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공황, 이기주의...그 소름끼치는 데자뷔

입력 2012-06-05 17:33
수정 2012-06-05 17:33
4일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매주 월요일 아침 열리는 간부회의에서 현재 유럽의 상황을 1929년 미국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29년 예금 인출자를 진압하는 뉴욕경찰<左> 긴축정책에 반대해 의회에서 경찰과 대치한 그리스 시위대<右>)



김 위원장이 언급한 '1929년 대공황'은 하지만 18~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빈번하게 발생했던 공황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했다. 1907년 대공황으로 주식시장의 투매, 뱅크런이 발생했지만 중앙은행이 없었던 시절 미국 금융계의 거인인 존 피어폰트 모건(J.P.Morgan)이 거의 혼자 힘으로 공황을 막아냈다. 다만 1929년 대공황이 이전 공황과 다른 점은 그 규모와 파급효과가 전 지구적이었다는 점일 뿐이다. 신생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은 그만큼 불안한 시스템을 가진 '풋내기'였다. 규칙도 법도 지켜지지 않지만 방대한 국토와 자원, 해외에서 계속 유입되는 이민자들을 기반으로 조금씩 세계경제의 중심부에 다가서고 있었다. 21세기 중국의 현재는 당시 미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해가 지지 않았던 '대영제국'을 1위의 자리에서 끌어낸 결정적 계기는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미국이 군수기지 역할을 담당하면서 결국1918년 연합국이 승전했고 유럽의 헤게모니는 바로 이때 대서양을 건넜다. 패전국인 독일은 가혹한 응징을 당했다. 당시까지 패전국이 배상금을 물어내는 '유럽식 전통'에 따라 승전국들은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독일에 1,300억마르크라는 천문학적 배상금을 요구했다.



(베르사유 조약 수정을 위해 승전국을 설득한 슈트레제만 바이마르공화국 총리<左> 신재정협약을 추진한 독일 메르켈 총리<右>)



독일제국의 붕괴와 함께 1919년 태어난 '바이마르 공화국'은 그 짐을 고스란히 넘겨 받았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차지할 때까지 바이마르 공화국은 경제적으로 초인플레이션과 대량실업, 식량난으로 폭동과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천지의 혼란이 이어졌다. 미국을 제외한 승전국들도 전후복구를 위해 '보호무역'으로 일관했다. 1929년 미국 대공황을 연구한 수천 편의 논문은 발생원인에서도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미국의 무분별한 자유 방임주의, 개인의 탐욕을 교모하게 이용한 정치인과 금융권, 국가별 무한 이기주의까지 분석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1929년 대공황을 초래한 원인이 무엇이든 그 핵심키워드가 2012년에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해 탄생한 유럽연합(EU)에서 프랑스는 이미 독일에 비해 열위에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를 질투한 영국은 한발짝 물러나 시비만 걸고 있다. 독일은 또 한 번의 세계대전에서도 철저하게 패배했지만 '라인강의 기적'을 앞세워 '유럽합중국(United of Europe)'을 주도하고 있다. 독일의 최종 목적은 그리스나 스페인이 아니다. 유럽 전체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고 이를 기반으로 현재의 G2와 대결해 보겠다는 야심이 깔려있으리라. 마치 100여년 전 자신들에게 패배를 안긴 승전국들이 철저하게 신봉했던 '이기주의'를 기반한 전략인 셈이다.



김석동 위원장은 1929년 대공황을 언급하면서 자본주의 패러다임 변화를 읽어야 한다고 덧붙였다(사실 그는 이 점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을 것이다). 실물경제를 능가하는 금융자본주의의 탐욕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이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말을 들으면서 '독일', '공황', '이기주의'라는 데자뷔(Deja Vu)가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위원장의 그것보다 더 큰 패러다임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에도 독일과 공황, 이기주의는 인간이기에 반복될 수 밖에 없는 '단어'로 또 다시 역사에 기록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