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없는 약식명령 등본 효력없어"

입력 2011-07-12 08:15
약식명령 등본이 당사자에게 송달됐어도 원본이 없는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라면 효력이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즉, 판사가 작성한 원본을 그대로 복사한 명령서만 법적 효력이 있다는 뜻이다.

약식명령은 지방법원이 관할 사건에 대해 검사의 청구가 있을 때 공판을 거치지 않고 서면 심리만으로 벌금이나 과료, 몰수형을 부과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서울고법 형사3부(최규홍 부장판사)는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간부에게 철거업체로 선정되도록 도와달라며 뇌물을 준 혐의(뇌물공여)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신모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12일 밝혔다.

재판부는 일단 "판결은 선고로 성립되므로 판결서와 다르게 선고돼도 판사가 내용을 변경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무효라고 할 수 없고, 약식명령도 등본의 송달을 통해 당사자에게 고지함으로써 대외적으로 성립하고 법원도 이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하지만 "약식명령 등본은 판사가 작성한 원본을 정확히 복사한 것이어야 하므로 원본이 작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착오로 제작돼 송달된 경우에는 고지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약식명령 등본은 판사의 관여없이 법원 직원이 작성해 송달하기 때문에 '원본이 없어도 송달된 이상 효력이 있다'고 해석한다면 법원 직원이 판사에 의해 성립되지 않은 약식명령을 자의적으로 내린 것이 된다"며 "따라서 판결서와 내용이 달라도 유효하다는 판결의 법리를 약식명령에 적용할 순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 5천만원 상당의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신씨는 법원 직원의 착오로 그해 12월 초 판사가 원본을 작성하지 않은 상황에서 만들어진 '벌금 2천만원에 처한다'는 내용의 약식명령 등본을 송달받았다.

신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아 약식명령이 확정됐다고 여겼지만 이후 공판절차에 회부돼 올해 4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자 "약식명령이 이미 확정된 만큼 재판에서 면소 또는 공소기각 판결이 선고돼야 한다"며 항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