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 추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아시아 신흥국을 중심으로 벌써부터 ‘제2의 외환위기’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 발생했던 외환위기가 태국 바트화에서 비롯된 점을 감안해 최근 인도 루피와 인도네시아 루피아 가치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한번 당하면 이후 상황과 관계없이 같은 상황만 발생하면 시달리는 일종의 ‘낙인효과’다.
‘제2의 아시아 외환위기설’에서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은 지금은 1990년대 후반 상황과 다르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아시아 국가 공통적인 내부문제에서 비롯됐다. 특정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는 곧바로 인접국으로 확산되는 ‘전염 혹은 나비 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됐다.
최근에는 아시아 국가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양적완 완화로 풀린 자금이 이탈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캐시 플로우’ 문제다. 스톡 면에서 외환보유액, 플로우 면에서 경상수지에 어려움이 없다면 같은 신흥국에 속해다 하더라도 전염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은 적다는 의미다. 특히 경상수지 흑자 여부가 더 중요하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외화와 경상수지를 감안하면 같은 신흥국이라도 세 가지로 분류된다. 두 지표에 문제가 없는 ‘캐쉬 플로우 전전국’으로 대만과 중국, 한국 등이 꼽힌다. 이미 위기 조짐이 일고 있는 ‘캐쉬 플로우 불건전국’으로 인도와 인도네시아, 터키 등이 속한다. 두 국가군의 중간 단계로 자체적으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으나 특정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전염될 우려가 있는 ‘캐쉬 플로우 중립국’으로는 브라질과 필리핀 등이다.
앞으로 출구전략이 추진되면 투자가용자금이 곧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금과 미국 국채, 일부 신흥국에서 이탈한 자금과 국채(혹은 주택저당증권) 매입규모를 축소한다 하더라도 Fed가 제공하는 본원통화는 나오기 때문이다. 현금보유성향이 높아져 시중 자금이 퇴장되지 않는다면 자금의 속성상 어디론가 투자된다. 새로운 수익처다.
출구전략 추진 이후 자금흐름은 세 가지로 예상된다. 이미 안전 선호 자금은 미국 등 선진국으로 제 자리를 찾고 있다. 출구전략 피해가 적고 갈수록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프런티어 마켓에는 고위험?고수익 추구 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중위험?중수익 추구 자금은 캐쉬 플로우가 건전한 신흥국에 머물거나 신규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출구전략에 따른 자금이탈과 자금유입 간의 각각 세 가지 경우의 수를 조합(3X3 매트릭스)하면 아홉 가지 시나리오가 나온다. 신흥국만 따진다면 자금이 들어올 가능성이 적은 캐쉬 플로우 불건전국과 중립국을 제외한다면 캐쉬 플로우 건전국과 성향별 자금유입 간의 세 가지 시나리오로 좁혀진다.
캐쉬 플로우 건전신흥국에 안전 지향 자금이 들어와 주가가 올라가고 통화 가치가 절상되면 진정한 의미의 차별화다. 하지만 투기성이 강한 고수익 추구자금이 들어와 주가와 통화 가치가 오르면 차별화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통화 가치가 절상돼 경기가 침체되면 거품 발생이 촉진돼 후에 자금이 빠지면서 더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이때 외자유입에 따른 주가와 통화 가치 상승은 차별화가 아니라 착시현상이자 안전통화 저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안전통화 저주’란 미국 버클리 대학의 베리 아이켄그린 교수가 처음 주장한 용어다. 통화 가치는 교역국과의 교환비율이기 때문에 경제여건에 비해 고평가되면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만큼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출구전략 추진 전후 캐쉬 플로우가 중시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적정 이상의 외화보유, 대규모 경상수지흑자, 상대적으로 건전한 재정수지 등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가가 상승하고 기대까지 겹치면서 ‘신흥국과는 다르다’는 차별화 주장에 의외로 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안전 추구 자금이 들어온다면 차별화가 맞지만 투기성이 강한 자금이 들어온다면 이 주장은 나중에 국내 투자자에게 더 큰 화(禍)를 초래할 저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급격한 자금이탈'에 대해서도 사전에 대비해 놓을 필요가 있다. 앞으로 신흥국 금융시장은 외국자금이 추가로 유입되는 것보다 유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급격한 외자이탈을 경험한 국가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특징을 보면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이 특징은 위기진행 과정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급격한 외자이탈이 발생한 국가들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크레딧 디폴트 스와프(CDS) 금리가 급등한다는 점이다.
