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기록적인 폭우로 잇따라 발생한 서울 강남의 산사태와 침수 피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예측 시스템의 부재'와 '주먹구구식 개발'을 공통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국제학회 공동 산사태 기술위원회'의 한국대표인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이수곤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8일 "아직 현장을 보지 못해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생태공원화 사업의 영향이라는 주민의 지적에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공원을 만들면 계곡이나 물줄기를 바꾸게 되기 때문에 배수를 잘 고안해야 하는데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물길을 막아버리니 터져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추석에도 서울시내에서 80곳의 절개지가 무너졌고 우면산도 그중 하나였는데 서울시의 300개 위험지역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며 "인명 피해가 없어 이슈가 되지 않았고 서울시에 의견을 냈는데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전국적으로 이런 사면 지역이 100만개 정도 되는데 현황 파악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며 "집계도 주먹구구식이고 관리하는 조직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작년에 무너졌는데 올해 또 무너진 것은 예측 시스템이 전혀 가동되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관청이 하는 일은 복구 위주일 뿐 사전 예방 시스템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주택과 산, 도로를 제각각 다른 곳에서 관리하니까 이 요소들이 연결되는 재해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대도시에서 산사태의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정부에 인명과 재산 피해를 막을 정책적인 의지가 있나 싶다"고 비판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우면산 주변에 생태공원이니 주말농장이니 이런 걸 많이 개발하면서 토질이 약해져 토사가 유실됐다. 공원화 사업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원마을 주민으로 이번 산사태에서 피해를 본 당사자이기도 한 조 교수는 "(인공적으로) 물 끌어다 놓고 풀 심으면 생태공원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연 그대로를 놔두는 것이 진짜 생태공원"이라며 "최근 진행 중인 둘레길 사업 등도 산사태에 절대적인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또 "10년, 30년 등 '빈도' 개념으로 치수방재 대책을 세우는 것은 이미 구시대적 개념이 됐다"며 "1995년 이후부터 기상 현상이 새로운 패턴을 보이고 있는데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모든 치수시설 규모를 새롭게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배수관망 자체가 집중된 것이 침수 사태에 악영향을 줬다"며 "배수관을 분산시키고 대형 관로를 확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영일 서울시립대 교수는 "강남이 큰 피해를 본 것은 강북보다 비가 많이 오기도 했고 지형적으로 물이 빠지는 속도가 느린 이유도 있지만 도시계획과도 연관된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위험지구 밑에는 건축허가를 내주면 안 되는데, 강남은 새로 개발이 이뤄지는 신도시 개념이다 보니 급격한 도시개발 과정에서 경치가 좋은 곳에 집을 지으면서 비 피해는 예상을 못 했던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비는 100년 빈도의 비가 아니라 계속 일어나는 일"이라며 "기후 변화를 반영한 설계 강우량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