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17편. 어린이, 교사 그리고 믿을 수 있는 학교
교사라는 ‘일’
‘님’자가 빠진 ‘선생’이라는 단어는 약간의 어패가 있지만, 난 개인적으로 교사라는 말보다 ‘선생’이라는 말이 더 좋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을 의미하는 ‘선생’이라는 단어를 되새겨 보면, 교사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권위’는 사라진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나보다 늦게 태어난 사람들인 어린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더불어 내 일에 대해 깨어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직업이 가진 최대 맹점은 자격증을 취득 후 시험 혹은 면접 등과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교사’라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 자격증만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영어로 교육학이라는 의미의 Pedagogy는 Pedagogos라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다. Pedagogos는 교복이라는 뜻으로 이는 ‘시민’이라는 신분의 남자들에게만 교육이 행해지던 시절, 귀족의 자제를 학교에 데리고 다니는 나이 많은 종을 이르는 말이었다. 이 일이 맡겨지는 사람은 신분은 노예지만 삶에 대한 지혜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이 역할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평생 종으로 살면서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과 같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군림하는 주인에게 복종하며 겪었던 수 많은 인생의 일화와 지혜를 갖게 되었다. 교복이 된 지금 주인의 자녀를 학교까지 데리고 가면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야기처럼 하나씩 들려준다. 교복의 역할은 아이를 가르치기 보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인생의 혜안을 나누는 역할인 것이다.
하지만, 함께 생각해 보자 나이 많은 늙은 종이 자신의 주인의 자녀인 어린 남자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었을지 말이다. 그는 주변 종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그의 신분은 여전히 종이다. 주인이 언제 자신의 잘못을 물어 죽음을 준다 하여도 그 어떤 누구도 뭐라할 수 없는 신분을 가진 존재이고 그것이 용인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교사는 이런 신분을 지닌 사람들이란 말일까? 이 시대에는 다양한 종류의 교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의 교사로 일하는 주변의 신망을 받는 교수부터 정규 교육에 들어가는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의 교사 그리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영유아 교사들이 있다.
물론 그 외에도 사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교사들도 있으며 그 외에 언급되지 않은 방식으로 일하는 교사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교사들에게서는 모두 다른 ‘지위’와 ‘역할’이 기대된다. 대학의 교수와 초등학교의 교사 그리고 어린이집의 교사가 같은 교사라고 느껴지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이 하는 일은 다른 종류의 일인 것일까? 이 교사들 집단은 만나는 ‘학생’의 연령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신념(belief)과 마인드(mind)와 같은 자신의 일에 대한 철학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교육 철학이 없다면, 누군가를 만나 자신의 앎과 지혜를 나누는 일은 나눔이 아니라 ‘기계적인 말하기’로 변질된다.
‘믿을 수 있는 학교’ 그리고 ‘CCTV’
교육은 백 년지 대계라는 말을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있어 ‘교육’은 매우 중요한 관심 거리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좋은 학교에 대한 열망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교육을 목적으로 세워진 학교라는 곳은 아무리 좋은 시설과 프로그램, 교육과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지라도 교실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교사가 자신의 일에 대한 교육 철학이 없다면 교사는 아는 것을 말하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듣지 않은 사람은 ‘교사의 말’이 기준이 되어 ‘말을 듣지 않은 아이’가 되어 버린다.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 대한 교사의 대처 방법은 어떠해야 할까?
위 기사는 지난 5월 8일자 모 인터넷 신문에 난 기사이다. 한 때 한국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이 사건으로 인해 cctv를 어린이집에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고 이에 대한 실질적인 움직임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제 cctv를 달았기에 학부모들은 아이를 안심하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나는 되묻고 싶다. ‘좋은 학교 =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학교’로 머무는 것에 만족해야만 하는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기사 속의 교사 역시 cctv가 그 곳에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서울형 어린이집이라는 것이 도입되었을때 cctv를 달기 위해서는 모든 교사들의 싸인이 필요했다. 또한 설치 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은 이 사실을 모르기가 너무나 어렵다. 그렇다면, 교사는 어떻게 때릴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사실을 알고도 왜 아이를 때린 것일까?
우리가 영유아기의 어린이를 만나는 교사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이 시기의 어린이들을 만나는 교사들은 어떤 일들을 하는 사람이며, 이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특히, 어린 영아를 만날 수 있는 어린이집의 교사 자격증은 유치원 교사 자격증에 비해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취득이 가능하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인터넷으로 1년 동안 강의를 듣고 약간의 실습을 거치면 국가 자격증이 나오게 된다. 자격증을 쉽게 딸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의사가 직업으로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직업인 만큼 어려운 일을 할 것이며, 중요한 일을 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반면, 인터넷 수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자격증이 주는 메시지는 영아들을 만나는 일 역시 쉬운 것이며 아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이것은 누군가 언급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스템 자체가 사람들에게 어떤 인식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아들과 함께 지내는 일은 정말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어린 영아를 만나는 교사들의 주 업무는 아이들을 달래고, 놀아주고, 잘 먹을 수 있게 또 대소변을 잘 가릴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특별한 기술이나 철학이 필요 없는 정말 쉬운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좋은 교사들은 아이들의 눈빛에서 아이의 의도를 읽어낼 정도의 민감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단순히 책에서 읽어 알게된 발달 지식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실천 안에서 새로운 전문가로서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얻을 수 현장지식(field knowledge)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 역시 경험을 해보아 잘 알고 있다. 달래도 우는 아이, 아픈 아이를 맡기고 출근할 수밖에 없어 미안한 나머지 신경질을 내는 학부모, 국가에서 새로운 정책 때마다 수행해야 하는 새로운 업무들…
다양한 사람들(어린이, 학부모,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다. 현재 나는 교사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아이들 만큼 교사들을 자주 만나고 있다. 그리고 행운처럼 내 주변에는 좋은 교사들이 참 많이 있다. 내가 경험하고 알게 된 교육사의 큰 흐름이나 철학들 그리고 어린이들의 놀이를 보고 기록을 하는 방식을 함께 나누고 있지만, 교사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 또한 큰 가르침을 얻는다.
한 명의 휴머니스트로서 ‘아이의 울음, 눈빛, 단어 하나….’에서 아이가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려는 온정적인 그(녀)들의 노력은 나를 다시 학생으로 되돌려 놓는다. 난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서 이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이름이 기억되진 않겠지만 아이들의 정서와 정신을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라는 ‘직업’을 갖기에 ‘교사 자격증’은 충분할 수 있으나 먼저 태어난 사람으로서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엔 자격증은 그저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진정한 ‘선생님’으로 거듭나기 위한 신념과 마인드를 닦는 것이 이 분야에 종사를 마음 먹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구타해 현재 수감중인 교사는 일을 선택하고 시작할 때 자신의 일이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시작한 것일까? 그녀는 현재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심정일까? 한 때나마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만큼은 아이들과 즐거운 한 때를 꿈꿨을 그녀를 위해 나는 돌을 던지지 않으려 한다. 다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린이집의 교사 역시 ‘어린이’만큼이나 소중한 사람이라는 점과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아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강조하며 이번 칼럼을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