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출구전략 추진을 기정사실화하고 금융위기 이후 적용될 새로운 평가 잣대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짜기에 부심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 등이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출구전략이 추진될 2014년을 ‘대도약의 해’로 삼고 이를 위해 △도전적인 목표 설정 △신사업 조기 가시화 △가치있는 제3의 성장 등을 핵심 경영전략으로 잡은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기업을 평가하는 주요 지표는 주로 재무제표였다. 경영진은 경제적인 이윤 추구에 집중하고 투자자들은 매출과 이익을 근거로 우량 기업을 골라내는 것이 정형화된 기준이었다. 주식투자에서는 주가수익비율(PER), 자기자본이익률(ROE),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재무지표와 관련된 지표가 주로 활용돼 왔다.
이런 기준에 부분적으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1980∼1990년대부터다. 당시 나이키나 코카콜라의 사례처럼 재무제표에 없는 비(非)재무적인 이슈들이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들이 속속 발생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 같은 현상은 한층 더 두드러져 부정적인 소문은 인터넷을 타고 삽시간에 세상으로 퍼져나가고 이는 주가하락, 매출감소 등으로 해당 기업에 되돌아오는 ‘네트워킹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이때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까지 감안해 소비자, 주주, 종업원 등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는 차원에서 ‘지속가능 경영’이라는 개념이 제시됐다. 지속가능 경영이란 책임경영, 지배구조 개선, 윤리경영, 투명경영, 열린 경영, 사회공헌 활동, 환경경영 등 한 마디로 비재무적 리스크까지 감안한 경영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위기 이후 경영환경에 있어서는 지속가능경영이 한층 더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지속가능경영에 동참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 불이익을 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도 이런 경향을 수용해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경영표준을 정하고 속속 경영전략에 반영하고 있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산업정책에 있어서 이런 환경에 맞춰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다. 한때 정보기술(IT) 산업에 주력했던 각국의 산업정책이 금융위기 이후에는 제조업을 재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같은 제조업이라도 고용창출 효과가 큰 수출업종을 중심으로 각종 지원을 통해 집중적으로 육성시키고 있다.
오랜만에 ‘르네상스’라는 용어가 붙을 정도로 각국이 제조업을 중시하는 데에는 거시정책 목표를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체감경기 개선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국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체감경기의 대표 지표는 경제고통지수로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해 산출한다. 최근처럼 물가가 추세적으로 안정된 시대에 있어서 체감경기를 개선한다는 것은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다.
이런 목적을 달성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지난 10년간 주력산업이었던 정부기술(IT)은 우선순위가 뒷전에 물러설 수밖에 없다. IT산업은 네트워크만 깔면 깔수록 생산성이 증가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 산업이 주도가 돼 경기되면 일자리, 특히 청넌층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이른바 ‘고용창출 없는 경기회복(jobless recovery)'으로 지표와 체감경기 간의 괴리가 확대되고 계층간 소득 양극화 현상도 심하게 발생한다.
IT산업의 반작용으로 벌써 이 산업의 최대 이용자이자 피해자인 청년층을 중심으로 신(新)러다이트 운동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운동은 19세기 초 기계를 파괴시키자는 러다이트 운동에 빗대어 IT 산업을 파괴시키자는 움직임을 통칭한다. 일부에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바이러스 전파, 디도스(DDos) 공격 등을 이 운동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전통적인 제조업을 중시 할 뿐만 아니라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주력산업으로 떠오를 이른바 ‘알파 라이징 업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알파 라이징 업종’이란 현존하는 기업이외라는 점에서 ‘알파’가, 위기 이후 적용될 새로운 평가 잣대에 따라 부각된다는 의미에서 라이징(rising)이 붙은 용어다.
그런 만큼 금융위기 이후에 형성될 미래 트렌드와 관련해 현재 연구·개발 중인 새로운 상품을 찾기에 분주하다. 현재 연구 개발 중이거나 개발이 완성돼 출시를 앞두고 있는 다양한 제품 가운데 ‘알파 라이징 업종’이 될 가능성이 높은 차세데 주력업종으로 △주인을 알아보는 카드 △건강을 가져다주는 바이러스 △기름을 먹고사는 박테리아 △자전거 교통 천국 ‘벨로벤트(Velovent)’ △어떤 연료든 다 쓸 수 있는 자동차 △사용한 종이기저귀가 거름이 되는 상품 △세계 언어 동시번역기 ‘하쿠나 마타타’ 등이 꼽힌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이드 섀플리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명예교수와 앨빈 로스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협조적 게임이론의 대가다. 섀플리 교수는 특별한 방법론적 설계가 어떻게 시장에서 하나 혹은 다른 상대방에 시스템적으로 해택을 줄 수 있는 지를 설명해 냈다. 로스 교수도 섀플리의 이론을 바탕으로 안정성이 어떻게 특정 시장 제도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증적으로 연구했다.
섀플리-로스의 공생적 게임이론을 기업경영에 접목시키는 일환으로 글로벌 선도기업들이 새로운 사업모델로 BOP, 즉 빈곤층 대상 비즈니스를 추진하고 있다. BOP는 1998년 미시건대의 프라할라드(C.K. Prahalad) 교수와 코넬대의 하트(Stuart L. Hart) 교수가 처음 만들어 사용한 용어다.₂
경영 차원에서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빈곤층을 종전처럼 단순히 원조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비니지스 모델로 인식해 수익을 확보하고 동시에 빈곤층의 후생수준을 높여 나가는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빈곤층에 대한 글로벌 선도기업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 문제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선진국 중심의 수요확대가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앞으로 저소득계층의 구매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인도, 사하라 이하 지역 등 BOP시장의 인구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2010~2015년 중 3,000달러 미만 저소득층 비율은 감소하는 반면 3,000~5,000달러의 중간층의 비율은 대폭 증가할 것으로 UN 등 관련 기관들은 내다보고 있다.
갈수록 양극화 문제가 심화될 것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포착해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BOP 비즈니스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BOP계층의 생활습관과 영양상태 등에 대한 철저한 패널조사와 시장에 적합한 판매전략 등을 통해 수익을 확보하는 한편 개도국의 빈곤, 질병 등 사회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수익과 빈곤층 자립기반 조성을 동시에 목표로 하는 BOP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동반자 관계설정, 각종 기부 등을 통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과 함께 가는 ‘제3의 임팩트(impact) 경영’에도 주력하고 있다. ‘임팩트(Empact)’란 감정이입을 뜻하는 ‘Empathy'와 사회적 연대를 나타나는 'Pact'가 결합된 용어로 사회적 연대경영을 말한다.
기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선도기업들은 전통적인 제조업과 알파 라이징 미래업종, 새플리-로스 공생업종 간에 ‘3:4:3’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 등이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선도기업들이 이 원칙을 유지하는 것을 놓고 '트라이앵글 황금률 경영(triangle golden rule management)'라 부른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글로벌 선도기업들의 트라이앵글 황금률 경영에서 중시하는 업종들은 친인간적이고 친환경적이라는 면에서 공통적이다.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출구전략 추진 가능성이 언급되는 시점에서 글로벌 선도기업들의 이 같은 경영은 국내 기업인과 투자자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