따뜻한 휴먼 드라마 아니었나? 그러나 김봉한 감독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빠 주연(오정세)과 아들 규완(정윤석)을 다 죽게 하고, 다른 세계에서 행복하게 사는 엔딩으로 마무리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그렇게 하면 주연의 부정이 더 절절하지 않을까 했거든요. 하지만 최종적으론 그러지 않았어요. 더 신기한 얘기도 들려드릴까요?"
진지해 보이는 김봉한 감독은 자신이 들려주는 '반전 스토리'에 귀를 바짝 곤두세우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놀라운 이야기 1. 저, 사실 스릴러 감독입니다
'히어로'는 김봉한 감독의 입봉작이다. 일단 김봉한이라는 감독의 걸어온 길이 궁금했다. 놀랍게도 휴먼 드라마이자 코미디 영화인 '히어로'의 연출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는 '스릴러 쪽' 감독이었다.
"저는 1995년부터 영화사에서 일했어요. 촬영 등 기초적인 것부터 했고요. 그러다가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좀 하고 와서 2003년쯤부터 스릴러로 첫 작품을 준비했죠. 1970년대의 실존인물이고 한국 최초의 연쇄살인마라고 불리는 김대두를 소재로 한 작품이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국 찍지 못했어요."
살인마 김대두를 소재로 한 첫 장편은 결국 만들지 못했지만, 김 감독은 그 소재를 단편영화 '연극 살인마 김대두'라는 작품으로 결국 소화하긴 했다.
이 작품에는 '히어로'의 주인공이기도 한 오정세와 정진, 영화 '해안선'으로 유명한 박지아,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등 만만치 않은 출연진이 캐스팅됐다. 하지만 장편 준비 때문에 김 감독이 배급 단계로 넘기지 않고 갖고 있는 상태다.
"오정세와 정진은 그 작품을 함께 한 인연으로 '히어로'에도 출연하게 됐어요. 그 영화는 집에 조용히 숨겨두고 있는데, 나중에 공개하게 될 지도 모르죠.(웃음)"
현재 김 감독은 또 하나의 정통 스릴러를 준비 중이다. 초고는 썼고 각색하는 중이다. 과연 '히어로'를 만든 감독의 스릴러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놀라운 이야기 2. '히어로', 사실 19금 코드까지 있었어요
10월의 유일한 전체관람가 영화로, 가족관객에게 최적화된 영화라는 평가를 듣고 있는 '히어로'는 사실 원래 이런 영화가 아니었다. 그 사실도 상당히 기자를 놀라게 했다.
"처음 제가 쓴 시나리오는 다소 오컬트적인 내용이었어요. 어린이용이 아니라 정말 어른을 겨냥한 영화였죠. 박철민 씨가 연기한 캐릭터 영탁이 자신을 드라마 속 캐릭터 '히데스'라고 생각하는 백수이고, 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그 시나리오대로 만들면 지금보다 제작비가 15배 이상 든다고 해서 결국 여러 가지 면에서 바꾸게 됐죠."
사실 개봉 직전까지도 '히어로'의 전체관람가 여부는 불투명했다. "이미 찍어 놓고 삭제시킨 신 중에도 19금 코드에 가까운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좀 아깝기도 하지만 결국 지금과 같은 방향을 택하게 됐죠."
그 외에도 김 감독이 털어놓은 '히어로'의 우여곡절은 많았다. "한 1년 동안 계속 시나리오가 바뀐 것 같아요. 결국 제주도 측에서 깃발을 꽂아줘서 시작할 수 있게 됐죠. 3개월 정도 드는 스케줄을 한 달 반만에 소화해야 했고, 스태프 복지는 전무할 정도로 힘든 일정이었어요. 정말 고생 많이 해서 만들어낸 작품이에요."
*놀라운 이야기 2. 원래 밥 샙을 섭외했었죠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또 있다. 극중 주연의 전 부인 세영(황인영)의 어이없는 흑인 남자친구로 등장하는 아부다드에 대한 이야기다. 김 감독은 원래 아부다드가 맡은 남자친구 역할로 이종격투기 선수 밥 샙을 염두에 뒀었다고 고백했다. "원래 정말로 섭외하려고 다 해 뒀었는데, 밥 샙의 스케줄이 안 돼서 성사되질 못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그 사람을 대해 보니 이미지와는 달리 아주 여성스럽더군요.(웃음)"
결국 문제의 역할을 맡게 된 아부다드 또한 '반전 인물'이다. 사실 가나 출신의 아부다드는 영화팬이라면 익숙할지도 모르는 인물이다. 강동원, 고수 주연의 '초능력자', 김명민 주연의 '페이스메이커' 등에 출연해 한국인 못지 않은 한국어 실력을 자랑했던 배우다. 하지만 '히어로'에서는 코믹한 영어로 배꼽을 뺀다.
"아부다드는 한양대학교에서 미생물학 연구를 하는 엘리트예요. 유학생인데 굉장히 지적이죠. 저희 영화에서는 우습게만 나오지만요."
아부다드가 만들어내는 코믹한 장면 뿐 아니라, '히어로'는 불치병과 부성애라는 눈물 코드를 다루고 있음에도 코미디가 매우 많이 등장하는 영화다. 일각에서는 그에 대해 '슬픔과 웃음을 다 잡으려는 시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김 감독에게 이런 의견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헤어진 전 부인을, 지금까지 아이를 키워 온 아빠가 만난다고 해 보세요. 당연히 심각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어이없고 우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요. 우리 사는 게 다 그래요. 심각하지만 어디선가는 황당하고 코믹한 일이 벌어지죠. 그게 현실이에요. 슬프지만, 순간순간 피식 웃음이 나오는 그런 걸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스릴러를 만들더라도 꼭 그렇게 하고 싶어요."
한국경제TV 이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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