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창 W] 캄보디아에 부는 금융 한류

입력 2012-03-28 17:29
<이기주 기자>



"이 곳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입니다.



과거 오랜 기간 군부독재 시절을 거쳤던 이곳에 다음달이면 자본주의 상징인 주식시장이 한국형 모델로 문을 엽니다. 그리고 국내 주요 은행들도 앞다퉈 이 곳에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금융산업은 어떻게 캄보디아에 관심을 갖게 된 걸까요?



캄보디아를 변화시키고 있는 금융 한류 열풍을 취재했습니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노로돔가.



서울과 비교하면 강남쯤 되는 이곳에 동양증권 캄보디아 법인이 있습니다.



아침 9시.



취재진이 동양증권 캄보디아 법인을 방문한 날은 공교롭게도 캄보디아 증시에 상장 예정인 프놈펜수도공사에 대한 수요예측 마지막날이었습니다.



한국과 달리 캄보디아는 기관뿐 아니라 개인들도 수요예측에 참여하게 되면서 주관사인 동양증권 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습니다.



7년 전 금융 불모지였던 이곳에 혈혈단신 진출해 시장을 일궈온 한경태 법인장은 지난 시간들이 기적같다고 말합니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물론 정부 공무원들까지 주식시장이 왜 필요하고 자본시장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모르다보니, 하나하나 가르쳐야만 했고 증시 개장까지 시간은 그렇게 7년이 흘렀습니다.



<인터뷰> 한경태 동양증권 캄보디아법인장



"주식시장의 기능이 어떻게 운영되고 기본적인 역할은 뭐고 실제로 어떻게 투자가 이뤄지고 IPO가 뭐고 프로세스가 뭐고 왜 필요하고 관련 제반 규정들, 배경을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를 잘 못하니까 그런 쉽지 않은 일들이 있었죠."



잠시 후.



투자자 한명이 동양증권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자신을 일본의 한 헤지펀드 운용사 대표라고 밝힌 다카하시씨.



그는 취재진에게 캄보디아 주식시장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며 일단 수백만달러를 투자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초기 시장에 대한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인터뷰> 막스 다카하시 에셋디자인투자회사 대표



"프놈펜수도공사가 첫 상장 회사인데 이후 여러 회사가 올해 순차적으로 상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여기를 더 이상 흥미롭게 생각하지 않을꺼에요. 우리는 동양증권이나 증권관리위원회 등이 올해 더 많은 회사를 상장시키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 날 오후.



최영철 동양증권 팀장이 캄보디아 최대 은행인 아클레다 은행의 본점을 찾았습니다.



현지 지점이 없는 동양증권은 개인투자자들이 손쉽게 증시에 참가할 수 있도록 캄보디아 내에서 가장 지점이 많은 이 은행과 손을 잡았습니다.



<인터뷰> 최영철 동양증권 캄보디아 법인 팀장



"(여기서는) 상장 예정인 프놈펜수도공사의 수요예측 참여를 위해 투자자들이 아클레다 은행 본점을 방문해서 신청서 작성하고 10% 증거금 납부하시고 전산입력을 하는 절차가 진행중입니다. (수요예측 집계 상황은 어떤가요?) 지금으로서는 예측만큼 나오고 있습니다."



최 팀장이 은행에 도착하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여기저기서 지원 요청이 쏟아집니다.



핸드폰이 울리고, 울리고, 또 울리고.



이 날 최 팀장은 투자자들을 상대하느라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길에 올랐습니다.



다음날 아침.



취재진은 수요예측 결과를 듣기 위해 다시 동양증권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캄보디아는 아직 금융관련 IT인프라 구축이 미흡해 동양증권 직원들은 지난 밤 일일히 수요예측 결과를 손으로 집계했습니다.



거기에 투자자들이 예상보다 많이 몰린 탓에 수작업은 아침까지도 계속됐습니다.



캄보디아 프로젝트 리더격인 윤동혁 홍콩법인 이사도 수요예측 작업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 밤 급히 캄보디아로 날아왔습니다.



<인터뷰> 윤동혁 동양증권 홍콩법인 이사



"새벽 4~5시에 자료가 종합되니까 그때부터 준비하고 오늘은 어제 저녁에 수요예측 끝나서 지금도 어젯밤에 나온 것들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에요."



윤 이사에게 홍콩에서 일할 때와 캄보디아에서 일할 때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물었습니다.



인터뷰 도중 갑자기 정전이 되면서 에어콘이 멈추자 가장 힘든 점은 더위와 싸우는 것이라는 농담 섞인 답이 돌아왔습니다.



<인터뷰> 윤동혁 동양증권 홍콩법인 이사



"(여긴) 너무 더워요. 홍콩은 실내가 20~23도 유지되는데 (캄보디아는) 실내온도가 28도니까 상당히 덥죠. 지금은 전기가 나가서 더 덥죠."



그 날 오후 취재진은 상장예정 기업인 프놈펜수도공사가 어떤 곳인지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도 힘들게 연락이 닿아 프놈펜수도공사 사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랜기간 이 회사를 이끌어 온 엑속찬 사장은 생전 들어본 적 없었던 상장이라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에 감격스러워했습니다.



