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스크린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홍콩 4대 천왕이다.
유덕화, 여명, 장학우, 곽부성 이들 4인이 천왕들은 영화면 영화, 음악이면 음악 등 다재다능함으로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했던 배우이자 가수다.
그 당시만 해도 연기와 노래는 별개의 것으로 치부되던 시절이기에 이들은 전방위적 인기를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가히 신드롬 수준이었다.
이후 세월이 지났고 이들의 빈자리를 메울 신성이 나타나지 못하면서 이들 4대 천왕의 빈자리는 자연스레 한국의 스타들과 가수, 드라마 등 ‘한류’가 메우게 된다.
대장금, 겨울연가 등 외모와 연기력, 세련된 연출력을 앞세운 한류가 동남아, 극동을 넘어 유럽과 미주, 중동, 남미 등 방방곡곡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4대 천왕이라는 말은 이처럼 홍콩 연예가에서 시작된 말인 데 우리 금융시장에도 4대 천왕이 있다.
김승유, 강만수, 이팔성, 어윤대 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제왕적 금융수장들을 일컬는 말이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사퇴에 이어 29일 오후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역시 사실상 2선 후퇴 의사를 밝혔다.
어윤대 회장이 연임을 포기하고, 사실상 사퇴 의사를 표명한 것을 끝으로 국내 금융 4대 천왕의 시대도 작별을 고하게 된 셈이다.
이들의 퇴장과 맞물려 1인 권력 집중적인 ‘제왕적 회장’ 체제에 대한 부작용이 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금융 4대 천황의 빈자리는 향후 선임될 후임 회장들이 메워 가겠지만, 이전 회장들의 제왕적 지배구조 전통을 이어 받아서는 곤란하다.
새로운 금융질서하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적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4대 천왕 시대의 종말에 방점을 찍은 어윤대 회장은 고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금융산업의 문제점을 마지막 선물로 안긴다.
단적인 예가 글로벌 경쟁력이다. 우리 금융산업이 여전히 우물안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13년 전만 해도 자산 규모 등 각 부문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던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이 13년동안 급속도로 성장한 반면 국민은행은 그렇지 못한 점 만 봐도 그렇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발 빠르게 변모하고 있지만 우리 금융사들은 금리차에서 오는 해외 경쟁력 악화, 국제금융 전문가 숫자와 수준 부족 등 해 묵은 과제를 떠안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13년간 이러한 것에 집중해 결실을 맺었다. 반면 국내 금융사들은 제자리만 맴 돈 셈이다.
금융 4대 천왕이 물러난 마당에 이제는 글로벌 경쟁력, 수익 창출,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을 지켜 낼 리더십을 가진 이가 빈 자리를 메울 때다.
홍콩 스크린 신드롬의 빈 자리를 ‘한류’가 꿰찼듯이 국내 은행들이 금융 ‘한류’의 중심이 되는 출발선상에 선 것이다.
우리 금융사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도이치뱅크, UBS, 영란은행 등과 어깨를 견주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글로벌 금융 오피니언 리더를 배출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유쾌하다.
금융당국이 지배구조 등 각종 TF를 구성하며 개선에 나서 보지만 이러한 것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민영화나 수장 교체에 그치는 수단에 그치지 말아야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국의 금융사 글로벌 경쟁력에 장애가 되는 애로사항 경청, 이를 위한 정책 지원, 금융사 자체 역량 강화 등이 어우러 질 때 금융 한류가 '뜬 구름'이 아닌 '손에 잡히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금융사들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이 시점에 금융당국이 금융 ‘한류’에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것도 필수 조건이다.
글로벌 금융산업에서 국내 은행, 금융권의 위상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반대 급부로 그만큼 발전, 성장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다.
국내에서 4대 금융이냐 아니냐, 몇 대 금융이냐 등을 놓고 아웅다웅할 때가 아니다.
금융 ‘한류’를 이끌 금융권의 삼성전자와 포스코 같은 은행이 현 시점에 왜 없는 지, 모두가 반성하고 향후 방향을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김정필 기자 정치경제부 jpkim@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