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 ‘가짜 새벽’ 논쟁 왜 다시 가열되나?

입력 2013-08-05 09:30
최근 들어 월가를 비롯한 국제금융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앞으로 한국에 투자할 때 예상되는 ‘false dawn(가짜 새벽, 혹자는 잘못된 새벽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음)’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가짜 새벽’이란 올 2분기 성장률이 전기대비 1%대로 당초 예상보다 높게 나온 것은 통계기법상 ‘기저 효과(base effect)’ 등에 따른 일종의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착시 현상만 제거된다면 한국 경제가 3분기 이후 다시 어려워지고, 투자 수익률도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투자은행(IB)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2%초반으로 내려 잡고 있다. 현재 잠재성장률이 3.7%인 점을 감안하면 소득 갭(GDP gap, 실제성장률-잠재성장률) 상으로 1% 포인트 이상 디플레 갭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지속 성장 여부와 관련해 '냄비 속 개구리(boiled frog syndrome)' 등 비관론이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 경제가 이런 비관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정책을 동원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좀비 국면’으로 빠지는 경제주체들의 경제하고자 하는 의욕을 북돋기 위해 ‘한국판 레이거노믹스’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뉴딜 정책이란 1930년대의 혹독한 경기침체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즈 벨트(Franklin D. Roosevelt)가 추진했던 일련의 정책을 말한다. 1930년대 미국경기는 유효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에 따라 물가와 성장률이 동시에 급락하는 디플레이션과 대규모 실업사태로 대변되는 대공황 국면을 겪었다.

한 나라의 경기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을 때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재정지출을 통해 부족한 유효수요를 보전해 줘야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고 본 것이 케인즈의 구상이자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첫 작품이 뉴딜 정책이었다. 최소한 1970년대까지 케인즈 이론에 의한 정책처방은 경기대책으로 적절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경기는 경기가 침체되고 물가가 상승하는 스테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양상을 띠었다. 이 상황에 직면해 케인즈 이론이 한계를 보이자 새로 등장한 것이 ‘레이거노닉스(Reaganomics)’다. 이 이론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수요보다 공급측면이 강조돼야 하며, 이를 위해 조세체계를 개편하고 정부 개입은 줄여줘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레이거노믹스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은 래퍼(Arthur B. Laffer)다. 래퍼는 한 나라의 세율이 적정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높을 때에는 오히려 세율을 낮춰주는 것이 경제주체들의 창의력을 높여 경기와 세수가 동시에 회복될 수 있다는 이른바 ‘래퍼 효과(Laffer Effect)’를 강조했다.

레이거노믹스의 본질은 정부가 미리 짜여진 수요에 맞춰 경기를 부양하는 뉴딜정책과 달리 경제주체들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게 갖고 잃어버린 활력을 어떻게 높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에 의존하기 보다는 감세와 규제완화, 기업중시 정책 등을 권고했다.

우리 경제는 아직까지 유동성 함정에 처해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금리를 내리더라도 소비와 투자가 늘지 않고 있다. 임금은 그 어느 국가보다 하방 경직적이다. 얼핏 보기에는 케인즈적인 상황과 유사하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단순히 유효수요가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도적 틀이 자주 바뀌고 경기진단과 처방을 놓고 부처 간의 갈등이 심화돼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이 더 큰 요인이다.

이 때문에 뉴딜 정책과 레이거노믹스 가릴 것없이 복합 처방이 필요한 때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정책당국의 부양책 효과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편에서 부양책을 내놓고 다른 한편에서 경제주체들의 의욕을 꺾어 놓는 역행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정확한 경기진단과 정책처방이 잘못됐다는 판단에서다.

흔히들 '주식시장은 자본주의의 꽃‘이라 부른다. 꽃은 활짝 피어야 아름답고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경제학에서 외부경제를 설명할 때 꽃밭을 자주 예로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감안하면 꽃밭을 만들 때 드는 사적 비용보다 사회적 비용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증시가 살아나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증시가 활기를 잃어버린 지는 오래됐다. 시장만이 아니라 증권사, 증권인, 그리고 증시관련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른바 ‘한국 증시의 쿼드러플 좀비화‘ 현상이다. 이제는 투자자들마저 증시를 외면하는 ‘노마드’ 현상까지 일고 있다.

여러 요인이 겹쳐 있다. 증시의 3대 구성요소인 돈과 기업, 투자자가 이런 저런 명목이 붙은 규제로 뛰어 놀지 못하고 있다. 인사와 감독권을 갖고 있는 기관들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빅 브리더’ 현상도 심해지는 추세다. 투자자에게 일정수준 이상 수익을 내주지 못하고 있는 증권사와 증권인도 문제다.

그 중에서 한국 증시의 고질병으로 지적돼 왔던 외국자본의 지배문제인 ‘윔블던 효과’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윔블던 효과란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것처럼 영국의 금융기관 소유주가 영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처럼 단기간에 외국인 비중이 높아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들어서는 더 심해주는 추세다. 지난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대에 머물렀으나 최근에는 40%를 넘어섰다. 외국인 순매수와 코스피 지수 간의 상관계수도 0.7 내외수준(‘1’에 가까울수록 같이 움직인다는 뜻)까지 높아졌다.



이론적으로 최근과 같은 포트폴리오 성격 위주의 외국자본 확대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순기능으로는 △금융서비스 개선 △금융제도 및 감독기능의 선진화 △대외신인도 제고 등을 꼽는다. 하지만 우리는 경제발전단계에 비해 외국인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 국부유출, 경제정책 무력화, 기업 경영권 위협 등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우려된다.

우리처럼 역기능이 더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윔블던 효과’부터 해결하는 것이 한국 증시가 활기를 되찾기 위한 첫 걸음이다. 많은 과제 가운데 아직도 잔재돼 있는 한국 정부의 외자선호 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과다 외환보유고가 논란이 되는 만큼 앞으로 외자정책은 우리 경제의 공생적 투자가 될 수 있느냐 여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외자유입 정도에 비례해서 국내자본의 육성, 국내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에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제도 곳곳에 만연돼 있는 외국자본과 국내자본 간의 역차별 요소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국민연금 등이 운용주체 선정과정에서 외국사가 포함되면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생각하고 국내 금융사가 포함되면 불안해 한다면 말이 안돼는 얘기다.

경제주체들이 글로벌 시대에 있어서는 한국계 자금만 따지는 ‘은둔의 왕국’적인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에는 언제든지 백기사가 된다는 자세만 있다면 최근과 같은 윔블던 효과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투자자들이 그런 자세를 갖고 있어야 외국자금의 순기능을 십분 누릴 수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주권이 어느 정도 확보된 상황에서 우리 증시가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돈과 기업, 그리고 투자자가 맘대로 뛰어놀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돼야 한다. 규제는 풀고 인사와 감독권은 시장에 맡겨 놓는 것이 관건이다. 증권사와 증권인도 본업에 충실하고 경쟁력을 갖춰 투자자에게 일정수준 이상 수익을 내줘야 하는 과제도 뒷받침돼야 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