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 경제가 녹록치 않다. 이달 들어 국제협력개발기구, 세계은행 등이 내놓은 성장률을 보면 가장 잘 나갔던 때에 비해 절반 내외로 예상됐다. 지금 전 세계인이 출구전략과 아베노믹스에 쏠려 있지만 21세기 들어 또 하나의 성장축을 담당했던 브릭스가 추락한다면 세계경제 앞날은 불 보듯 뻔하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들 국가들이 정책적으로 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점이다. 금융위기 여파로 경기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자 브릭스 국가들은 금리인하 등을 통해 유효수요를 늘리기 위한 뉴딜 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선진국의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자산시장에 유입되면서 실물경제와 괴리가 심하게 발생하고 있다.
뉴딜 정책이란 1930년대의 혹독한 경기침체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추진한 일련의 정책을 말한다. 브릭스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유효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물가와 성장률이 동시에 떨어지고 대규모 실업사태에 직면하고 있는 유로 회원국들도 ‘유럽판 뉴딜 정책’을 표방했다.
뉴딜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은 존 메이너드 케인즈다. 케인즈 이론의 특징은 △노동시장에서 근로자의 화폐환상과 임금의 하방 경직성 △상품시장에서 금리에 대해 소비, 투자 등 총수요의 비탄력성 △화폐시장에서 투기적 수요와 유동성 함정이 존재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정국이 이런 상황에 놓여 있을 때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부족한 유효수요를 보전해 줘야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고 본 것이 케인즈의 구상이자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첫 작품이 뉴딜 정책이었다. 최소한 1970년대까지 케인즈언식 방은 경기대책으로 적절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기는 경기가 침체되고 물가가 상승하는 새로운 스테그플레이션 양상을 띠었다. 이 상황에 직면해 케인즈언식 처방이 한계를 보이자 새로 등장한 것이 레이거노닉스다. 이 정책은 총수요보다 총공급을 늘려야 물가와 경기침체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고 봤다.
이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은 아셔 래퍼다. 래퍼 교수는 한 나라의 세율이 적정수준을 넘어 비표준 지대에 놓여 때에는 오히려 세율을 낮춰주는 것이 경제주체들에게 창의력과 경제하고자 하는 의욕을 고취시켜 경기와 세수를 동시에 회복할 수 있다는 이른바 ‘래퍼 곡선(Laffer curve)’를 제시했다.
레이거노믹스의 본질은 정부가 미리 짜여진 수요에 맞춰 경기를 부양하는 뉴딜 정책과 달리 경제주체들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게 갖고 잃어버린 활력을 어떻게 높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캠플주사식 부양책에 의존하기보다는 감세와 규제완화, 기술혁신 등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권고했다.
브릭스 경제는 아직까지 통화공급을 늘리면 금리가 내려가는 것으로 봐서는 유동성 함정에 처해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종전처럼 소비와 투자가 늘지 않고 있다. 임금은 빠르게 하방 경직적으로 변하는 추세다. 얼핏 보기에는 케인즈적인 상황과 유사하기 때문에 브릭스가 금융위기 이후 맞은 경기둔화에 금리인하 등과 같은 뉴딜 정책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브릭스 경기침체는 유효수요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성장경로상 ‘불균형 혹은 외연적 단계’에서 ‘균형 혹은 내연적 단계’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심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이미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誌와 작년 미국경제학회(AEA)에 참석했던 게리 베커 사카고대 교수, 로버트 멘델 컬럼비아대 교수, 로렌스 서미스 하버드대 교수 등이 잇달아 중국 등 브릭스가 ‘중진국 함정’에 빠질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이란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 초기에는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중진국 수준에 와서는 어느 순간에 성장이 장기간 정체되는 현상의 의미한다. 1인당 소득으로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으로 분류할 때 중진국이라 함은 4000∼10000달러 범위대에 속한 국가들을 통칭한다. ‘중진국 함정’을 경험한 구소련은 구매력 기준으로 1인당 소득이 10000∼15000달러에 도달했을 때 경제성장 정체현상이 나타났다.
역사적으로 ‘중진국 함정’에 빠져 경제발전 단계가 다시 후퇴했던 국가들은 의외로 많았다. 1960∼70년대 이후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과 같은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 전형적인 ‘중진국 함정’이 빠져 ‘종속이론’이 탄생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동남아의 경우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을 중심으로 ‘중진국 함정’에 빠져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말레이시아는 자본통제를 강화하는 등 대외개방에 소극적으로 바뀐 주요인이다.
여러 이유가 있으나 비교적 보편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중진국 함정’을 나타나는 것은 경험국의 사례를 볼 때 네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무엇보다 짧은 기간 안에 성장단계를 일정수준 끌어올리는 이른바 압축성장(reduce growth)을 주도하는 경제각료들의 사고가 경직적으로 바뀐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경제운영체계도 소득이 일정수준 도달할 때 임금상승 등 ‘고(高)비용-저(低)효율 구조로 바뀔 때 시장경제 도입 등에 소홀히 한 것도 원인이다.
산업구조 전환도 선진국의 첨단기술과 인력도입 등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초기 단계에 성장을 주도했던 제조업 등 주력산업을 고집했다. 경제와 사회에 대한 통제력도 약화돼 정치적 포퓰리즘이 성행하면서 경제주체들의 분출되는 욕구를 수용한 것도 한편으로 경제주체들의 의욕을 꺾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고비용-저효율 경제구조를 빠르게 정착시켰다.
이론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성장은 외연적 성장단계(extensive growth path)에서 내연적 성장단계(intensive growth path)를 거치는 것이 정형적인 경로이다. 외연적 성장단계란 사회주의 국가들의 성장초기 단계로 노동 등 생산요소의 양적 투입을 통해 성장하는 국면이다. 이에 반해 내연적 성장단계란 시장경제 도입, 기술혁신 등을 통해 생산요소와 전반적인 경제시스템의 효율성을 제고시켜 성장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특히 중국과 인도의 주력산업은 제조업 분야에서 심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은 그동안 공업화·도시화 진전으로 농촌의 잉여 노동력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루이스 전환점’¹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국이 루이스 전환점에 이르면 그때부터 인력수요와 공급 간의 불일치(mis-match)로 노동자 임금이 급등하면서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정착하는 것인 정형적인 사실이다.
대외적으로도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유치단계에서의 장점을 상실하고 높아진 경제위상에 맞게 내수시장이 발전되지 않음에 따라 미국 등 교역상대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누니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과잉투자에 따른 부실대출 및 과잉설비 영향으로 올해는 중국의 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되는 경착륙 가능성을 제기했다.
더욱이 출구전략 추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외자이탈에 따른 자산시장에 낀 거품 붕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미 브라질은 토빈세를 전격적으로 폐지했다.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있는 인도는 대규모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강력한 규제책에도 좀처럼 부동산 거품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중국의 고민도 늘고 있다.
일본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가 브릭스다. 이들 국가들이 당면한 현안을 풀기 위해서는 뉴딜 정책과 레이거노믹스, 외자이탈 방지 등 복합처방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문제다. 투자 관점에서 브릭스에 대한 기대 수익률을 낮추는 대신 프런티어 시장 등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할 때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