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최근 철강업계들이 글로벌 경기침체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철강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요인은 이것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로 저가, 부적격, 원산지 미표시 철강제품의 무분별한 수입/유통이 그것인데요. 자세한 내용 취재기자와 함께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박현각 기자, 먼저 최근 철강업계 현황을 좀 점검해 보죠.
<기자> 현재 글로벌 경기 침체가 가중되면서 철강업계가 어렵다는 건 많이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경우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에 비해 반 토막이 났고, 동국제강과 동부제철은 각각 190억 원, 207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하반기 전망 역시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철강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말을 들어보시죠.
<인터뷰> 정준양 포스코 회장
“하반기에 상저하고가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현재로서는 그리스 사태를 포함한 유로존의 위기극복, 우리한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중국의 경제와 철강산업의 향후 추이에 따라 하반기 철강업계의 상황이 여러가지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봅니다.”
업황이 나빠진 가장 큰 이유는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를 들 수 있습니다.
수요사인 조선업, 건설사들의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수주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 것이죠.
여기에다 저가의 수입산 철강제품들이 무분별하게 유통되면서 철강업체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철강 애널리스트의 설명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박현욱 HMC투자증권 연구원
“수요가들이 철강업체에 가격 인하를 해달라고 압박.. 수입산들이 저가로 유입되고 있으니, 국내 철강업체들에게 내수가격을 인하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거죠.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출이 많이 되고 있는데, 내수가격과 수출가격을 비교해보면 한국 시장에 덤핑판매를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국내 철강업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고요.”
<앵커> 그렇다면 수입산 철강 제품들이 얼마나 많이, 어떤 형태로 유통되고 있는지요?
<기자> 2011년을 기준으로 H형강 판매량 중 수입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인 79만 톤으로, 이를 수입국별로 보면 중국산이 64만 톤인 81%, 일본산이 15만 톤인 19%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국내산과 비교했을 때 톤당 5만 원에서 많게는 10만 원 정도 저렴합니다.
당연히 국내산이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제품들 중 상당수는 KS표준규격에 부합하지 않거나 원산지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인천항만에 나가서 수입산과 국내산 H형강 제품을 비교해 봤습니다.
<스탠딩> 뒤에 보이는 제품이 수입산 저가 H 형강입니다. 원산지와 강종, 표준규격을 알 수 있는 스티커가 전혀 붙어 있지 않습니다. 이 제품은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쉽게 떼어질 수 있어 유통과정에서 어느 나라 제품인지, 어떤 규격을 따르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국내 제품 보시겠습니다. 원산지와 강종, 표준규격을 알 수 있는 스티커가 각각 붙어 있습니다. 이 형강이 내수용이라면 KS 인증 마크가 붙어 있겠지만, 수출용이기 때문에 해당국가에서 원하는 규격인 ASTM을 따르고 있음을 이 스티커를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앵커>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한 물량이 수입/유통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러한 저가의 부적합, 원산지 미표시 제품이 유통되면 어떤 문제들이 야기되는 지요?
<기자> 우선 용어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부적합 제품은 KS표준규격이 아니거나 KS에서 정한 품질기준에 미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산지 미표시 제품은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았거나 고의로 표시를 훼손한 경우, 그리고 단순 가공활동을 거친 뒤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은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수입산 철강제품이라고 해서 전부 ‘부적합, 원산지 미표시 제품’인 것은 아닙니다.
현재 수입되고 있는 철강제품은 KS규격이 아닌 일본규격 JIS나 여타의 규격에 맞춰져 있는데요,
이 경우에도 KS기준에 준하는 품질 검사를 마쳤다면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제품이 문제가 됩니다.
현행 건설기술관리법상, KS인증표시 이외의 제품은 규격당, 제조회사별 매 100톤마다 품질검사전문기관의 시험 결과를 국토해양부 지정 정보처리장치에 입력하도록 돼 있는데, 지난해의 경우 전체 수입량의 21%만이 이 규정을 지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나머지 79%는 KS규격이 아니거나 이에 준하는 품질검사를 받지 않은 채 유통된 것입니다.
또, H형강의 경우 절단과 도색의 공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원산지나 표준규격 표시 스티커를 제거해 국산으로 감쪽같이 둔갑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결국 소비자가 품질보증이 되지 않은 제품을 국내산인 줄 알고 비싼 값에 구입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 관세청 관계자
“(스티커가)안 붙어 있는 경우도 있고 국내에 가져와서 가공과정에서 원산지 표시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그냥 유통하다 보니 다음 단계의 물품구매자는 원산지 표시를 확인할 수가 없는 거죠.
(국내산이라고 속여도 확인할 방법이 없어지는 거죠?) 확인할 방법이 없죠. 표시가 없어졌으니까.”
<인터뷰> 인천항 관계자 (음성변조/모자이크)
“수입산 H형강이 유통업체로 들어가면 스티커를 떼는 거죠.. 국내산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화면설명> H형강을 가공해서 유통하는 한 중소업체를 휴대폰으로 촬영했는데요. 보시는 바와 같이 원산지 표시 스티커가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않습니다. 절단 작업을 하더라도 원산지와 규격이 적힌 스티커를 다시 붙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비자에게는 그 어떤 정보도 전달되지 않는 것이죠.
또 한 가지 문제는 일종의 ‘덤핑’을 통해서 들어오는 철강 제품입니다.