불과 20년전 시민들에게 오염된 물을 공급하던 이 회사는 수도세를 걷으면서 그 돈으로 물을 정화하기 시작했고, 그 후 깨끗한 물을 더 많은 시민들에게 공급하려면 추가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정부가 증시 개장을 검토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됐고 고민끝에 지분의 15%를 시장에 내놓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엑속찬 프놈펜수도공사 사장



"주식시장에 대해 또 IPO에 대해 여기선 아무도 이해못했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우리는 (주식시장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을 교육 보낸 적도 있지만 시간이 짧았고 내용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직접 IPO프로세스를 들여다봤더니 정말 어려웠습니다. 너무 어렵고 요구사항도 엄격했습니다."



그리고는 주식시장에 문외한이었던 자신들을 위해 오랜기간 함께 노력해준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다는 뜻도 전했습니다.



<인터뷰> 엑속찬 프놈펜수도공사 사장



"우린 함께 열심히 일했습니다. 처음에 우리 직원들이 동양증권에 가서 일을 시작할 때는 생각만큼 일이 잘 안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동양증권과 함께 해서 보시는대로 모두가 행복한 결과를 거뒀습니다."



취재진이 캄보디아에 머물던 중 캄보디아 증시와 증권거래소 개장일이 오는 4월18일로 결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캄보디아증권거래소는 캄보디아 정부가 부동산과 현금 2백만 달러를, 한국거래소가 IT기술과 현금 2백만 달러를 각각 출자해 지분을 55대 45로 나눠가진 합작거래소로 현재 캄보디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최고 층에서 개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기주 기자>



"지금 제 뒤로 보이는 건물이 캄보디아 랜드마크인 최고층 빌딩 카나디아 타워입니다.



캄보디아 증권거래소도 바로 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요. 다음달 개장을 앞두고 현재는 막바지 작업이 한창입니다."



3년 전 합작거래소 설립을 위해 파견된 민경훈 부이사장도 캄보디아 증시의 개장일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민 부이사장에게 올해 안에 2호 3호 상장이 이뤄져야 한다던 일본인 투자자의 말을 전하자 그것은 시기상조라고 답했습니다.



경험이 부족한 캄보디아 시장은 차례차례 단계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며 내년에나 2호 상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민경훈 캄보디아증권거래소 부이사장



"사람들이 시장 운영을 확실히 알고 기반을 튼튼히 한 뒤에 유동성 확보, 상장기업 확보 등은 내년부터 하는 것이 단계적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캄보디아 재경부 공무원이자 증권거래소 사장으로 취임한 홍속후어 사장도 한국의 도움으로 증시 개장이라는 큰 도전을 성공해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홍속후어 캄보디아증권거래소 사장



"무엇보다 개장일이 다가오니까 흥분되고 캄보디아에서 새로운 작업을 하면서 (한국거래소와 의견이 맞지 않아) 가끔은 예민해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문제없이 잘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증시 개장에는 한국의 한 법무법인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몫을 톡톡히 했습니다.



한국 건설회사가 프놈펜에 지은 고층 빌딩의 한 사무실.



이 곳은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캄보디아 지사입니다.



이 로펌은 지난 2008년 한국거래소와 동양증권이 캄보디아 재경부와 업무협력 계약을 체결한다는 소식을 듣고 캄보디아에 진출해 법률 자문사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먹거리를 찾아내 이제는 캄보디아 금융산업에서 제법 경쟁력을 갖춘 로펌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평지성 캄보디아 지사를 이끌고 있는 유정훈 변호사는 캄보디아에 생각보다 우량한 기업들이 많아 앞으로도 금융 한류에 대한 측면지원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유정훈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



"증권사들과 업무를 하면서 PPT 나가보고 하면 괜찮고 우량한 기업들 있더라고요. 그런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데 직접 조달하는 방식을 알게 되고 익숙해지면 (시장 환경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캄보디아의 금융 한류 열풍은 증권에서만 부는 것은 아닙니다.



동양증권에서 차로 10분 거리.



노로돔가의 또 다른 블럭에는 신한은행이 설립한 신한크메르은행이 있습니다.



고객의 90%를 캄보디아 현지 고객들로 확보한 신한크메르은행은 지난 2007년 캄보디아에 설립됐습니다.



그 후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캄보디아인들과 현지 기업을 대상으로 대출업무를 시작했고 진출 이듬해인 2008년부터는 흑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부실자산이 없는 우량은행으로 거듭나 이 은행 이재준 행장은 캄보디아의 왕과 총리가 민간 외교관에게만 수여하는 훈장을 두차례나 받을 정도로 현지에서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인터뷰> 이재준 신한크메르은행장



"거래시간은 현지 은행이 40~50분 걸리는데 저희는 4~5분 걸리고 한국계 은행은 수출입 업무와 LC(신용장) 거래가 잘 돼있어서 편하니까 자연스럽게 고객들이 찾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조용한 나라 캄보디아가 잠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인구 1천5백만명.



1인당 GDP 900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농업국가는 한국 금융인들의 손을 따라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코엥렁 동양증권 캄보디아 현지 직원



"여기 모두가 동양증권을 알아요. 내가 누군가에게 동양증권에 다닌다고 얘기하면 다른 증권사 다니는 직원들이 '오~ 훌륭한데'라고 할 정도로 동양증권은 캄보디아 증권시장에서 최고입니다."



<인터뷰> 챠딘 신한크메르은행 캄보디아 현지 직원



"신한크메르은행이 문을 열 때부터 여기서 일했는데 일도 좋고 은행도 좋아요. 은행 경영진과 직원들 관계도 좋고요. 여기서 일해서 정말 좋아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지인들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



캄보디아 금융 한류의 원동력은 바로 끊임없이 진심을 전달한 데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