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수의 TRIMMING DREAMING] 5편. 사진작가 이진수 ‘빛을 숭배하다’
오늘은 빛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사진작가 이진수가 말하고 싶은 빛에 대한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파라오의 후예도 아니고 페루에서처럼 콘돌을 수호신으로 여기지는 않지만 그들이 태양을 숭배했던 것처럼 빛을 숭배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환경에서 이 글을 읽고 계실까요. 아마도 태양과 구름의 합작품인 아름다운 노을의 석양 아래서… 아니면 집의 칙칙한 형광등 불빛 아래 소파에서 스마트 폰으로 보실까요?
빛을 논하는 것은 감히 이 세상을 이루고 증명해내는 분자물리학과 거시적, 미시적 이론들을 모두 꺼내어도 모자를 듯합니다. 사진에서 빛이란 당연히 존재의 이유 자체입니다. 적어도 사진작가의 눈에 비친 빛에 대한 담론을 경험적인 척도로 이야기 해 보는 것은 꽤 흥미로울 것입니다.
우리 눈에 비춰진 이미지들을 망막에 담듯이 사진도 사물을 렌즈를 통해 화상을 맺게 하고 CCD(이전엔 필름이지만 이젠 거의 CCD고촬상소자로 바뀌고 있다)에 기록하게 되는데 빛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을 거론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진학에서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은 ‘PHOTOGRAPHY’의 어원입니다. ‘PHOTO(빛) + GRAPH(그림) -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1826년 프랑스의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는 사진의 역사에 있어서 최초로 빛의 형상을 이미지로 고정시킨 최초의 사진을 성공한 장본인이었습니다. 즉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로 불리는 이 사진술은 자신의 별장 작업실 2층 창에서 바깥 풍경을 촬영한 이미지였습니다. 빛을 기억 속이 아닌 실제 이미지로 기록하여 고정한다는 것은 마치 기억을 거울에 가두는 것과 같은 의미 이상일 것입니다.
빛은 태양이고 이 태양은 생명의 근원이듯 사진작가에게 빛이라는 것은 당연히 그 존재 자체일 것입니다.
1839년 프랑스의 루이 쟈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에 의해 최초의 사진술로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 프랑스 국립과학원에서 발표된 이후 사진은 회화와 마찬가지로 귀족들의 초상사진부터 발전됩니다. 초기에는 초상사진을 찍을 때 감광기술이 초보적이어서 몇 십분에서 몇 시간씩 노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을 뒤에서 묶어두기도 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아름다운 초상사진의 빛은 이미 화가들에 의해서 정립된 조명술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오는 조명 기법 등이 회화에서 사진으로 그대로 사용되었던 거죠. 19세기의 초상사진들은 지금의 사진들과 비교해서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하나를 상상해 보겠습니다. 프러포즈를 앞둔 A씨, 아름다운 B양에게 아름다운 작약으로 만든 꽃다발도 준비했습니다. 가정집에서 널리 사용되는 형광등을 사용하는 김치찌개 식당의 분위기와 할로겐 등을 사용한 전구색 느낌의 따뜻한 와인바 스타일의 조명의 장소 중 어느 곳이 어울릴까요? 일명 무드 등을 생각해보세요. 어느 누구나 형광등 아래에선 칙칙해 보일 겁니다. 분위기 있는 카페는 보통 노란 전구색 느낌의 할로겐이나 스탠드처럼 간접조명을 설치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따뜻한 색조의 간접조명을 사용한 로맨틱한 분위기에선 콩깍지를 씌워질 가능성이 농후하죠. 소개팅 성공률이 높은 조명 좋은 카페가 리스트업 되어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더군요.
사진작가도 다양한 분야로 나뉩니다. 광고사진에서도 패션사진, 뷰티사진, 제품사진으로 나뉘죠. 사진작가에게 빛을 이해하고 성질과 방향, 색조를 변경하고 조절하는 것은 바로 사진작가의 경험과 감각 그리고 등급을 나타내는 잣대가 되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뷰티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가는 인물에 대한 빛에 민감도가 가장 최고입니다. 제가 바로 뷰티사진을 많이 작업한 사진가 중에 한 명입니다. 모델에게 온갖 메이크업을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이쉐도우에 펄도 들어가 있을 것이고 피부는 촉촉할 것이고 입술은 광택이 나겠죠. 바로 광고주는 이런 모든 필수 요소들이 사진에 반영이 되면서도 모델이 아름답고 여신처럼 나오길 원하겠죠. 촉촉한 피부가 칙칙하게 표현되는 조명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뷰티사진으로 가치가 없게 됩니다.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 화장품광고 모델이라는 것은 그만큼 아름답게 촬영되는 것이 뷰티사진이어서 일겁니다. 뷰티사진이야 말로 가장 빛의 성질을 다양하게 구현해 내고 섬세하게 표현해 내야 하는 전문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눈망울에는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보석들이 반짝이길 바랄 겁니다. 뷰티전문샵에 붙여진 광고포스터들을 한번 잘 보세요. 바로 그런 광고주의 바램들이 들어가 있고 여러분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고 있는 겁니다.
