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타깃팅’과 ‘공급중시 경제학’ 간의 논쟁

입력 2012-07-09 09:44
수정 2012-07-09 09:45
◈ ‘인플레타깃팅’과 ‘공급중시 경제학’ 간의 논쟁…현 시점에서 왜 불거지나?



최근 들어 세계경제의 혈액인 돈이 다시 안돈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이 때문에 실제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각종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은 경제하고자 하는 의욕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한 나라 경제에 있어서 돈이 돌지 않으면 사람의 몸처럼 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손발부터 썩어 가는 증상이 나타난다. 세계적인 예측기관들은 이같은 요인을 반영해 올 하반기 이후 세계경제 3% 내외 선까지 하향 수정했다. 국내 예측기관들이 바라보는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2%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왔다.



이론적으로 특정 국가에서 돈이 얼마나 잘 도는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가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다. 통화유통 속도란 일정기간 동안 한 단위의 통화가 거래를 위해 사용된 횟수를 말한다. 통화유통 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돈이 잘 유통되지 않아 그 나라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 나라의 돈 흐름이 얼마나 정체돼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가 통화 승수다. 통화 승수는 돈의 총량을 의미하는 통화량을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 통화(고성능 화폐·high-powered money)로 나눈 수치다. 통화 승수는 그 나라 국민들의 현금보유 성향과 중앙은행이 부과하는 예금은행의 지급준비율 등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은행 등이 집계한 우리 경제의 활력지표를 보면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각종 위기론이 거세게 불었던 2009년 3월보다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22.39배였던 통화승수는 올 4월에는 22.04배로 떨어졌다. 통화유통속도도 올 1분기에는 0.7206으로 1년전 0.7269보다 둔화됐다.



정도차가 있지만 통화승수, 통화유통속도로 상징되는 경제활력이 떨어지는 현상은 우리 뿐만 아니라 대부분 국가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통화승수가 떨어지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유동성을 더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인플레 타깃팅’의 상한선을 올려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미국도 떨어지는 경제활력을 보완하기 위해 통화량을 더 푸는 문제를 놓고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밴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간의 논쟁이 일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경제활력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현재 2%인 인플레 타깃팅을 3∼4%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버냉키 의장은 크루그먼 교수의 이런 주장을 ’무모하다‘고 반박한다.



‘인플레 타깃팅’이란 중앙은행이 전통적인 목표인 물가를 관리하기 위해 설정한 억제선, 엄격히 따진다면 상한선을 말한다. 이론적으로 피셔의 화폐수량설(MV=PY, M은 통화, V는 유통속도, P는 물가, Y는 국민소득)을 시간으로 미분하면 증가율로 전환되고 인플레이션으로 재편성해 구한다.¹







이 선이 너무 낮게 설정하면 떨어지는 경제활력을 보완하지 못하고 물가안정만을, 높게 설정하면 떨어지는 경제활력을 보완하면서 성장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플레 타깃팅’ 상한선을 높게 잡으면 그만큼 유동성을 더 풀 수 있는 통화정책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종전의 경우 경제활력이 떨어지는 디플레 타개책과 만성적인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기 ‘인플레 타깃팅’ 제도가 대안으로 급부상하지만 도입되는 경우는 극히 적었다. 이번에도 미국경제 상황에 따라 두 학자간의 논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이나 Fed 차원에서 ‘인플레 타깃팅’ 상한선을 올려 잡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최근처럼 경제활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인플레 타깃팅’과 같은 수요증대 정책보다는 '레이거노믹스'와 같은 공급중시정책(supply side economics)을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가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미국처럼 경기회복이 완전치 못하고 4년 전에 풀린 유동성으로 인플레 기대심리가 높은 국가일수록 공급중시 정책을 선호한다.



레이거노믹스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은 래퍼(A.B. Laffer)이다. 레이거노믹스의 본질은 정부가 미리 짜여진 수요에 맞춰 경기를 부양하는 총수요 증대정책과 달리 경제주체들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게 갖고 잃어버린 활력을 어떻게 높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인플레 타깃팅’ 논쟁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에서는 떨어지는 경제활력을 보완하기 위해 ‘레이거노믹스’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은 고용지표에 대한 해석 때문이다. 미국의 고용사정을 보면 지난해 성장률은 1.7%에 그쳤으나 실업률은 9.4%에서 8.5%로 크게 떨어졌고, 올 1분기에도 1.5% 내외의 성장에 그치나 실업률은 8.2%로 떨어졌다.



고용지표가 개선되는 것이 추세적이라면 그동안 경기회복세도 불구하고 부진한 고용사정을 근거로 경기부양책을 주장했던 버냉키 Fed 의장과 인플레 타깃팅을 주장하는 크루그먼 교수를 동시에 곤혹스럽게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일시적‘이라면 경기부양기조를 계속 유지하면서 잠복된 인플레 압력인 인플레 기대심리를 낮추기 위해서는 ’인플레 타깃팅‘보다는 ’레이거노믹스‘가 더 적절한 정책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는 인플레 타킷팅과 같은 총수요 증대정책과 레이거노믹스의 복합처방이 필요하다. 요즘 들어 국제금융시장에서 세계 각국이 모색하고 있는 경기부양책에 대한 효과가 종전만 못하고 글로벌 증시 앞날에 대한 시각이 밝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경제가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종전과 다른 획기적인 정책변화가 필요한 때다.



우리 경제도 돈이 안돌면서 자연스럽게 위기론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거론되는 위기론은 크게 보면 세 가지다. 하나는 우리 국민들이 미래에 먹고 살 ‘성장대안 부재론’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일본 등 선진국은 견제하고 중국 등 후발국은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는 ‘샌드위치 위기론’이 나온 지도 오래됐다. 최근에는 경제활력이 떨어지면서 증시를 중심으로 부는 ‘역핀볼 효과형 위기론‘이다.



핀볼 효과란 제임스 버크의 명저의 이름으로 사소한 사건이나 물건 하나가 도미노처럼 연결되고 점점 증폭되면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어 내는 현상을 뜻한다. 이 용어를 증시에 적용한다면 각각의 볼링 핀에 해당하는 주가결정요인인 경제성장과 유동성, 기업실적, 투자자 심리 등이 우호적으로 예상돼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역핀볼 효과’란 ‘핀볼 효과’의 정반대 상황이다. 경제활력이 떨어짐에 따라 시중에 풀린 돈과 실물경제는 걷도는 가운데 갈수록 성장률과 기업실적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의 심리는 위축되면서 주식거래량도 급격히 감소한다. 최근 우리 경제와 증시상황을 보면 이런 현상이 나타나 위기론이 부는 배경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유럽위기가 재정통합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회원국 간의 의견접근이 없을 때에는 한국 증시에 부는 위기론이 쉽게 누그러지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설령 상황이급반전돼 주가가 올라간다 하더라도 최근처럼 돈이 안돌고 위기론이 나돌 때에는 상하 변동폭이 크고 기업 혹은 업종 간 차별화가 심하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에 돈이 돌아 생기를 되찾고 위기론이 불식돼야 한다. 우리가 통제하는데 한계가 있는 유럽위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최근과 같은 상황이 현 정부와 정책수용층 간의 신뢰위기에서 비롯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가장 시급한 과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