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인터뷰] '관상' 한재림 "조정석, 춤 주문에 자리에서 벌떡"

입력 2013-09-10 15:58
2006년 개봉된 영화 ‘우아한 세계’ 이후 7년 만이다. 그동안 뭐하다가 이제야 나타났나 싶겠지만 그 속을 누가 알리오. 하지만 7년이라는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다. 영화 ‘관상’(한재림 감독, (주)주피터필름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제작)이라는 결과물을 낳았으니 말이다. 송강호(내경) 이정재(수양대군) 백윤식(김종서) 조정석(팽헌) 이종석(진형) 김혜수(연홍) 그리고 한재림, 가히 놀랄만한 관상 아니겠는가.



영화 ‘관상’은 왕의 자리가 위태로운 조선, 얼굴을 통해 앞날을 내다보는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이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계유정난(癸酉靖難)이라는 역사에 관상이라는 일종의 미신을 입힌 ‘관상’. 우리는 여기서 명심해야 될 게 있다. “관상이나 계유정난은 중요하지 않아요. 패배감이 가장 중요하죠. 긴 세월을 돌이켜 봤을 때 승자와 패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것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한재림의 ‘관상’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 “내경의 무너진 개인사가 중점”

컴백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서일까. 11일 개봉을 앞둔 한재림의 모습에서는 다소 떨림이 느껴졌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말은 안하지만 “영화 어떻게 봤어요?”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줍음이 많아 얼마 전 열린 레드카펫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고 저만치 대기실에서만 지켜봤다는 한재림. 역시, 자신의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관상’이라는 제목을 달고 시나리오가 도착했을 때는 그저 ‘관상을 다루는 영화인가보다’ 생각했어요. 기대를 하고 보는데 생각과 전혀 다른 거예요. 관상이라는 게 중요하기는 했지만 핵심이 아니었죠. 역사 앞에 무너진 내경의 개인사가 중점이었어요. 원작은 굉장히 문학적이고 딱딱했죠. 앞뒤 설명도 없었고요. 관객들에게 개개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각색을 했어요. 그런데 기대와는 다른 이야기가 나오네요. 앞서 보여줬던 ‘연애의 목적’이나 ‘우아한 세계’도 호불호가 많이 갈렸었죠. 지금 딱 그런 느낌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보셨어요?”

사실 관객들은 한재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재림라는 이름이 주는 힘 말이다. 그러나 한재림은 전혀 눈치를 못채는 모습이었다. “감사하죠. 오랜만에 영화를 하는데 저를 기억해주시니까 말이에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다. 한재림의 전작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관상’에 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7년 만에 돌아온 한재림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연애의 목적’이나 ‘우아한 세계’의 색깔이 ‘관상’에 묻어나기를 바라셨나 보더라고요. 물론, 오랜만에 나왔으니까 이례적으로 전작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요. 좋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관상’은 느와르나 멜로를 비튼 전작처럼 무엇을 비틀지는 않아요. 어떤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이야기를 해 나가는 거죠. 한 관상쟁이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모래 폭풍 같은 이미지가 상징이에요. 아, 더 이상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니까 여기까지만. 하하.”



◆ “멀티캐스팅,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배우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있을까. 앞에서 길게 나열을 하긴 했지만 두 번 말해도 모자람이 없다. 한재림은 원석을 발굴해내는 사람처럼 조정석과 이종석을 캐스팅했다. 그리고 이미 정상에 있던 배우들도 새 바람을 일으키며 멀티캐스팅이라는 말까지 붙게 됐다. 한재림은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배우 운을 잘 탄 거라고. 이런 조합이 다시는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이렇게 바쁜 인기인들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겠나. 관객들 역시 행운이리라.

“배우들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장점이에요.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도 있잖아요. 프로들과의 작업은 정말 즐거워요. 신뢰가 있으면 일이 척척 진행되죠.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멀티캐스팅이 된 거 같아요. 조정석 씨나 이종석 씨나, 제게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하는데 저는 점쟁이가 아니에요. 역할에 맡는 사람을 찾았는데 그 배우가 재능이 있었던 거죠. 조정석 씨는 첫 촬영을 하고 나서 ‘대단하다’ 싶었어요. 이종석 씨도 ‘열의가 강하고 열심히 하고 성실한 배우구나, 잘되겠네’ 싶었죠. 하지만 저라고 이렇게 잘 될 줄 알았겠어요?”

배우들의 호흡이 나와서 말인데 단연 으뜸은 내경과 팽헌의 춤사위. 깊은 산 속에서 살던 이들은 연홍의 제안으로 한양에 가게 되는데, 연홍의 기방에서 한껏 벌어지는 음주가무가 그야말로 일품이다. 특히 이들의 정체모를 일명 각기 춤이 조정석의 아이디어로 확인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 보면 잊을 수가 없는 이 춤은 영화에서 다소 튈 수도 있었다. 한재림 역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조명을 기다리며 송강호 조정석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 신 촬영을 며칠 앞둔 날이었는데 농담을 하다가 ‘춤 한 번 추고 가면 어때요?’라는 말이 나오게됐죠. 시나리오에는 춤이 없었거든요.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조정석 씨가 벌떡 일어나 춤을 추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또 송강호 씨가 따라 해요. 텐트 안에서 둘이 춤을 추는데 빵 터졌죠. 왜 사극을 보면 사람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잖아요. 그런데 내경과 팽헌은 춤조차 어수룩한,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 인거죠. 정말 잘 살려 냈어요. 춤 지도도 필요 없었다니까요. 그런데 걱정은 좀 했어요. 이게 영화적으로 괜찮을까. 다행히 잘 녹아들었어요. 두 분 진짜 대단합니다.”



한국경제TV 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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