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반기 유럽위기 이외에 대내외 증시에 미칠 수 있는 10대 변수
유럽위기가 2년 반이 지나면서 주식투자자를 비롯한 시장참여자들의 경제 및 증시현안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변화가 감지된다. 그 중의 하나가 유럽위기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늘 곁에 있는 일상변수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유럽통합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단기적으로 유럽 금융사들이 겪고 있는 자본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충분한 자본 확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경제여건이 좋은 한국과 같은 국가에 투자한 자산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글로벌 위기로 전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럽통합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보완하는 것도 시급하다. 유로본드로 상징되는 재정통합에 합의하는 일이다. 관건은 ‘최종 책임(last resort)’을 맡아야 해야 할 독일이 어떤 입장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으나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들어 다소 전향적 입장을 보이는 점이 한 가닥 희망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회원국 조정도 불가피하다. 바이너(J. Viner) 이론 등에 따르면 경제통합에 따른 무역창출효과가 무역전환효과보다 커 역내국 뿐만 아니라 역외국에게 동시에 이득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발전단계가 비슷한 국가까지 통합해야 한다. 유로 랜드 회원국 간 경제력 격차는 초기보다 더 벌어진 상태다.
유럽위기를 풀어가는 기조도 공고히 해야 한다. 그동안 ‘긴축’이냐 ‘성장’이냐를 놓고 갈등을 빚어 왔지만 이제는 ‘후자’ 쪽으로 가닥을 잡혀있다. 단순히 유동성 불일치(mismatch)로 외환위기를 겪었던 한국과 달리 지급능력에 문제가 있는 유럽위기를 풀어가는 데에는 뒤늦게나마 성장협약에 합의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규모를 늘리는 일은 남아있다.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다. 종전과 다른 것은 이런 과제 해결에 회원국들이 ‘갈등’보다는 가능한 ‘타결’ 쪽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쉽지 않아 보이지만 독일의 입장이 바뀌어 유로본드 발행을 통해 재정통합이 보완된다면 세계경제나 글로벌 증시에는 의외로 큰 호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상황은 재정통합에 난항을 보이면서 그리스 등 경제여건이 나쁜 회원국(bad apples)들의 탈퇴가 잇따를 경우 대공황과 비슷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현재로서는 네 가지 과제에 대해 시간을 갖고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에서 세계경기는 ‘진흙탕 속(muddling through)’을 헤매고 글로벌 증시는 ‘숙취 현상(hangover)’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도 지금 상황에서 크게 나아질 가능성은 적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시장참여자들은 점차 유럽위기를 항상 곁에 있는 변수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증시함수 형태로 의미를 재해석하면 'y=a+bx(y는 주가, a는 상수항, b는 기울기, x는 주가에 미칠 수 있는 변수)’에서 상수항 ‘a'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장참여자들의 이 같은 성향을 ‘하이먼 민스키 모델’과 같은 위기론에 적용한다면 앞으로는 유럽위기와 관련된 커다란 변수가 나타나지 않는 한 경기나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갈수록 작아진다는 의미다. 시장참여자들이 지난 2년 동안 보여준 유럽위기에 대한 지나친 쏠림 현상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다른 현안들도 생각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장 글로벌 공조방안이 부각되고 있다. 시금석은 때맞춰 올 6월에 멕시코에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마련된 '로스카보스 선언문‘의 실현 여부다. 이번에도 말만 있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나토(No Action Talk Only)'에 그친다면 세계경기는 복합불황보다 더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미국의 재정정벽도 중대한 현안이다. 올해말로 예정된 연방부채한도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규모 재정삭감은 불기피하다. 미국경제가 이 상황을 맞을 경우 ‘더블 딥’에 대한 우려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8월 이후 사태가 뒷받침해 준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다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이나, 공화당 후보로 교체된다면 재정절벽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의 엔고 디플레이션도 우려된다. 경제변수는 관리가능 여부에 따라 ‘통제변수(control variable)’와 '행태변수(behavior variable)'로 나뉜다. 유럽위기 이후 엔화 강세는 행태변수다. 일본경제 여건과 관계없이 유럽위기 상황이 악화되면 엔화 강세가 재현됐다. 이 때문에 노다 정부가 출범 이후 주력해온 엔고 저지책이 무력화됐다. 최후 부양책으로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패할 경우 노다 총리는 조기에 하야될 운명이 놓여 있다.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도 특히 우리 입장에서 주목해야 할 변수다. 올 2분기 성장률이 7%대 초반으로 떨어질 우려가 제기되자 금리인하 등을 통해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위안화 국제화 과제 차원의 조치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으나 경기부양책의 성격이 짙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예상보다 빨리 극복해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중국경제의 역할이 컸었다. 경착륙된다면 '최후 보루(last resort)'까지 깨진다면 상실감까지 겹쳐 의외로 충격이 클 수 있다는 의미다.
신흥국의 대규모 자본이탈 여부도 언제든지 세계경제와 우리 경제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잇따른 위기로 신흥국의 경제위상이 높아진데다 외국자금 유입으로 일부 자산에 거품이 끼었다. 올 4월 중순 이후 유럽계 자금 대거 이탈로 한국 등 신흥국 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신흥국에서 자본이탈을 방지하는 과제는 종전과 다른 각도에서 다뤄질 문제다.
1999년 이후 무려 20년 이상 지속돼온 국제원자재 가격의 슈퍼 사이클 국면이 마무리되는 경우도 주목해야 한다. 원자재 가격이 떨어진다면 물가안정 등을 통해 세계경제에 도움될 수 있다. 하지만 슈퍼 사이클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는 과정에서 세계 국민들의 부(富)가 너무 편중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역자산 효과로 세계경제와 글로벌 증시에 미칠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제기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미국 국채에 낀 거품이 붕괴될 우려도 언제든지 복병이 될 수 있다. 국제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안전자산이 제함됨에 따라 미국 국채로의 쏠림현상이 심하다.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사상최저치인 1%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그만큼 국채가격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미국 국채거품이 꺼진다면 가장 우려되는 것은 국제간 자금흐름을 흐트러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각국이 자국통화 평가절하에 뛰어드는 경우도 최악이 될 수 있다. 평가절하는 대표적인 ‘근린궁핍화 정책’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각국 간 협조가 긴요한 상황에서 경쟁적인 평가절하와 같은 극단적인 경제이기주의로 나아간다면 세계경제가 글로벌 증시는 각각 복합불황, 제2 리먼 사태를 넘어 대공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어려울 때일수록 중심국들이 ‘마샬 플랜’과 같은 공생적 부양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경제나 우리 경제 입장에서 악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위기 속에서도 호재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그린 슛(green shoot)’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올 하반기 들어 부실기업이 주로 거래되는 세컨더리 M&A(인수?합병)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실기업이 정리가 된다는 것은 경제와 금융시스템이 깨끗(clean)해진다는 의미다.
미국,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부동산 시장이 꿈틀거리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체리 피킹(cheery picking?가격 하락폭이 큰 것을 겨냥한 투자)’과 ‘풍선 효과(balloon effect?풀린 돈이 정책당국 의도대로 실물경기와 증시에 들어가지 못하고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는 현상)’ 성격이 짙다.
하지만 ‘부(富)의 효과’가 부동산 가격이 주가보다 약 2배나 큰 점을 감안하면 최근 회복조짐이 추세적으로 이어진다면 세계경기와 글로벌 증시에는 대형호재가 될 수 있다. 유럽위기 여전히 큰 변수이긴 하지만 이제는 다른 현안, 즉 증시함수 y=a+bx에서 ‘x'가 될 수 있는 변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