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TV 이예은 기자]배우 김상경을 만나러 갔을 때는 비 오는 날 오후였다. 원래 끝났어야 하는 인터뷰는 10분 정도 지체됐다. 인터뷰실 안에서 앞서 인터뷰를 한 기자들과 ‘인증샷’을 찍고 있는 김상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침침한 날씨, 오후 늦은 시간인데도 그는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영화 관계자에게서 “배우가 워낙 열심히 홍보 중이라 우리가 할 게 별로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다. 김상경은 원래 저렇게 열심인 배우인 걸까, 아니면 이번 영화가 그렇게나 만족스러운 걸까.
그는 만나자마자 활짝 웃으며 “나는 장동건이나 원빈이 아니니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편하게 질문하라”며 ‘서비스 모드’에 돌입했다. 그가 ‘살인의 추억’만큼 자신 있다고 내세운 새 영화 ‘몽타주(16일 개봉)’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잘 ‘곰삭은’ 감독의 영화
먼저 “기분이 참 좋아 보인다”고 말을 꺼냈다. 김상경은 신이 난 듯이 “내 기대보다 몇 배나 영화가 훌륭하게 만들어졌는데, 좋을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옛날에 홍상수 감독님이 연출부 출신으로 감독 데뷔를 준비하는 친구들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넌 더 썩어야겠다.’ 그렇게 어떤 분야에 통달하려면 ‘썩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몽타주’의 정근섭 감독님은 정말 잘 곰삭은 감독인 것 같아요. 신인 감독이 저렇게 영화 찍기 정말 쉽지 않거든요.” 김상경에 따르면 정 감독은 김상경이 ‘빼는 게 낫지 않을까’ 했던 장면을 나중에 보니 스스로 편집해 놓을 정도로 서로 호흡이 잘 맞았다고.
그는 언론 시사회에서 영화를 처음 보고 마구 울었다고 했다. “영화 내용에 감명받아서도 울었지만, ‘이게 바로 영화다’, ‘영화란 정말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에 또 울었어요. 그런데 배우가 자기 영화 보고 눈물 훔치고 있으니 참 민망하기도 하더군요.”
시사회에서 운 사람은 김상경 본인 뿐이 아니다. 김상경은 박경림, 홍진경, 정선희 등 평소 웃음으로 유명한 이들이 모두 울며 나갔다고 전했다. “경림이는 다 울고 나더니 저를 보고선 또 한 번 눈물을 마구 쏟더군요. 제 얼굴만 봐도 슬펐나봐요. 하하.”
▶자식이 100명은 있는 것 같은 엄정화
그는 동료 배우 엄정화의 연기를 극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미 김상경은 시사회 전부터 “‘몽타주’는 엄정화의 대표작이 될 것”이라고 얘기해온 바 있다.
“여배우의 연기를 보고 이렇게 많이 운 건 처음이었어요. 나야 애 아빠라 아동 유괴사건이라는 소재를 보고 ‘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아픈 게 당연하죠. 그런데 정화 누나는 어떻게 미혼이면서 그렇게 연기를 했을까요. 두고두고 회자될 거예요.”
그는 이제 4살인 아들의 아빠가 되고 나서 아이에 대한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전에는 아이들을 학대하는 문제를 접하거나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 저절로 욕이 나와요. ‘타워’에서도 아이와 헤어지는 장면에서 가장 분개하고 감정이 폭발하더군요. 이게 부모가 돼서 바뀐 점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정화 누나는 그렇지도 않으면서 자식이 100명은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니 참...”
▶‘퍼펙트’를 외친다면, 그만 해야 하지 않을까
엄정화의 칭찬에 열을 올리는 김상경에게 본인의 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의 데뷔는 1998년이니, 이제 15년이 된 셈이다. 과연 연기 초년병 때보다는 자신의 작품을 보고도 몰입할 수 있게 됐을까?
김상경은 “내가 내 걸 보고 판단할 수는 없고, 영화 전체를 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연기 초년생 때는 내 연기를 보려면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미칠 지경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많이 나아졌어요(웃음). 좀 달라진 거라면 부족한 점이 보여도 ‘이게 보이니까 더욱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거죠. 자기 연기를 보면서 ‘퍼펙트’를 외친다면 그만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배우라면 계속 부족한 걸 고쳐나가고 발전할 생각을 해야죠. 그저 완벽해 보이기만 한다면 성장 가능성이 없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자신의 연기에 ‘퍼펙트’를 외치지 못하지만, 그 때문에 배우를 계속한다는 김상경은 충무로에 몇 안 되는 ‘믿고 보는 배우’ 중 하나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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