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들의 ‘배꼽인사’ 새롭게 보기

입력 2012-11-09 16:57
수정 2012-11-23 15:11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 그리고 문화] 4편. 영아들의 ‘배꼽인사’ 새롭게 보기



햇살이 감도는 가을 날의 놀이터에는 와글와글 기분 좋은 아이들의 소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귀를 간지럽힌다. 여유가 된다면,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놀이터 벤치에 앉아 정말 열심히 놀이하고 있는 아이들이 내뿜는 에너지를 느끼며 리프레쉬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놀이기구를 오르고 내리고 또 오르고 내리고 하는 일들을 어쩜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아마 감탄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정말 운이 좋아 아장아장 걷는 세 살 된 어린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관찰해 보길 바란다. 배꼽인사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제 걷기 시작한 아이가 허리를 굽혀 허공이나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해 기우뚱거리는 몸의 균형을 잡아가면서 조심스레 인사하는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엽다. 태연한 표정과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태도로 일관한 아이의 자세는 바라보던 어른들은 ‘와~ 아가들은 역시 너무 귀여워~’하는 생각과 함께 텔레비전의 개그 프로그램을 본 것처럼 너무 재미있다.



▷ 웃음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장면을 목격하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우리를 웃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웃음의 저변에는 인사라는 것은 최소한 누구를 향해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린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아이에게 배꼽인사를 알려주었을 때 부모는 사회적인 양식으로서 누군 가를 만나면 인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격려와 칭찬 아래 부모의 의도를 너무나 잘 수용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밀려오는 뿌듯함. 부모로서 너무나 당연한 감정의 흐름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의도와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아이의 입장에 차이가 있음을 우린 ‘다른 곳 보고 배꼽인사’하는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다. 아이가 한 행동은 인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아이가 엄마에게 배운 것은 ‘배꼽인사 해야지’ 라고 엄마가 말하면 허리를 크게 굽히는 것이다.



▷ 아이에게 세상을 안내하는 ‘어른’으로 살기



결국 아이들이 이해하는 배꼽인사는 허리를 굽히는 것인데 우린 아이들에게 왜 지금까지 배꼽인사를 알려줬던 것일까? 이 질문을 주변의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에게 물었을 때 대답은 당연히 해야 하는 육아 지침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 누군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시켜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아이들이 이 행동을 해내는 것을 보면서 ‘아 우리 애가 이걸 할 수 있을 만큼 자랐구나’라고 성장의 증거로 여겼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걸 너무나 열심히 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귀엽고 사랑스럽고 뿌듯한 마음까지 드니 자꾸 시키게 된다고 말하였다. 그 외에도 시댁과의 관계가 좋아졌고 아이를 통해 주변과의 관계가 좋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인사를 했을 때 낯선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고 분위기도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내용을 좀 정리해 보면, 배꼽인사는 실제 아이에게 예절을 위해서 부모가 알려준다는 것보다 부모 자신이 우리 아이의 성장 발육의 척도, 주변과의 관계를 위해 보여주기 위해 시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만남과 관계의 시작으로서의 인사



인사라는 행위는 어린이 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한국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문화권 안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관계를 맺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먹거나 자는 행동과 달리 아이가 살아가면서 익혀야 하는 사회적인 지식에 속한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사’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이럴 땐 이렇게 인사하면 되겠다’와 같이 나름의 노하우를 갖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배꼽인사라는 행위를 학습하기 이전에 어린 영아들에게는 인사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만남을 갖는 지에 대한 감정적인 경험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기록하러 나가는 어린이집의 아침, 네 살 태용이가 웃으며 나를 개구지게 바라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곤 한쪽으론 친구들에게 뭐라 뭐라 말한다. 친구에게 내가 왔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개구진 웃음의 보답으로 약간 과장되게 걸어가며 내가 가서 너를 안아줄거야 하듯 팔을 벌려 보인다. 아이는 꺄르르 웃는다. 가까워 질수록 웃음 소리는 커진다. 난 가까이 다가가 무릎으로 앉아 옆에 있던 지은이까지 안아본다. 다른 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나도 안아 달라 오골오골 모여든다. 한 살 많은 다섯 살 은진이는 ‘김희정 선생님 왔어요?’쉬크하게 말하더니 어깨에 쪽 뽀뽀를 하고는 다시 가서 놀이를 시작한다. 다시 만나서 참 반가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