많은 광고사진 지망생들이 유명사진작가의 조수로 일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빛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죠. 저의 경우는 사진학과 재학 중에 방학 때마다 유명한 선배작가들 밑에서 실습을 할 수 있었고 졸업 후에도 3년 간 조수 생활을 하였습니다. 특히 광고사진계에서는 스튜디오 조명을 습득하는 것이 최고의 비법을 알아내는 것과 같죠. 마치 강호의 무술비법책이랄까.
대학 때 조세현 사진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실습을 했었습니다. 최고의 패션사진가이자 인물사진으로 가장 유명한 조세현 선생님이 촬영한 배우 심은하, 고현정의 흑백 포트레이트는 지금도 회자되는 가장 아름다운 포트레이트로 기억이 됩니다. 조세현 선생님의 포트레이트 조명은 가장 인물을 그림자 없이 찍어내지만 깊이가 있는 배경과 톤은 여자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조명기법입니다. 조수생활을 하면서 저의 것으로 만들려고 퇴근 후 많이 연습도 하고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비법은 인물의 머리 위로 조사되는 180cm 소프트박스(부드러운 빛을 구현)와 5000원짜리 은박 돗자리였습니다. 반사판으로 사용하는 커다란 은박 돗자리는 얼굴에 못난 잡티와 그림자를 없애주며 피부를 뽀얗게 만들어 내죠. 이 조명 밑에서 헤어 드라이기로 긴 생머리에 바람을 살살살 날려보세요. 이 기법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돗자리라니요. 요즘도 일반인들이 이거 돗자리 아닌가요라고 물으면 이거 은나노 돗자리입니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합니다.
사진에서 가장 어려운 건 다름 아닌 흰 배경에서 인물을 멋지게 찍는 겁니다. 흰 배경을 희게 조명을 해서 인물도 정확히 기록이 되려면 많은 테스트와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배경에 비추는 조명이 너무 강하면 인물이 뿌옇게 될 수도 있고 인물로 조사되는 빛과 배경의 적당한 노출차가 비밀입니다. 저는 요즘처럼 빛을 조절하는 것이 재밌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빛과 함께 놀이를 하듯이 즐길 수 있어진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20년 가량, 프로페셔널로 광고와 화보작업을 한지는 10년 되었는데 이제 빛에 대해 통찰하고 있는가 봅니다. 어찌보면 놓쳤던 일상의 사물들을 관찰하는 것처럼 빛도 함께 관찰하게 됩니다.
몇주 전입니다. 아침 6시 반에 기상을 했습니다. 동향인 집 창가로 아침 해가 들어왔습니다. 벽의 콘센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콘센트를 빛이 감싸며 그림자를 빚어내었습니다. 빛은 그림자를 아우르고 평범한 전기 콘센트는 오브제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을 기록했습니다. 그저 평범한 콘센트와 빛과 그림자 그리고 빈 공간이 어울리며 하나의 디자인이 되었습니다.
다른 방을 보았습니다. 배우 박시연과 화보 작업했던 사진액자가 벽에 놓여있었습니다. 빛은 놀랍습니다. 그 액자에 빛과 그림자가 서로 감싸 안았습니다. 평범하던 액자사진에 빛이 침범한 순간, 특별한 명암으로 감동을 주었습니다. 기존의 평면적인 사진이미지에 힘과 함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담는 듯 했습니다.