CDS 금리와 외자 유출입과의 관계를 보면 CDS 금리가 장기 평균치에서 표준편차의 2배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외자유입이 감소됐다. 변동성이 더 심해져 장기평균치에서 4배를 벗어나면 CDS 금리가 이전보다 더 빠르게 급등하면서 외자유입이 갑작스럽게 멈추고 곧바로 이탈 단계로 전환됐다.
이때부터 위기 발생국의 통화 가치는 절하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외국인 자금이 유입될 당시에는 절상되다가 해외자본 유입이 갑자기 중단 이후 곧바로 대량 이탈로 급진전되는 과정에서 통화 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갈수록 국제간 자금흐름이 투기적인 속성이 강한 자금이 의해 주도됨에 따라 환율 변동성이 심해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기별로는 급격한 자금이탈이 발생한 국가의 통화 가치가 장기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3배를 벗어나거나 해당연도 절하율이 직전년도의 절하율을 10% 포인트 상회할 경우 이전보다 빨라지는 쏠림현상이 나타나면서 외환위기로 악화됐다. 이때 위기 발생국의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인식되면 CDS 프리미엄이 빠르게 떨어지는 진정국면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위기 발생국들의 외화유동성에 의심이 갈 경우 투기성 자본들의 공격대상이 되면서 국제통화기금의 유동성 지원 등과 같은 계기가 마련되기까지 혼란국면이 지속됐다. 이 단계에서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국통화표시 자금조달이 곤란하기 때문에 급격한 자금이탈이 발생하면 외환에 대한 초과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심각한 외화부족에 직면했다.
그 후 주가와 부동산 가격하락에 따른 역자산 효과와 경제주체들의 디레버리지(부채축소·저축제고), 통화가치 절하에 따른 대차대조표 효과 등을 통해 비교적 큰 폭의 실물경기 침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악의 경우 실물경제 침체가 또 다른 외자이탈을 유발하는 나선환 악순환 위기에 빠지는 국가도 있었다.
그런 만큼 모든 위기는 발생하기 전에 미리 그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면 정책당국을 비롯한 모든 경제주체들이 사전에 준비가 가능하고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그에 따른 경제사회적 비용을 상당부문 줄일 수 있다. 이런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신호등 체제를 활용한 ‘조기경보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과거 위기발생국의 공통적인 경로를 토대로 볼 때 일단 CDS 금리 등 위기관련 지표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그것이 ‘거짓신호’ 여부와 관계없이 ‘파란불(경고 Ⅰ)’를 켠다. 그 후 △CDS 금리가 장기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2배로 급등하고 △외자 순유입이 줄어들면서 △환율변동이 심하면 ‘파란불’에서 ‘노란불’로 바꾼다(경고 Ⅱ).
상황이 더 악화돼 CDS 금리가 장기평균치에 비해 표준편차의 4배 이상 급등하고 △외자 순유입 규모가 장기평균치에 비해 2배 이상 감소하거나 곧바로 순유출세로 바뀌고 △환율이 급등세로 돌아서면 ’노란불‘에서 ’주황불‘로 한 단계 격상(경고 Ⅲ)시킨다.
최종단계로 △통화 절하폭이 직전년도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확대되고 △외환보유고가 감소하면서 △실물경기 침체가 본격화되면 ‘주황불’에서 ‘빨간불’로 전환(경고 Ⅳ)한다.
경험국 사례로 볼 때 ‘경고 Ⅲ’ 단계에 가면 그때서야 국민들이 ‘경제가 잘못되고 있구나’ 하는 위기감을 느낀다. 늦어도 ‘경고 Ⅱ’ 단계에서 알아낼 수 있다면 사회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얘기다. 신흥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돈을 많이 벌었던 조지 소로스가 ‘개별 조기경보체제(PEWS:Personal Early Warning System)’를 잘 구축해 ‘경고 Ⅱ’ 단계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은 국내 투자자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