특히 중국은 H형강을 수출할 때 ‘보론’이라는 물질을 첨가 가공하면 일반강이 아닌 ‘합금강’으로 분류하고 있는데요.
이 경우 증치세의 9%를 환급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내수용 일반강보다 30달러 저렴한 값에 수출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저렴한 철강제품이 국내에 들어오다 보니 국내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것은 물론 수입산이 국내산으로 둔갑하는 사례마저 있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부적합, 원산지 미표시 제품에 대한 단속 등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나요?
<기자> 철강업계는 지난 2009년부터 자체적인 현황파악과 조사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철강협회는 이달 초 ‘부적합 철강재 신고센터’를 확대 개편해 출범시켰습니다.
<인터뷰> 도애정 철강협회 조사분석팀장
“2010년에는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췄고, 올해는 저희가 품목확대를 하는 등 유통신고센터를 확대 오픈하기로 해 6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신고대상은 과거의 봉, 형강류에 한정이 돼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판재료 품목까지 확대를 했고요. 원산지 위반사례, 밀 시트 오용사례, 스테인리스 200계 오용사례까지 대상을 확대했습니다."
정부가 본격적인 단속에 나선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철강업계 관계자들이 정부에 문제의 심각성을 건의하고 나서자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강력한 단속의지를 내비쳤습니다.
또, 관세청에서는 원산지 표시 위반 업체들을 단속해 적발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관세청 관계자
“지경부, 철강협회와 4월에 합동단속을 했었는데, 그 뒤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서 2개 업체를 적발했고, 그 다음에 철강제품을 비롯한 중간재 분야 전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5월에도 단속을 해서 기타 제품까지도 적발한 사례가 있어요. 관세청 차원에서도 중간재 철강재 중 저렴한 제품들이 고가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서 그쪽에 포커스를 맞춰 단속을 진행중입니다.”
<인터뷰> 기술표준원 관계자
“산업표준화법에 따라서 KS제품이 아닌데 KS제품이라고 스티커를 붙이면, 허위표시가 되는거죠. KS 사항에 대한 위반을 했기 때문에, 표시사항은 저희가 개선 명령을 내리는 거고요, 이행을 하지 않고 못하겠다고 하면 KS인증을 취소시키는 거죠. ”
<앵커> 단속이나 계도 활동이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부적합, 원산지 미표시 제품이 계속 수입 유통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기자> 일단은 수요가 있기 때문이겠죠.
아무래도 가격이 저렴한 철강을 사용하게 되면 원가 절감을 할 수 있으니 수입산을 찾는 소비자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저가시행 공사의 예산을 맞추기 위해 발주처에서 수입품의 사용을 용인하고 있는 셈인 것이죠.
또,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중간 유통업자가 원산지를 속여 폭리를 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가 철강재를 들여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제도상의 허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허술한 발주구조가 문제입니다.
<인터뷰> 철강업계 관계자 (음성변조)
“수입산을 쓰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발주를 할 때 발주자가 제품, 물량, 강종을 어떤 걸로 해야 한다 까지만 돼 있고, 국산인지 수입산인지는 명기를 안 하고 발주를 한다는 거죠.“
또, 관계 당국의 인식이나 단속의지가 아직은 부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관세청의 경우 원산지 표시에 대한 단속을 하고는 있지만, 통관 시 전수조사는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따라 통관 뒤 가공 유통업체들이 원산지 표시를 속이는 경우에 대해서는 사실상 단속이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건설 관련법에도 맹점이 있습니다.
건설기술관리법은 건설공사에 있어 품질시험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정해놨지만, 건축법 건축공사 감리세부기준을 보면 중소형 공사의 경우 건축주의 요구가 있을 경우에만 감리를 수행하도록 돼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작은 규모의 건설 현장에는 KS규격과 강재 등에 대한 감리가 의무화돼 있지 않아 부적합하거나 원산지가 표시되지 않은 철강이 투입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관계 당국은 별 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국토해양부 관계자 (음성변조)
“저희는 들어오기 전에, 수급하기 전에 자재 자체 품질을 현장에서 감리 확인하기 때문에 제품품질인증서가 없으면.. 시험을 하고 반입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정부가 ‘덤핑’이나 규격 문제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중국, 일본과의 통상 마찰 우려입니다.
중국과는 과거 농산품과 관련한 통상마찰 트라우마가 있는데다 일본은 KS규격을 무역장벽이라며 JIS 규격을 허용하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앵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이 같은 부적격 철강 제품의 수입 유통을 근절하는 근본적인 대책, 해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기자> 부적합 제품을 가공 유통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중소규모가 많습니다.
이들이 고의로 원산지를 훼손하거나 품질 검사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잘 몰라서 또는 인식이 부족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따라서 꾸준한 계도를 통한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발주자 역시 원산지와 강종, 규격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철강 주문을 넣고, 꼼꼼한 감리를 시행한다면 부적합 제품이 섞여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제도적인 보완과 정부의 강력한 의지라 할 수 있습니다.
국토해양부와 지식경제부는 표본 단속을 해봤지만 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취재과정에서 법망의 사각지대에서는 부적합, 원산지 미표시 철강제품이 유통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부적합 철강 제품이 주로 중소형 건설현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만큼 현재처럼 소수의 업체만을 선정해서 단속하는 방식으로는 적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감리 의무시행 범위를 확대하고, KS 이외의 제품에 대해서 성능시험을 거치기 이전에는 철구사의 가공작업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하는 등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