이 당연하지만 특별한 경험은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 컷씩 촬영해 두었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지인들에게 항상 이야기 합니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사물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새롭고 아름답다. 푸른 느낌의 새벽풍경이든 이제 막 깨어나는 기지개켜는 태양이든지… 그런 느낌을 사진으로 담아보라고…
저에게는 직업병이 있습니다. 조명발 민감증후군. 카페를 갈 때도 조명이 예쁜 곳만 찾아다니고 앉는 자리도 조명이 좋은 곳에 앉으려고 하는 거죠. 특히 상대방보다는 제가 그 좋은 조명 하에 앉으려고 합니다. 물론 동물적으로 움직입니다. 특히 피하는 곳은 할로겐 조명이 코 위로 떨어져서 눈 밑에 그림자가 생기고 누구나 적나라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버리는 자리, 가장 좋은 곳은 조명이 직접 닿지 않는 곳입니다. 특히 테이블이 흰색이면 얼굴에 반사판 작용을 하므로 눈은 블링블링 반짝거려지고 눈 밑의 다크서클은 가려지며 입술은 촉촉하게 보이며 얼굴은 뷰티사진처럼 예뻐지게 됩니다. 할로겐이 너무 직접 내리쬐어 싫다면 방향이 조절되는 할로겐 등은 방향을 벽으로 반사시켜 부드럽게 만든다든지 냅킨으로 그 할로겐 등을 가려서 부드럽게 만든다든지 하는 것. 일본의 별난 발명품들이 황당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만 이런 건 어떨까요? 반사판을 항시 얼굴에 조사될 수 있도록 가슴 쪽에 휴대용으로 거치할 수 있도록 . 항상 뷰티사진처럼… 재미있지 않나요?
이것이 조명발 민감증후군. 물론 제가 만든 단어입니다만. 이런 생활 속의 공부 덕에 집 인테리어를 할 때 제가 조명설치 정도는 계획을 세워서 조명상가에서 조명을 구입하고 전기기사에게 맡길 수 있게 되었죠. 단편영화인 잃어버린 향기d단조는 제가 각본, 감독, 촬영까지 도맡아 하였던 첫 영화작업이었습니다. 잠깐의 영화유학 중에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조명장비는 기본 적인 것뿐이었습니다. 사진작가인 저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맨해튼의 조명가게를 갔죠. 전구색의 형광등과 소켓, 그리고 커다란 차이니즈 랜턴(연등)을 두 개 구입했습니다. 이 때 들었던 비용이 100달러, 클로즈업 씬이 많았던 제 영화에 이런 조명을 이용하여 분위기 있는 색감과 극적인 느낌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함께 스탭으로 참가했던 친구들이 놀라더군요. 이렇게 조명을 만들어서 할 줄은 몰랐다고. 속마음은 '그래! 이래봬도 난 대한민국에서 온 광고사진작가 이진수야!' 라고 외쳤습니다. 제가 만든 영화도 영상만큼은 헐리웃이다라는 과장된 칭찬을 받은 것도 유난스러운 조명발 민감증후군 덕이었습니다.
전에 어느 치킨 집을 갔더니 바로 위의 조명이 파란색 조명이었습니다. 나름대로 분위기를 멋지게 내려고 했지만 주문 후 나온 치킨은 과연 맛있게 보였을까요? 일반적으로 주황색의 노란색 계열은 식욕을 자극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라면 포장지 들이 대부분 주황색이나 빨간 색인 이유도 바로 그것이죠. 따뜻한 조명아래에서 음식도 맛있게 보입니다. 컬러테라피처럼 색으로 감정을 조절하고 치유하듯이 빛이 주는 느낌에 따라 우리의 감각과 감정은 우리도 모르게 반응합니다. 햄버거 광고를 보세요. 따뜻한 느낌의 색조입니다. 파란색 조명 아래의 치킨이라니, 치킨 집 사장에게 그날 조언을 못해준 것이 후회되네요.
요즈음 한강다리들 보셨죠? 많이 아름답습니다. 누가 대한민국의 서울이 볼거리가 없다고 말하나요. 바로 조명의 힘입니다. 빛을 이해하고 조명을 조절하는 센스와 노력만 조금만 더 한다면 일상생활은 더욱 즐거워 질 수 있습니다. 할로겐 스폿조명이 들어가지 않은 미술작품보다는 조명이 들어가는 것이 그 가치를 더욱 높이듯이 작은 감각이 우리 생활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작가의 빛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높이 솟은 정오의 12시의 태양에서 인물을 찍으면 눈부심에 눈도 작아지고 아름답지 못하듯이 적당하게 낮게 변화하는 빛이 가장 아름다운 것처럼 뭐든지 높게만 올라가는 것이 행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소소하게 아침 창가의 빛에 오늘도 행복을 느끼고 아름답게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관찰. 행복. 여유. 그것이 예술이죠. 그것이 어찌 보면 가장 빛나는 것일 겁니다.
오늘 주변의 아름다운 사물들을 관찰해 보는 건 어떨까요? 왜 저건 아름답게 보이지? 빛이 만들어 내는 예술은 우리 생활 안에 있습니다. 어떤 조명이든지 흰 벽으로 방향을 돌려 놓아보세요. 사물을 바라보세요! 그 결과는 여러분들에게 과제로 남겨둘게요. 빛을 숭배할 만 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