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주요국의 제조업 경기가 재차 둔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 경기 동향을 알 수 있는 4월 미국의 공급관리자협회지수(ISM)와 유로 존, 중국 등의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올 3월보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대 역점을 두고 있는 제조업 경기가 둔화되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추진했음에도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CPU)이 -0.5%를 기록하는 등 좀처럼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세계경제가 다시 ‘소프트 패치(soft patch)’ 혹은 ‘머들링 스루(muddling through)' 국면에 다시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1)
종전처럼 공식적인 경기판단2)없이 제조업 경기가 재둔화 조짐을 보이자 신속하게 경기부양의 고삐를 죄는 것은 각국 정책당국의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이후 양적완화 조기 종료논쟁에 시달렸던 밴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은 5월 FOMC 회의를 통해 종전의 부양기조를 계속 유지할 뜻을 재확인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회원국별로 논란이 돼왔던 기준금리를 전격적으로 인하하는 등 약화될 조짐을 보였던 성장 우선의 정책을 재천명했다. 일본도 인플레이션 목표치 2% 조기 달성을 재확인한 가운데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다른 선진국들도 조만간 양적완화에 동참할 태세다.
현재까지 확정됐거나 앞으로 발표될 경기부양 조치를 보면 두 가지 점에서 종전과 구별된다. 하나는 미국, 유럽 모두가 다른 정책수단보다 양적완화(QE) 등을 통한 유동성 공급과 자국통화 약세를 통한 수출과 경기부양에 더 집중한다. 다른 하나는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올리기보다 고용을 늘리는데 더 무게를 두고 있는 점이다.
이 때문에 QE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의 경기부양 정책은 가뜩이나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유동성은 정책요인과 시장요인에 의해 공급된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정책요인에 의해 유동성이 워낙 많이 풀려 그 자체만으로도 사상 최고 수준에 달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RO-RO(Risk On-Risk Off)'3) 4) 현상이 약화되는 상황에서는 퇴장되거나 단기 부동화됐던 자금들의 기회비용이 늘어 시중에 방출되는 움직임도 주목된다. 미국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 수직으로 떨어졌던 통화승수가 2011년 하반기 이후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5)
최근 들어 선진국들의 통화완화와 자국통화 약세유도로 각종 캐리자금이 한국 등 신흥국으로 유입될 수 있는 여건이 다시 성숙되고 있다. 주요 10개국 통화 가운데 저금리 3개국 통화를 차입해 고금리 통화에 나올 수 있는 수익률 지표인 글로벌 캐리 트레이드 지수가 올 들어 꾸준히 회복되고 있다.
캐리 트레이드란 브로커가 차입한 자금으로 유가증권의 투자를 늘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 투자한 유가증권의 수익률이 차입금리보다 높을 경우 포지티브 캐리, 반대의 경우를 네거티브 캐리로 구별된다. 또 차입한 통화에 따라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과 달러캐리 트레이드로 양분화돼 왔으나 유럽재정위기 이후 유로캐리 트레이드 자금도 부쩍 증가하고 있다. 캐리 트레이드를 운용하는 주체도 엔캐리의 경우 ‘와다나베 부인’, 달러캐리의 경우 ‘스미스 부인’, 유로캐리의 경우 ‘소피아 부인’으로 차입국의 가장 흔한 성(姓)을 따 부린다.
캐리 트레이드의 이론적 근거는 투자대상국의 통화가치를 감안한 피셔의 국제간 ‘자금이동설(m=rd-(re+e), m: 자금유입규모, rd: 투자대상국 수익률, re: 차입국 금리, e: 환율변동분)’다. 이 이론에 따르면 투자대상국이 수익률이 통화가치를 감안한 차입국 금리보다 높을 경우 차입국 통화로 표시된 자금을 차입해 투자대상국의 유가증권에 투자하게 된다. 이때 투자자들은 투자대상국과 자금차입국 간의 금리차익과 환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들이 통화완화정책을 추진하면서 모두가 저금리를 지향해 각국 간 금리차를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최근 캐리자금 흐름에 각국 간 금리차에서 올 수 있는 수익보다 환차익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6)
1990년대 중반 이후 캐리자금은 엔캐리 트레이드를 주도하는 와다나베 부인이 주도돼 왔다. 당시 일본은 장기간 경기침체와 선진국간의 달러가치 부양을 위한 역(逆)플라자 합의 이후 ‘제로’ 수준에 가까운 금리와 엔화 약세를 배경으로 엔캐리 트레이드를 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됐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 추진 이후 비슷한 여건이 재조성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달러캐리 트레이드를 주도하는 스미스 부인이 눈에 띠기 시작했다. 미국의 금리인하를 계기로 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임에 따라 미국계 자금의 차입금리가 저렴한 시대가 도래됐기 때문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때는 달러캐리 트레이드가 엔캐리 트레이드를 웃돌 만큼 급증했다.
지난해 등장하기 시작한 소피아 부인도 최근 다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 이달 들어 유럽 금리를 내리고 드라기식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키로 함에 따라 유로캐리 트레이드 여건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앞으로 한국 등 신흥국에서는 와다나베 부인과 소피아 부인이 ‘랑데뷰(rendezvous?만남)’할 가능성이 높다.
신흥국의 자본흐름에 관한 연구를 종합해 보면 최근처럼 선진국들이 경기부양의 고삐를 죄는 상황에서는 자본유출입의 변동성이 증가하고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이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계기로 금리차와 환차익을 겨냥한 핫머니성 캐리자금이 활발해지면서 경기순응성이 뚜렷해지는 점이 눈에 띤다.
경기순응성은 국제간 자본흐름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난다. 이로 인해 선진국 자본의 유출입이 신흥국의 경기변동을 증폭시키는 현상이 발생된다. 급격한 자본유입은 신흥국의 통화팽창, 자산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다가 자본유출로 돌변시에는 주가급락, 환율급등 등으로 거시경제의 변동성이 증폭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금융위기 이후 종전의 핫머니 자금에 대한 규제방안과 별도로 경기순응성 완화를 위한 금융규제 방안을 논의돼 왔다.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국제결제은행 바젤위원회(FSB)는 글로벌 금융사일수록 △자본금 규제 △대손충당금 적립 △레버리지 및 시가평가 규제 등을 의무화했다. 최근에는 신흥국 간에 이런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우리 입장에서도 최근처럼 각국이 다시 정책자금이 풀고 캐리자금이 유입될 여건이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경기순응성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외화유동성을 어느 정도 확보해 놓은 상황에서는 관련 국제협상에 적극 참여하고 금리인하 등을 통해 캐리자금 등이 유입될 수 있는 유인을 사전에 줄여 놓아야 한다.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토빈세 부과 뿐아니라 선진국 양적완화로 풀린 자금유입의 대처방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영구적 불태화 개입(PSI?permanent sterilized intervention)'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PSI는 국부펀드 등을 통해 유입 외자에 상응하는 해외자산을 사들여 통화 가치의 균형을 맞추는 방안이다. 전제는 유동성이나 신용위험면에서 외자를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국내자본의 해외투자에 따른 금융공동화와 국부유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