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의 사망으로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진 때처럼 통상적 절차를 통해 더는 유무죄를 다툴 수 없게 된 사건도 재심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그동안 재심은 무고함에도 조작된 증거물 등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피고인에게만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구제 절차였다. 법적 안정성 측면 때문에 대상을 엄격히 제한해왔던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조해현 부장판사)는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됐다가 재판 중 사망한 강경하씨에 대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강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죄가 인정돼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최종심 판단을 앞두고 사망했고, 대법원은 이를 이유로 강씨에 대해 공소기각 결정을 내렸다.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재심대상을 유죄 확정판결에 의한 경우로 규정하지만, 이번 판결은 무고한 시민을 구제한다는 재심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려 법을 폭넓게 해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에서 재심 대상을 유죄 확정판결로 규정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통상적인 불복절차를 통해서는 더 이상 다툴 수 없다는 점에 근거할 뿐"이라며 "그 같은 형식적인 확정력에 재심의 허용을 규정하는 특별한 법적 의미가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의 사망과 같은 소송외적 사유에 의해 공소기각 결정으로 끝난 사건도 통상적인 절차를 통해서는 더 이상 유무죄의 실체관계에 불복할 수 없는 경우"라며 "무고할 수 있는 시민의 법적 구제수단인 재심이 이 경우에도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1971년 10월 강원도 고성 근해에서 북한경비정에 의해 피랍됐다가 귀환조치됐으나, 수사기관의 불법구금·고문 등에 못 이겨 간첩으로 몰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강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2심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으며 복역 중 구속집행정지로 석방됐으나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망했다. 대법원은 1982년 7월 사망을 이유로 공소기각 결정을 했다.
형사보상금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재심 등에서 무죄를 받아야 지급되기 때문에 이번 판결로 강씨의 유족이 국가에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