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도 변이 된다

입력 2011-07-04 09:29
사람의 유전정보는 모두 DNA에 담겨 있다는 생물학의 중심원리를 뒤흔들 수 있는 새로운 발견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보고되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유전체의학연구소(소장 서정선 교수)는 ㈜마크로젠 생명과학연구소와 공동으로 2008년부터 추진중인 아시아인 유전체 다양성 프로젝트의 세 번째 연구결과로 한국인 18명의 DNA와 RNA를 동시 분석한 논문을, 유전학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 7월 3일자 (영국 현지시간 기준) 온라인판에 게재하였다고 밝혔다 (논문명: Extensive genomic and transcriptional diversity identified through massively parallel DNA and RNA sequencing of eighteen Korean individuals).

차세대 초고속 유전체 서열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 본 논문의 연구결과는, 동일인에 대해서 DNA와 RNA 서열을 동시에 분석했다는 점과, 단일 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사상 최대규모의 개인 유전체 분석 결과라는 점에서, 기존의 연구와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이번 논문이 Nature Genetics의 주목을 받은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단순 DNA 서열 중심인 기존의 유전체 논문에서 진일보하여, RNA 서열 분석을 추가함으로써 유전자의 발현과 그 기능적 측면까지 밝혀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서 기존의 DNA 서열 분석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RNA 자체 서열 변이(TBM, Transcriptional Base Modification, 첨부설명자료 참조)가 대규모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최초로 밝혀졌다. 즉, DNA의 염기서열이 RNA로 똑같이 전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사되는 과정에서 염기가 바뀜으로써 DNA에 없던 변이가 RNA에 새롭게 생기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연구에서 이러한 변이의 존재가 일부 보고된 적은 있으나, 모든 염기로의 변환이 다 가능하며, 그러한 자리가 최소 1800개 이상 존재한다는 것이 이번 연구를 통해 최초로 밝혀진 것이다.

또한 RNA 서열분석을 통해서, 상동염색체에 존재하는 한 쌍의 유전자 중 어느 한쪽이 더 우선적으로 발현되는 “비대칭 발현(allele-specific expression)”, 기존에 알려진 모든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도 전혀 겹치지 않는 새로운 유전자 후보, 남녀에 따라 유전자 발현이 달라지는 X 염색체 상의 유전자 등 새로운 발견들이 대거 쏟아짐에 따라 향후 RNA 서열 분석이 유전체 연구의 중요한 핵심 기술로 등장할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DNA 연구를 통해 특정 변이의 존재를 밝히는 것 만으로도 인간의 특성과 질병의 대부분이 설명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졌으나, 이번 연구를 통해 DNA에 존재하지 않는 변이가 RNA에서 생긴다든가, DNA에 존재하는 변이도 RNA로 발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점을 고려한다면, RNA 서열 분석이 향후 인간 유전체 연구의 필수 요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연구는, 단일 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최대규모의 고해상도 게놈 분석을 마무리했다는 점에서도 획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해상도로 분석된 유전체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매우 큰 규모로, 양적 측면에서 세계 최대 수준의 유전체 서열 정보를 보고함으로써 유전학 연구의 귀중한 기초 자료를 학계에 제공함과 동시에 한국인유전체 정보가 국제적으로 활발히 연구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연구진은 평가했다.

현재까지 인간 유전체 연구는 주로 네 민족 (CEPH 유럽인, 요루바 아프리카인, 중국인 및 일본인)의 유전체를 대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한국인은 포함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정밀한 유전체 정보가 대량으로 보고됨으로써 한국인의 유전체가 본격적으로 연구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이번 논문에서는 한국인 18명의 게놈 분석을 통해 950만개 이상의 게놈 변이를 밝혔는데, 이중 220만 개 이상이 기존의 연구에서 한번도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것이었다. 현재까지 인류 전체에서 발견된 게놈 변이가 약 3천만 개라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한국인 18명 연구를 통해 발굴된 변이는 상당한 양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 한 사람씩 게놈 분석 연구를 수행할 경우는 새로운 변이를 발견하더라도, 그것이 그 개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민족 또는 인종 특이적인 것인지 알아내는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한국인이라고 하는 단일 민족만으로 18명의 게놈을 분석함으로써 어떠한 변이가 한국인에서 흔하고 어떠한 것이 희귀한 것인지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연구에서 나타난 결과에 따르면 새롭게 발견한 220만개의 변이 중 약 120만개는 한국인에서 최소 10% 이상 존재하는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에서 이렇게 흔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다른 민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한번도 보고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러한 변이가 한국인의 유전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즉 이러한 변이의 연구를 통해서 한국인에서 호발하는 질병이나 한국인에 잘 듣지 않는 약물 등 기존의 연구로 밝혀지지 않았던 현상에 대한 연구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서정선 교수는 “민족마다 대대로 살아온 환경에 따라 이에 적응하기 위한 고유한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다”면서, “우리의 이번 논문은 유럽인과 다른 한민족의 유전체 변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고, 유럽인 중심의 기존 질병 유전자 발굴 연구 방법론의 한계를 지적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서정선 교수는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이제 각 민족의 질병 유전자 연구는 그 민족의 유전체 정보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것이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인의 유전체 연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고 덧붙였다. 아시아인 유전체 다양성 프로젝트는 앞으로 더 확장되어 내년까지 약 1,000명의 아시아인 유전체를 분석할 계획이다. 유전체의학연구소-마크로젠 공동연구팀은 이 같은 아시아인 유전체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http://tiara.gmi.ac.kr) 하여 공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한 개인별 맞춤의학의 기반을 지속적으로 구축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서울의대 유전체의학 연구소와 차세대 게놈분석 선도기업인 ㈜마크로젠 생명과학연구소의 공동연구를 통해 수행된 것으로, 지난 2009년 한국인 남성 전장 유전체 서열에 대해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아시아인 30명의 유전자 복제수 변이지도를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에 발표하였고, 이어 이번 연구성과를 ‘네이처 제네틱스’에 연속 발표하는 등, 3년 연속 유전체 분야에서 중요한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참여 연구그룹은 물론 한국의 유전체분야 학문적 역량과 기술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서정선 교수는 “서울의대 유전체의학 연구소가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동북아시아인의 유전체 변이 발굴에 초점을 맞춘 것이 이번 논문을 통해 큰 결실을 맺었다”고 평가하며, “이러한 성과의 밑바탕에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 본 연구팀을 꾸준히 지원한 교육과학기술부(동북아게놈프로젝트)와 차세대염기서열 분석기 개발 연구과제를 지원해준 지식경제부, 본 연구의 의학적 의의를 이해하고 연구비 지원을 아끼지 않은 ㈜녹십자, ㈜에이티넘파트너스 그리고 ㈜마크로젠의 첨단 염기서열 분석 기술 지원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